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매일 어떠한 방식의 감정 훈련을 하고 있는가
지난번에 자신의 취향조차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날의 글에 이어서 감정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취향을 잃은 사람은 정신적인 길을 잃기 쉬운 상태나 다름이 없다고 본다. 내가 무엇을 통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다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지 알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훨씬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 중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 중독에 빠져있다는 말은 이제 놀라울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 설정이 가능한 잠금 상자를 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아마존에서 약 9만 원에 판매되는 해당 제품은 약 1,770개의 리뷰가 달려 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돈을 들여 잠금장치를 살 정도로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되었을까?
물론 2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면 결제도 되고 포인트 적립도 되며 신분증 본인 인증까지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지갑을 들고 다니기 귀찮은 세상이라고만 설명하기엔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스타 브레인>에서 설명하기로는 우리는 하루에 2,600번 이상 스마트폰을 만지며 깨어 있는 동안에는 평균 10분에 한 번씩 들여다보고, 그 시간도 부족해서 3명 중 1명은 한밤중에도 최소 한 번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중독적인 활동이 있었나 생각을 되돌려 보아도 명확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듯하다. 뉴스에서나 피씨방에서 내내 게임을 하다가 사망한 사건이 나오곤 했지, 그저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인스타브레인>을 읽던 어느 날,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서 아무런 목적 없이 인스타그램 앱을 눌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아마 몇 년을 거쳐온 습관이겠지만, 그동안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해당 책을 읽으며 일상 속의 중독 행동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거의 화면을 켬과 동시에 인스타그램을 누른 수준이었다. 심지어 ‘필요 없이 SNS에 들어가지 말자고 생각해 놓고 왜 이런담.’이라고 생각하며 인스타그램을 종료하고 홈 화면으로 나온 순간에, 다시 습관적으로 아이콘을 눌러 버리고 앱에 들어갔다. 나의 무의식적이고도 순간적인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잠시간 인스타그램이 켜진 스마트폰을 쳐다본 기억이 남는다.
정말 바보가 되었구나.
‘바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한참 <인스타 브레인>이라는 책을 읽던 중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레 인지된 내 상태가 훨씬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릴 때 나도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삼시세끼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봤다고 해도 이처럼 틈만 나면 켜서 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는 어느새 내가 파블로프의 개처럼 길들어 있었다. ‘무료하다’라는 신호가 울리면, 또는 그러한 신호가 없었음에도 자꾸만 분홍색의 네모난 아이콘을 찾아 누르고 재미있는 어떠한 자극을 기대하고 있다.
텔레비전과 비교해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의 짧은 게시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그렇다고 기억에 딱히 남는 것도 없다. 몰랐어도 인생에 하등 영향이 없을 그런 내용이 많이 차지한다. 그냥 보고, 넘기고, 보고, 넘기고, 관심 가는 것은 더 보고, 댓글도 보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모아져 거대한 시간을 보낸다. ‘이게 왜 시간 낭비야? 나는 릴스에서 ’1분 영어 듣기‘도 하고 ’1분 시사 상식‘도 보는 걸’이라고, 본인은 ‘좋은 1분‘을 소모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1분을 위해 이미 100분이 소모되어 있다. 그냥 훑어보고 넘기는 100분에 도움 되는 1분, 그 가치를 비교할 수나 있을까? 또한, 짧고 쉽게 다양한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은 흡사 룰렛과 비슷하다. 기쁨, 당황, 아픔, 슬픔, 분노를 불러일으킬 게시글을 돌려가며 반복적으로 뇌를 자극하면서 이는 점점 중독의 길로 빠져든다.
SNS 중독이 사회적으로 심화함에 따라 마찬가지로 도파민 중독에 대해 경고를 울리는 글이 눈에 띄고 있다. 도파민 중독이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활동(약물, 성적 쾌감, 도박 등)에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일어나는 중독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도파민이 직접적으로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 도파민은 대뇌에서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 중의하나이며, 우리가 집중해야 할 타깃을 알려주고, 보상감이나 쾌감과 관련된 ‘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인스타그램의 릴스를 넘겨 보며 기분이 좋기 때문에 그 행동이 중독적이고 끊기 힘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도파민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파민은 바로 우리의 엔진이다.” -인스타브레인, 3장 ‘몸이 되어버린 신종 모르핀‘
도파민 수용체의 활성화로 유도될 수 있는 화학물질 중의하나가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엔도르핀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도파민 그 자체가 행복 호르몬이라 착각하고 있다.(심지어 이 명칭조차도 오해에서 만들어졌다. 엔도르핀은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것이 더 정확하고 진통 작용을 해주며 쾌락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잊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의 뇌는 생각지 못한 예측불허의 방식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정보를 좋아한다. 도파민은 바로 이런 새로운 정보/이득/감정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가 집중해야 할 지점을 알려주는 동기 부여 시스템이다. 우리의 SNS 중독은, 더 나아가 스마트폰 중독, 디지털 중독은 단순히 ‘재밌어서 계속하고 싶다’라는 단순한 자극의 결과가 아니다. ‘재밌기 때문에 계속 보게 된다 ‘라는 오해를 갖기 쉽지만, 실상은 적절한 비율로 예측 불허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는 완벽히 짜인시스템에 걸려든 것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은 사용자를 오랫동안 매체에 머물게 할수록 더 거대한 광고판이 들어오고, 그를 통해 상상도 못 할 액수의 돈이 오가게 된다.
