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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Sep 05. 2023

감정이 눌려있으면 곪아요

할 수 있어, 잘했어, 잘하고 있어

유독 자기표현에 서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얘기를 하려다가도 입이 다물어지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노출될 주제에 조금만 다가서려 해도 몸은 이미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다. 흔히 ‘괜찮다’ 또는 ‘별거 없다 ‘라는 대답으로 해당 대화에 깊게 노출되지 않으려 하지만, 과연 그 ‘괜찮다’는 대답을 건네고 싶은 사람은 대화하고 있던 상대방에게 일까 아니면 본인 자신일까?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 감정이 어떤지조차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건드리면 왈칵 터져오는 것만 같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그것들은 남들과 대화하는 도중에 꺼낼 만한 덩어리가 아니라고 여겨질 뿐이다.

“응, 나는 괜찮아.”

이렇게 괜찮다고 덮다 보면 정말로 점차 무뎌지는 것 같다. 당장에 솔직해지기 싫어서 속에 감정을 숨겨두고 억지로 꺼낸 첫 번째의 ’ 괜찮아 ‘와 습관적으로 꺼내게 되는 무지각성 ’ 괜찮아 ‘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나는 감정을 누르는 것에 익숙하다. 이제는 익숙한 것을 넘어 능숙하다고 할 수 있겠다. 누르고 누르다 보니 어느새 잊고 있을 때도 있다. 이전 글에서도 살풋 내비친 적도 있다. 우울증이 있고 감정 관리에 미숙한 엄마 밑에서 자라며, 사랑을 받으면서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였다는 내용은, 이제는 글에 쓸 수 있다. 안 좋은 말을 들었을 때,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가치가 없는 말이야. 상처받지 마 “, 라며 눈을 감고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열 번 정도 말하고 나면 눈물이 잦아들고 가슴이 아프지 않았고, ”잊어버려, 기억할 필요 없어 “라고 백 번 정도 속삭이고 나면 머릿속에서 터질 것 같던 열기가 빠져나갔다.

당시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던 것도 그것뿐이었다. 감정 뭉치를 잘 말아서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두면 될 줄 알았는데, 친구와 얘기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행복하게 웃다가도 불쑥 실마리가 튀어나오곤 한다. 숨겨 놓던 감정은 마치 정제되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다. 어쩌다가 조금 알아차려도 ‘이제야 알아줄 거냐고 ‘ 발발거리곤 돌아다니며 마음속을 버적이게 만드는데, 이게 참 곤란하다.

몇 년 동안 개인감정을 눌러놓고 있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표현하지 않았고 때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애썼다. 꺼내면 불편하기만 할 뿐이라 감정이 건드려지는 대화나 상황 자체를 피하게 됐다. 특히 외부의 자극으로 나의 잠잠한 감정에 물살이 일어나는 것이 싫어서 로맨스나 가족 장르와 같은 영화는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약 15년, 나에게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습관을 넘어 본능과 같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자꾸 잊어버린다. 그렇게 잊히며 이름마저 지워지는 감정이 생겼다. 왜 상처받았었는지, 왜 슬펐는지, 나에 대한 것은 물론, 타인의 감정에도 둔해진다. 그런 모습은 몇 년에 거쳐 서서히 드러났다.

나는 유난히도 책을 좋아했다. 책에 매력을 느낀 순간마저 기억한다. 초등학생일 때에 책을 읽다가 주변의 소음도 듣지 못하고 집중하고는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온 것도 알아채지 못했었다. 새로운 학년의 첫날이었다. 이전 수업 시간 마무리쯤에 자유시간을 받아 책을 폈는데 그게 그렇게도 재미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마음 편하게 읽다 보니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완전히 책에 몰입하고 있을 때는 주변이 온통 하얗게, 안개 핀 듯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우르르 나가길래 그제야 시선을 옮기다가 밖으로 나서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다들 어디가?”

“어? 선생님께서 신발장에 신발주머니 넣으라고 하셨잖아. 못 들었어?”

이미 쉬는 시간은 끝났고, 다음 수업 시간까지 시작했으며 선생님 또한 교실에 들어와 있었다. 약 15분, 어쩌면 20분, 그 순간에 세상은 하얗고 오직 책과 책을 읽는 나밖에 없었다. 그 순백의 순간을 나는 계속해서 잊질 못하고 오히려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의 집중력으로는 어렵겠다고 여겨진다.

