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ke green Jul 18. 2021

오만과 편견, 사로잡힌 사람들

가끔 시선을 돌려야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다

저는 진짜 왜 아픈 건가요
의사는 도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다. 의학적 지식을 기초해 환자의 얘기에서 원인을 추론해내고 의학 기술에 의거해 답을 도출한다.  그러니 이미 편견을 갖고 시작한 진료에서 다른 결론이 나올 리 없다.

  군데의 정형외과에서 똑같은 말과 똑같은 처방, 똑같은 검사를 받고도 낫지 않는 손가락 때문에  주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은 끝마디에 통증이 있고 오른 손은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데다가 병을 돌려  , 조금 무거운 밥을 뜨는 젓가락질에서, 잡았다 놓치는 홀드에서 손가락부터 손바닥을 타고 손목을 지나 팔꿈치 아래까지 가는 통증이 느껴져 그때마다 예민해지고 만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손가락 마디가 아프고 오른손은 손가락이 접히는 부분이 아파요.  통증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올라옵니다.”

“언제부터 그래요? 뭐 하셨어요?”

“2주쯤 됐나? 클라이밍을 하긴 하는데…”

엑스레이상엔 이상이 없네요. 염증으로 보이는데 쓰지 않는 것이 좋으니 운동을  쉬어보세요. 물리치료받고 가시구요


 병원을 계속 바꿨던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근거를 들어 처방하는 위장이 아픈 염증약과 운동하지 말라는 듣기 싫은 , 계속해서 찍어대는 엑스레이때문이었다. ‘이전 병원에서 엑스레이 상에는  나온다고 하더라하면 우선 다시 찍어보고 얘기를 하자고 한다. 2 동안  번의 엑스레이를 찍었고  병원에서는 한번에 6장이 넘게 찍었다. 정작 나에게 뭔가를 자세히 묻거나 답을 하지 않는다. 마치 정해진 답변을 내게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나를 만나는 매뉴얼이 그러한 것처럼  병원이 한치의 오차 없이 같은 답을 던져 주었다.

클라이밍 해서 아픈 거예요. 운동 쉬어야죠.

어쩌면 원인 제공을   나다. ‘클라이밍을 한다라는 말을 이미 하고 진료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은연중에 나도  운동이 원인일 거라는 생각을 한거고, 성급한 진단을  수밖에 없는 편견을 의사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들은 도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다. 의학적 지식을 기초해 환자의 얘기를 듣고 원인을 추론해낸다. 그 이후 의학 기술을 통해 답을 도출한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은 더 통증에 집중하게 되어 아프던데요


 문제는  통증의 원인이 진짜 염증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주는 검사가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엑스레이가 답이 아니라고 하면서 계속 엑스레이만 찍었고 다른 검사를 권유하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거나 눈을 보며 얘기하지 않고 실마리라도 찾으려는 이유인지 모니터 속의  엑스레이 사진을 뚫어져라 보며 얘기했다. 마치 오래 바라보면 하늘이며 배가 나타나는 매직아이라도 보는 것처럼


진료받으러 갔다가 드라마를 찍기 있나요
이왕 아플 거면 정확히 무엇 때문에 아픈지, 약을 먹을 거면 진짜 맞는 약을 먹는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관성을 벗어난 선생님의 친절한 진료는 드라마에서나 있는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손가락을 다쳐 고생을 했던 친구에게 병원을 추천받아 간 병원에서 인생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 원장 선생님은 내 얘기를 자세히 듣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도 자세히 묻고 설명을 해주었다. 말을 할 때마다 내 불편에 공감하듯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젓가락질이 힘들었다는 얘기에는 윗눈썹이 팔자로 변하기도 했다. 관성을 벗어난 의사 선생님의 이런 류의 친절 같은 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줄 알았다. 처음 있는 반응에

‘뭐야 왜 이렇게 자세히 들어주셔?? 민망하게’

싶을 정도였다. 같은 증상으로 몇 번이나 같은 답변을 듣고 인터넷 검색을 해봤던 나는 사람 잡는 선무당이다. 선생님의 설명을 끊고

“안 쓰는 게 답인가요?”

라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안 쓰나요. 손을 안쓸 수는 없죠.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면 됩니다.”

