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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Jan 30. 2016

풍경과 운명

Le paysage et la vie 




어학원의 등록 기간에 맞춰 발급받은 비자가 끝나는 때는 5월이었다.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며칠은 여름 같기도 했다. 어학원이나 대학교의 종강이 다가오니, 다들 분주하면서 동시에 시험을 준비하거나 바캉스를 계획했다. 때마침 대학원 모집 시기였다. 


어학원에서 프랑스 현대 영화를 선택 수강했는데, 그때 나는 이브 시통Yves Citton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매 수업마다 5시부터 지난주에 본 영화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7시가 되면 큰 강당에서 다음 주 수업을 위한 영화를 틀어주었다. 장 뤽 고다르, 장 쥬네, 미하엘 하네케 감독 등의 영화를 다루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대사가 정확히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을 만큼 좋아하던 감독들이었다. 그 교수님이 스탕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신다는 것을 알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그분에게 더 배우고 싶었다. 어학원 한 달 수업료는 700유로이고, 대학원 일 년 수업료는 243유로. 비교를 해 보니 내가 계속 불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교수님이 담당하시는 대학원 학과를 검색했다. 이 두 가지 단순한 이유로 나는 가 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가 보지 않은 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길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날의 선택을 곱씹으며 나는 깨달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과학 담당 선생님은 학생들이 졸릴 때 즈음이면, 중국, 일본 같은 가까운 나라나 스페인, 프랑스 같은 유럽 어느 나라를 여행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당시 내 주위에는 외국을 여행한 사람이 그분뿐이었다. 90년 대 초,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가 유행이어서 필독서가 되었을 무렵, 선생님만큼 여행 이야기를 재밌게 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야기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때 어린 내가 감당하기 버거웠던 현실을 벗어날 길은 그 낯선 나라라고 믿었던 것일까.


고등학생 때 만난 독일어 선생님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사서 읽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다음 책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좋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의 생각을 물었고, 책 속의 몇 문장들은 독일어 원문으로 칠판에 써 주었다. 우리에게도 그 문장들을 책의 여백에 옮겨 적으라고 했다. 복도에서 '오 탄넨바움'을 큰 소리로 부르고 다니고, 가을 무렵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로 시작하는 릴케의 시 전문을 외워 오라고 하는 선생님이었다. 


발음조차 생소한 그 낯선 언어로 알게 되는 세상이 좋았다. 내가 읽은 문학 작품 속,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였다. 이야기와 외국어, 그 세계는 낯설기 때문에 궁금해졌다. 나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소외된 나의 은신처가 되었다. 나는 낯선 세계에서 더 외로워지고 싶었다. 두꺼운 한독사전을 뒤적리면서 단어를 익힐수록 독일에 대한 열망은 커 갔다. 


뮌헨에서 쓴 일기를 남긴 전혜린을 알게 된 것은 이삼 년 후였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어렸고, 어렸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으나 방법을 모르던 시기였다. 어느 날, 대학교 동아리방에 선배가 꽂아 놓은 전혜린의 책 두 권을 우연히 보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전철역에 있던 홍익문고에 가서, 그녀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을 샀다. 가방에 두 권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나에게 독일은 그녀의 삶과 결부되었다. 자유와 고독, 학문에의 열정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사범대학교 교육학과로 입학하여 국어교육과를 복수 전공하고, 졸업을 앞두고 교사 임용 시험을 치렀다. 12월 초에 있는 그 시험을 위해서 여름방학 두 달 동안은 노량진 고시원 방을 얻어 살았다. 가을 내내 노량진 독서실 이용권을 끊고 아침 여섯 시 반부터 저녁 열 시까지 앉아서 시험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교사용 지도서를 사고 교육학 시험 준비용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시간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가서 독서실 옥상에서 혼자 먹거나 김밥을 사 먹고 천 원에 서너 개씩 하는 캔커피를 자주 마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꿈이 거기에 있다고 믿었다. 멀리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니,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막연한 동경과 현실도피 대신 나는 현실에 주저앉았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처럼, 나에게는 여러 개의 안락의자가 있었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중략)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 곰스크로 가는 기차 중에서 


결국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나는 한국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원하는 대로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읽어온 책과 만나온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는 이정표가 된 셈이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캠퍼스를 거닐 때마다 생각했다. 커다란 마로니에와 잣나무, 멀리 보이는 설산이 어릴 적 내가 꿈꾸었던 삶이라고. 서른넷이 되어 책가방을 들고 낯선 언어로 쓰인 삶에 도착해 있다고. 이런저런 핑계로 이 풍경 앞에 늦게 도착했지만, 내가 바라던 풍경 속에 잘 들어와 있다고. 몇 년 동안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늘 그렇듯이 뒤늦게 깨달았다. 내 눈 앞에 내가 보는 풍경이 바로, 내 운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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