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rrive à Etretat.
'에트르타' 그 이름은 '존재'의 의미를 지닌 장소 같았다. 마을 이름을 듣고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어디에 있지?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프랑스 북쪽 바닷가에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가면 혹시 '있음'에 대하여 알 수 있지 않을까.
불어에서 '에트르(Être)'는 '있다, 존재하다'를 뜻한다. 처음 불어를 배우면서, 자기를 타인 앞에 소개할 때, 두 개의 동사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앞에 나온 '에트르' 동사와 '아부아(Avoir)' 동사였다. '아부아'는 '가지다, 소유하다'의 의미가 있다. 나이를 말할 때는 이것을 쓴다. 이 두 동사는 동사 변형이 불규칙적이라서, 주어의 인칭뿐만 아니라, 현재형, 과거형, 미래형,, 시제에 따라 하나하나 따로 다 외워야 한다.
나, 너, 그/그녀, 우리, 당신들, 그들... 각각의 주어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에트르 동사를 노트에 쓰고 소리 내어 읽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je suis, tu es, il/elle a, nous sommes, vous êtes, ils sont,... 어렵게 느껴졌다. 존재한다는 것은 왜 이렇게 규칙도 없고 예외가 많고 복잡한가, 생각했다. 그 소리들이 익숙하게 입에 붙을 때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존재한다는 건, 그렇게 다르다. 내가 존재하는 방식과 당신이 존재하는 방식, 그 무게, 형상이 다르다. 온도가 다르고, 소리가 다르다. 차이를 인식하는 것, '에트르'라는 단어를 통해 배웠다.
에트르타 바닷가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되기 정확히 5분 전이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밤바다는 묘하게 아름다웠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다. 적당히 차고 부드러운, 아다지오로 부는 바람, 나는 그 바람을 마주하고 섰다. 바람은 조심스레 바다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저 멀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바다일까. 시선을 둘 데를 찾지 못해, 발끝에 닿을 듯 말듯한 파도만 보았다.
흰 파도는 살며시 밀려왔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저 거대한 암흑에서부터, 하얀 시간이, 조금 밀려오고, 불규칙하게 때마다 다른 무늬로 펼쳐졌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눈앞에 존재와 소멸이 있었다. 그 무한한 반복. 나는 고작 내 발끝의 시간을 바라보았다. '있음'이 '없음'이 되는 순간들이라니, 이곳은 '에트르타'인데.
그 바닷가 한 편, 흰 코끼리 바위가 서 있는 걸 보았다. 자정이 넘어 사람들이 모두 떠난 자리, 그는 홀로 어둠 속 먼 바다를 응시하는 듯 보였다. 매일 밤 그랬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서. 어쩌면 흰 코끼리 바위는, 먼 북쪽 바람을 타고 자기가 떠밀려 온 그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바위의 표면에 미세한 층이 새겨져 있었다. 시간의 흰 파도가 밀려오고 또 추억처럼 겹겹이 쌓여, 코끼리 바위가 된 건 아닐까. 나는 그의 존재의 의미를 마음대로 짐작했다.
그때, 갑자기, 멀리 보이던 코끼리 바위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위가 있던 자리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나는 환영을 본 걸까.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랐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 정각이었다. 바위를 비추던 조명이 꺼진 걸 알아차린 건, 조금 후였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가 암전 되듯, 흰 코끼리 바위도 고된 하루를 마치고 제 있을 곳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종일 응시하던 북쪽으로, 제 갈 곳으로, 그가, 남몰래 한 발을 내딛는 시간.
사위가 캄캄해져 바닷가에 더 머무를 수 없었다. 바람 때문에 머리도 조금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딱 한 시간이었다. 옷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나도, 걸음을 옮겨야 했다. 다시 가야 할 곳으로.
에트르타의 여름 바다,, 나는 그곳에서 '에트르' 동사를 새로 배웠다.
'에트르' 그것은, 존재와 소멸의 무수한 반복, 그 시간을 견디며 단단한 바위가 되는 것.
어쩌면, 돌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