책을 읽을 때는 ‘이해함‘과 동시에 ‘이해받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이름 없이 날뛰던 감정에 차곡차곡 이름을 붙여두어 진정시키는 느낌이 든다. 책 속 주인공이 상황을 겪으며 한 꺼풀, 한 꺼풀 깨닫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 또한 내가 어떻게 숨 쉬어야 하는지, 왜 아픈지, 왜 화가 나는지를 생각해 보며 주인공과 같이 숨 쉬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독서의 매력을 깨달은 것은 내 인생에 큰 보물이 되었다. 커가며 많은 어려움을 독서로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가 티비 프로그램에 나와서 소설을 읽는 이유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언어가 없잖아요. 감정이거든요. 이 감정에 언어가 부여돼요. 소설에 표현된 문장을 읽으면서 그제야 아, 이런 것이구나, 깨닫고, 그럼, 그 감정을 훨씬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죠. 저는 이런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곪는다. 사람은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어서 속에서 곪은 상처가 터지면 안 좋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우리의 이성적 사고방식은 본능적 사고방식과는 결이 달라서 자주 그 방향을 달리하기도 한다. 마냥 꾹꾹 눌러놓고 싶지만, 속에서 썩어가는 감정을, 우리는 어떻게든(좋은 방식이든, 나쁜 방식이든) 겉으로 표출하고자 한다.

아마 나의 본능은 진작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썩어 들어가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이 감정이 오래되면 나에게 독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뱉어지는 말‘이 있었다. ‘뱉어지는 말’은 이런 것이다. 마치 스스로 소화하지 못해 엉겨 있는 ‘이해받지 못한 감정‘의 영역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던 ‘이해하기 쉬운 감정’의 영역으로 끌고 와 감정 표출을 하는 역할을 해준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주로 학교에 묶여 살았을 때는 ‘집 가고 싶다’, 대학 이후부터는 ‘짜증 나‘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내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특이한 말버릇이 붙었다고만 생각했다. 부모님과 싸우고 방에서 틀어박혀 있다가, 샤워하며 노곤노곤한 느낌을 즐기다가 불쑥 ‘집 가고 싶다‘라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아무 맥락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내가 해당 문장으로 피곤함, 안정감, 그리움, 소속감, 등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는 고등학교 야자시간(야간 자율 학습 시간)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었다. 평이한 하루였고, 친구들과도 늘 그렇듯 잘 지낸 날이었다. 신발장 옆에서 다른 쪽 발의 신발 뒷굽으로 눌러서 신발을 대충 벗으려고 했는데, 그날 신발 끈이 여러 번 풀려서 세게 묶어둔 탓인지 벗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런 이유로 현관 쪽에 걸터앉아서 신발 끈을 풀고 있었다. 그때의 공기는 선선하면서도 가볍지는 않았고, 마치 푸른색과 회색이 섞인 듯한 느낌을 가졌다. “집 가고 싶다.“ 이 말을 뱉은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신발 끈을 풀던 손이 멈췄다. ‘난 집에 왔는데?’. 내 입에서 툭 뱉어진 문장에 단순히 해당 의미만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그제야 깨달았다. 지극한 외로움과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나에게서 안정감을 찾고자 했고, 그 안정감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집‘이 되는 셈이었다. ’아, 나에겐 집이 휴식 공간이 되지를 못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며 순간 공기의 거친 푸른색이 더 짙어졌다.

이것과 비교하면 대학 생활 이후의 ’뱉어지는 말‘이었던 ’짜증 나‘는 좀 더 포괄적인 상황에서 더욱더 아무 맥락 없이 튀어나왔다. 티비를 보며 밥을 잘 먹다가도, 졸릴 때도, 바쁘게 가방을 챙길 때도, 청소하다가도 어느샌가 내 입에서 툭 ’짜증 나‘가 뱉어졌다. 당연히 나는 당시 짜증 난다는 감정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상태였다.

김영하 작가는 위에 언급한 같은 프로그램에서 ‘왜 수업 중에 ‘짜증’이라는 표현을 금지했는지 설명했다.

 "'짜증'이라는 표현을 금지한 이유는 소설을 쓸 때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라는 거죠. 짜증이라는 감정에는 다양한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잖아요. 엄마가 생일날 미역국을 안 끓여줘서 짜증 나요? 이건 서운한 거죠. (중략)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뭉뚱그려서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진짜 감정을 들여다보면 너무 괴롭거든요. 그리고 슬픔 같은 감정을 표현하면 약해 보이잖아요. 그래서 마법 같은 몇 가지 단어로 눌러놓는 거죠. 그런데 몸에 그런 감정들이 눌려있으면 우울해져요. 곪거든요."

모든 문제 해결의 첫 단계에서는 ’인지‘가 이뤄져야 한다. 인지하고 인식하고 탐구해서 본질에 근접해야 한다. 흙을 파내서, 벌레가 갉아먹어 썩어 있는 뿌리를 드러내야 새 뿌리를 내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덮어놓고 넘기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분명 탈이 난다.

