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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Sep 14. 2015

떠나기 위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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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욕망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를테면, 일곱 살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붙잡고 시장에 갔는데 '뭐 먹고 싶은 것 없니?'라는 엄마의 물음에 망설이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여러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자기의 욕망을 모르는 것이기도 하고, 그 욕망을 표출하기 부끄러워 스스로 감추는 것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의 욕망을 들여다 보는 일 자체를 회피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자기에게도 타자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다가 결국 스스로 제대로 고장나 버리고 말았다. 아무 것도 바라지 못하는 상태로.  



훗날 돌이켜 보니, 어린 시절 내가 동경했던 친구들은 자기에게 솔직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좋고 싫음과 그 이유까지도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 선택한 것과 그 결과에 대해서까지 당당할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한 모습이었다. 내 욕망들은 조용히 일어났다가 저절로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그 버려진 욕망들이 응어리져 있었다. 그 사실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 그런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그것이 내게는 균열의 신호였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에서 독일로 가는 국경을 넘는 순간, 뜨거운 칠월 여름해가 질 무렵이었다.




 

고등학생 때 제2 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했다. 처음 배우는 독일어는 낯설고 신비로웠다. 딱히 비교대상은 없었지만, 독일어 선생님은 그 특유의 발음과 억양을 정확히 구사하는 듯 보였다. 굵고 나지막한 선생의 목소리가 근사하게 들려 독일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독일어반 학생들에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책을 사가지고 오라 했다. 제목도 작가도 낯선 책을 학교 앞 서점에서 샀다. 1998년 처음 손에 들었던 문고판 책에 밑줄 그어진 부분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선생은 독일어로 그 문장을 칠판에 쓰고 나서, ‘kämpft’가 ‘싸운다’이고, ‘sich’는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나는 그 단어를 기억했다.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친구들 틈에서, 난 어쩌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주위를 맴도는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방식을 따르면서도 어디론가 숨고 피하기를 자주 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것이라는 게 과연 내게도 좋은 것인지, 늘 의문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다는 그 이야기는 정말이지 그런 열일곱의 내게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대학 입시보다는 알을 깨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은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당시 나는 독일에 살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만이 내가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정작 나는  방법을 몰랐기에 알처럼 나를 둘러싼 세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안정을 누리면서 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데에 만족했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땐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갇혀 있는 틀이 견고할수록 일탈을 욕망한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용기를   있었다  서른셋이 되었을 때였다. 그제야 비로소 ''라는 자아를 규정한 모든 세계를 벗어버리기를 결심했다. 서른셋의 한국 여자에게 사회가 규정짓는 시선은 하나였다. 대한민국 서울, 안정된 직장과 월급 통장, 결혼 적령기, 출산과 육아,... 나는  외부의 요구가 거세어질수록 그것에 순응하기 힘들어 했다. 그제야 서툴게나마  욕망을 다시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내가  욕망을 모른   대가로 꽤나 오랜 시간 돌고 돌아온 셈이다.


낯선 길 위에 서고 싶었다.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가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궤도를 이탈하는 것, 그건 하나의 선택이었다. 다른 가능성들을 져버리고, 내 욕망을 따르는 것.



나는 떠나기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빛이 흐른다. 시간도 흐른다. 나는 떠나는 자이다. 흐르는 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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