도파민은 새로운 것과 예측 불허의 상황을 사랑하고 그 이상으로 ‘기대감’이 주는 자극에 열광한다. 그리고 그 자극을 완벽하게 제공해 주는 것이 소셜 미디어 세상이 되겠다. 인스타그램의 릴스를, 피드를, 유튜브의 쇼츠를 계속 보고 넘기고, 보고 웃고 넘기고, 댓글에 분개하고 넘기는, ‘자극‘이 한 번 터져서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길 바라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는 모습은 마치 도박장의 슬롯머신 앞에 앉아있는 중독자와 같다.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자극 속에서 혹시나 그다음 페이지에 있을 재밌는 영상을 기대하며 도파민을 만들어내고 그 도파민은 엔도르핀을 유도한다. 분명한 것은 슬롯머신이나 다름없는, 손가락 하나로 유도될 수 있는 값싼 자극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도파민 마케팅은 이미 많은 곳에 자리 잡아선 우리의 뇌가 싼 자극에 절여지도록 만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긴 영화를 못 견디게 되었나, 언제부터 책 한 권은커녕 한 챕터조차 앉은자리에서 읽는 것이 버거워졌는가.
내가 언제부터 하루, 24시간이라는 귀한 시간 속에서 3시간 동안 핸드폰을 보는 일이 쉬워졌을까.
만 원을 백 번 지출하면 백만 원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1 분의 릴스를 백 번 소요하면 백 분, 한 시간 사십 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한 번은 하염없이 유튜브의 쇼츠를 한참 보다가 피로가 풀리지도 않고 시간만 지나 있길래 화면을 끄려고 하는데, 최근 시청 기록을 보니 197개의 영상을 시청했다는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대략 한 시간 반의 시간 동안 터질 리 없는 슬롯머신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완벽한 소비자(내 시간을 소비하여 오랫동안 머물러 사용자의 잔류 시간 기록에 이바지하고 회사의 신뢰와 값어치를 올려주는 소비자)였다.
다시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자면, 우리의 뇌는 예측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정보와 감정 자극에 자연적으로 이끌린다. ‘새로움‘에 집중하라며 도파민이 만들어지고 도파민은 엔도르핀을 유도한다. 그렇게 유도된 엔도르핀은 통증을 줄여주고 즐거운 느낌을 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을 다 보내고 난 후에는 여러 이유로(끌어올린 도파민이 낮아지며, 또는 화려한 삶을 사는 다른 사람들의 피드와 사회적 비교를 하며, 등등의 이유) 심리적 허탈감이 찾아온다. 위의 과정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익숙한 패턴인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매체는 도파민 마케팅을 완벽히 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가만히 누워서 손가락만 움직여도 자극되는 감정을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감정 자극은 우리에게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싼값의 감정‘이나 ‘가짜 감정 자극’이라고 불러 보겠다.
이제는 슬슬 이 글의 제목에 반문이 들어와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왜 안돼? 즐거우면 됐지. “라는 질문 말이다. ”그렇겠지, 뭐 핸드폰 오래 보면 좋을 것은 없겠지, 그렇지만 나는 만족스러우니까 됐어.“ 물론, 나는 뇌과학의 전문가가 전혀 아니다. 그저 내 경험과 책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그럴듯해 보이는 일기를 쓰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대답할 수 있다. 감정에는 이름이 없어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름 붙이기에 따라 그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양하고 깊은 감정을 ”짜증 난다“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고,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때도 ”이상해“라는 말로 대체가 가능하다. 서럽고, 서운하고, 아쉽고, 창피한, 그런 등등의 감정은 제각기 감정 해소의 방향이 다른데, 우리가 그 감정을 ”짜증 난다“라고만 표현하면 제대로 된 길을 찾아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속에서 곪게 된다.
‘싼값의 감정‘은 단순하다. 1분 안에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고, 이해가 안 가면 그냥 넘기면 되는 구조다. 우리는 점차 현생이 다사다난하다는 이유로 휴식 시간에서까지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길 싫어한다. 잠시 다른 얘기를 꺼내자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00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10,000시간의 법칙’이 있다. 이는 하루에 3시간, 1년에 1,000시간씩 10년 정도는 투자해 줘야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시선으로 본다면,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싼값의 감정 자극‘으로 단순화된 감정을 뇌에 각인시키는 훈련을 매일 수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찾아 하는 셈이 된다. 그동안 우리 뇌가 도파민 충동을 쉽게 털어내지 못하게끔 점차 탈바꿈이 된다고 하면 될까.
그렇게 점점 싼 값의 감정 자극에 익숙해지며 복잡한 감정을 멀리 하게 된다. 영화나 책, 웹툰, 드라마를 봐도 조금만 내용이나 감정선에 변주를 주면 따라오기 힘들어하는 것이 요즘 소비자이다. 이제는 책이나 영화는 직접 보지 않고 유튜브로 요약본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따라서 세상은 이렇게나 복잡해졌는데 우리의 감정 인지 방식은 점점 단순화되고 있다.
나의 감정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화가 나거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끔 무기력하거나 공허하기도 하다. 피로하다는 인식도 없을 정도로 지쳐있을 때 가장 쉽게 빠지는 곳이 소셜 미디어 세상이다. 짧고 단순해서 소화하기 쉬운 영상들을 하염없이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의도적으로 영상을 넘겨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끝낼 수가 없어서 넘겨보는 것인지 알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 작은 화면 속의 세상은 고통이 없다. 현재 끌어안고 있던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면 다시 고통스러울 것을 알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지금의 무의미한 행동을 끝낼 수가 없다.
결국에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싼 값의 감정 자극‘에 중독된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