나의 경우에는, 이렇게까지 내면의 아이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언제까지 몰라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방금 ‘짜증 나‘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린 감정이 무엇인지 재차 묻고, ‘집’이 떠오르는 순간이 엄밀하게 어떤 감정과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지 감정의 경로를 추적했다. (보통은 부정적인) 해당 감정을 알아내고서 무작정 해결하려 들거나 스스로 납득할 만한 부연 설명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래, 순간 느껴진 감정이 외롭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구나.‘

‘아, 이걸 본 내가 아늑함을 그리워하는 거구나.‘

단지 알아주는 것, 이뿐이었다. 습관적으로 진짜 감정 찾기를 하다 보니 하나하나 잊힌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있었고, 어느 순간 나에게서는 ’뱉어지는 말‘ 습관이 사라졌었다. 다시 이 습관이 고개를 든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나의 진짜 감정 찾기>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다름 아닌 영어 공부였다. 영어를 배우고 연습하며 점차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29살의 내가 있다. 그리고 좋다, 싫다, 재밌다, 어렵다, 긴장된다는 표현을 써보기 시작하는 영어 언어 5살의 내가 있다. 영어를 배우고자 해외에 왔으니 당연히 말하는 기회가 늘었다. 계속해서 내 생각을 드러내야 했고, 내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우버를 타고 우버 기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도, 조금이라도 영어 연습을 하기 위해 대화를 피하지 않았다. “캐나다에 와보니 어때?” 그 간단한 질문에 이건 좋다, 저건 싫다, 등등 대답하다 보니, 나의 꼬이고 꼬인 감정선을 이제야 5살의 영어를 사용하는 내가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 온 지 한 달, 이곳에서 일반인 응급처치자 자격증을 따고자 교육장에 갔다. 여태 병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 꽤 얕보고 겨우 본강의 날짜의 이틀 전에 과정을 등록했다.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는 본강의 이전에 온라인 과정을 수료해야 했는데, 생각 이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루는 세세함에 이틀을 꼬박 새워서 겨우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강의실에는 약 15명의 수강생이 있었다. 책상 없이 의자에만 앉아 둥그런 원형의 배치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사의 주도로 각자 해당 과정을 왜 신청하게 되었는지, 어떤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의료 관련 학과의 학생, 사람을 많이 대하는 직업, 베이비시터, 건물 보안 직원, 취업 준비생 등등 모두 각자의 이유로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유향입니다. 캐나다에서 1년 정도 머무를 것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응급구조사로 4년을 일했는데, 캐나다에서 머무르는 김에 이곳의 응급 의료 관련 교육을 수강하고 싶어서 신청했습니다. 아직 영어를 배우고 있기도 하고, 영어로 관련 과정을 배우는 것은 처음이라 매우 긴장되네요."

떨면서도 나름 막힘없이 대답하는데, '긴장된다’는 그 말을 하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마스크 콧대를 고쳐 잡는 척 고인 눈물을 훔쳐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 긴장된다는 속마음을 꺼낸 것만으로 눈물이 난 거야? 그리고 나는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직은 낯선 캐나다의 거리를 걸으며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뭔지 몰라도 늘 괜찮다고만 말하던 내 안이 단단히 엉켜있었다. 이때가 캐나다 입국 27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이후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도서관에 영어를 배우러 다니고,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가 나의 하루하루를 지지해 주며 나의 작은 세계가 넓어졌다. 나는 나를 소개해야 했고, 나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홀로, 아무런 역할 없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책에서 나온 표현 '우리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서 '노바디'가 된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으로서 바다 건너 캐나다에 오고 보니 매일 나를 표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이도 직업도 떼어내고 자기소개를 하려니 정말 '나 자신'밖에 남질 않았다. 살살 대화를 풀어내다 보니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내가 무엇을 쳐다보고 있는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깔끔하게 느껴졌다. 대화의 리듬에 내 감정과 느낌을 올려놓기도 쉬워졌다. 점점 “긴장되네요”라는 말도 어려웠던 그때와 명확히 달랐다.  

체할 것 같던 내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고 내뱉고 있는지는 그동안 써온 글에 확연히 보인다. 날카롭게 내보일 때도 있었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동안 써온 글을 모아보니 훌륭한 성장 요약본이 되었다. 글 속의 나는 점차 달라지고 있었다. 일 년 간의 변화조차 너무 빨라서 내 글을 접하는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할까 봐 걱정이 될 정도다.


최근에 캐나다에서 응급처치 강사 자격증을 땄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삶의 또 다른 파트로서 글에 쓰일 것이다. 영어가 유창하지도 않지만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대뜸 시작해서는 정말 많은 부담을 받았다. 연습 강의와 본 강의 전날에는 잠이 오질 않아 몇 시간짜리의 대본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강의를 준비하다 보니, 속에 또 어떠한 것들이 쌓여갔던 모양이었다. 잠시 숨어있던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의 ‘뱉어지는 말’ 습관은 내 속에 채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결이 달랐다.

“할 수 있어”

“잘했어”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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