돌아오는 답변은 단순했지만 명확하고 신선했다. 몇 번이나 찍어댔던 엑스레이를 찍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초음파를 받고 싶다는 내게 원하면 해주겠지만 초음파에도 잘 안 나올 거라는 답도 한다. 과잉진료가 없었다. 대신 질문을 많이 던지고 통증의 유형과 방향성, 연결된 팔의 통증까지 세세하게 만져가며 원인을 찾아냈다.(물론 그게 확실한 원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초음파에서 미세하게 찍히는 것들을 눈으로 보게 하며 염증을 확인시켜 준다.  


“아마 염증약을 먹어도 좋아지지 않았을 거예요. 오른쪽은 근육 문제로 보입니다. 펴는 근육과 쥐는 힘을 주는 근육 둘 다 조금씩 이상이 있는 것 같네요”

처음 듣는 얘기다. 앞서의 병원들에서 원인은 손가락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것도 손가락 관절을 넘어간 적도 없다. 모든 게 신선했다. 진료방식, 답변, 팔꿈치까지 찾아가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 이왕 아플 거면 정확히 무엇 때문에 아픈지, 약을 먹을 거면 진짜 맞는 약을 먹는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지라 속이 시원하다. 어떤 치료를 시작하고 통증이 사라 지지기도 전에 나에게 그 원장님은 이미 갓 원장님이 되었다.


좋아하는 부분. 편견은 눈을 가린다.
  사람의 편견은, 관성은 무섭다. 눈 옆에 가림막을 붙이고 달리는 경주마 같다.

 얼빠인 주인공이 아주 잘생긴 부남주가 아니라 적당히 잘생긴(?) 남주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내용의 좋아하는 부분이라는 제목의 훈훈한 웹툰이 있다.  “뭐야 왜 이렇게 속물이야!!! 왜케 당해 바보야??”라는 짜증으로 시작했다가 흥미로운 전개에 훈훈한 마무리로 완결까지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못생겨도 잘생긴 그림체 때문에 조금 덜 잘생긴 남주도 너무 잘생겨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공감 안될 때도 있었지만 그 웹툰의 주제는 “편견과 다양성”이었던 거다. 모두가 좋아하는 부분은 다르다.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것은 속물적인 게 아니라 그 다양한 취향 즉, 좋아하는 부분 중의 하나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마스크 위쪽이 훈남이었는데 눈이 특히 예뻤다. 그리고 손가락도 잘생겼다.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내 통증부를 꾹꾹 눌러가며 원인을 찾는 모습에서 어릴 때 내 이상형이 손 예쁜 사람이었다는 걸 오랜만에 기억해냈다. 어쩌면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공감하는 듯한 눈이어서, 마우스가 아니라 내 손과 팔을 클릭하는 손이어서 더 예쁘게 보였을 수도 있다. 예쁜 눈과 손을 가진 선생님에게 마음을 뺏겨 간과 쓸개를 빼줄 준비를 했지만 그것은 탐내지 않으셔서 그냥 다음 주 치료를 예약하고 돌아왔다. 비록 귀찮은 보험처리를 해야 하는 비싼 충격파 치료를 받기로 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 다시 위장이 아픈 약부터 처방하지 않아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사람의 편견은, 관성은 무섭다. 내 손은 아직 낫지 않았고 통증은 여전하다. 그 와중에 생겨난 눈과 손이 예쁜 선생님에 대한 무한 신뢰, 이것도 일종의 편견이지만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클라이밍을 하니 아프겠지 그건 관절의 염증 때문일 거야라는 단순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섣부른 진단은 다른 원인을 찾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못하게 가능성들에의 신경을 차단한다. 눈 옆에 가림막을 붙이고 달리는 경주마 같다. 나 역시도 마음속으로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관절에 생긴 염증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고 하지 말라는 얘기에 반항심만 한껏 끌어 오르고 있었다.


 가끔 시선을 돌려야 한다. 한 발 옆으로, 살짝 다리를 굽혀서, 또는 까치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바뀌지 않을 딱딱한 얘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나는 내일 훈훈한 원장 선생님을 또 만나러 간다. 이미 금요일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1회 차 찍어버린 나는 병원을 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나아질 거라는 기분에 내일이 기다려지고 있다. 나한테는 원장 선생님이  안정원이고 이익준입니다. 가서 2회 차 드라마 찍고 올게요 :D






*아래 손가락 스트레칭 따라 해 보세요. 시원하고 유연해져서 움직임이 편해져요~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잖아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