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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Sep 25. 2023

아직 결말을 적지 못하는 이야기

나에게 진짜 여행의 의미란,

‘일기 수준의 글이라도 조금씩 정제해서 나의 감정 흐름과 발전을 적어 가보자’라고 다짐하고 실행했던 시기가 캐나다에 온 지 한 달째였다. 당시 내가 유일하게 신경을 썼던 일은 잊혀진 나의 감정에 이름을 부여해서 하나씩 먼지를 털어주는 것이었다. 그 이전의 상태는 마치 감정이 소진되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깨달을 정도로 나날이 새로운 느낌으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86일이 흘렀고, 그 기간은 누군가에겐 세계 일주를 했다던 긴 시간이었다. 나는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만 보는 훌쩍 넘게 산책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영어 세상에 나를 노출할 뿐이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목적이 있으니 하루 이틀만 나태하게 뒹굴뒹굴하다 보면 금방 잊기 쉬웠다. 당연하게도, 게을러지는 과정은 너무 간단해서 마냥 누워있고 싶어 진다는 것을,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염없이 기분이 가라앉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게을러지는 것에만 부정적이진 않았다. 간혹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면 그렇게 기분이 더러울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곧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하루하루 움직이는 바보의 시간을 말한 것이다. 여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무시한 채로 살았다. 슬픈 감정을 덮고, 상처받은 속마음을 무시한 채 자존심을 부렸다. 그래서 이참에 올곧이 나만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작고 사소한 일이더라도 나에게서 잊으려고 눌러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이끌어 준다면 그것이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었다.

나의 캐나다 생활과 영어 공부는 단순히 해외의 삶에 대한 로망을 이뤄냈다는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목적도 없이 여행자도 노동자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자로써 해외에서 지내보니 모든 것을 싹 무로 돌려놓았다가 다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캐나다라는 분위기에 익숙해진다. “오늘은 어떻게 보낼 거야?”라는 질문을 들으며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이 소중한 시간을 보낼지 생각을 해본다. 행복하게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만 보씩 걷는 것이 일상이었다. 1.5 킬로미터를 걸어가서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도서관도 다녀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서 책도 읽어본다. 계속해서 하루하루를, 매시간을 채우고, 영어를 배우고 써먹는다. 내가 지금 어느 정도 레벨에 있는지 파악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점검해 보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나갈지 계획해서 끈기 있게 조금씩 쌓아간다. 그러면 오늘 갔던 마트에서 와인이 어딨는지 물어볼 수 있었다면, 내일 갈 때는 햄을 맛봐도 되냐 물어보고, 어제 샀던 와인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골라서 사 갈 수 있게 된다. 그런 작은 변화가 조금씩 나를 채워갔다.


나의 존재는 매우 작은 변화의 유무에 있었다. 변화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 성취감, 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나의 노력, 나의 하루, 그 모든 것이 나의 존재를 채운다. 단순히 시험을 백 점 맞거나 공부를 잘해서 어떠한 것을 이뤄내는 것보다 더한 존재감을 끌어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었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부모님의 우울증을 함께하며, 어느새 현재의 공기를 느끼고, 눈으로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모든 것을 인식하며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이 아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언제였는지, 그땐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아 그동안 나름 성인이 되었다고, 경력도 잘 쌓고 있다고 잘난 척하던 나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그날이 어땠는지조차 남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일했던 기억만큼은 환자 한 명당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낱낱이 설명할 수 있었음에도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삶이었다. 내 삶에 내가 삭제된 기분이었다.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설명할 수 없는 삶이 과연 정말로 숨을 쉬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가끔은 퇴근하고 정신을 차리니 집 건물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적이 있었다. 분명 버스를 기다린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환승을 하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시끄러운 시장가를 통해 집에까지 걸어온 기억이 없다. 바쁘게 산다고 말하면서도 이러한 공백을 느끼는 하루가 늘어나고 있다면 이건 정체된 삶이지 않을까. 친구와 재밌게 놀고 집에 와서 하루를 돌아보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떠오르지 않은 적도 많았다. 나는 진심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그 삶이 행복하지 않았는가? 그건 아니었다. 순간순간 나에게 온 즐거운 행복을 알아볼 수 있었고, 어떤 것을 먹고 싶은지 의욕도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하면 주택 청약을 시도해 볼 수 있을지, 결혼을 생각해 볼 수 있을지 등등의 미래를 위한 계획과 상상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 미래에 ‘나‘라는 존재가 있느냐, 아니면 그저 ‘29살 홍모 씨’가 있느냐는 제쳐둔 계획이었다. 그저  돈을 5천만 원 정도 모으면 종잣돈으로 삼아,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실전 재테크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 등등의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각은 지금 내가 있는 캐나다의 지역과 14시간의 차이가 난다. 새해 연락도 한국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먼저 울리기 시작했고, 내 생일날 또한 한국 친구들이 가장 먼저 한국 시각 0시를 넘기자마자 연락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오늘은 나의 오늘과 달랐고, 그들의 오늘의 사건은 나에게는 오늘의 사건이 아니었다. 예고편을 받아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한 박자씩 늦은 현실감을 받게 되니 약간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심적 안정감을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특별한 사건 사고가 있지 않는 한, 대게는 소식에 무뎌졌다. 시간의 차이, 거리의 차이는 현대 사회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분명 같은 소식을 뒤처짐 없이 받아보았다. 그런데도 느껴지는 미묘한 단절에서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며 모두가 하나의 시간대를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심리적인 평안을 느꼈다.

친구인 듯, 타인인 듯, 여러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나‘라는 기둥이 단단하게 세워진다. 미국을 그러데이션의 나라라고 한다면, 캐나다는 모자이크의 나라라고 한다. 이민자들로 속을 채워가며 개인의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해 준다는 나라이다. ‘다양하다’라는 말에는 긍정적인 의미만 내포하고 있지만은 않다. 길에는 노숙자가 널브러져 있고, 약을 한 사람을 마주치기도 일쑤다. 나의 친구가 길거리 클래식 연주를 하고 있는데 한 노숙자가 신발을 벗어 바닥에 깔고 앉아서는 한참을 음악 감상을 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다가 끝에는 손뼉을 치고 자리를 떠났다. 처음 노숙자가 근처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경찰이 와서 제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도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왜 쫓아내려 하냐!”며 화를 내고는 자리를 지켰다. 노숙자라는 존재를 보는 일반적인 시선은 누구나 비슷할 것 같다. 불편함, 더러움, 비 존중. 이해가 안 되며 굳이 이해를 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들의 삶, 그렇지만 그들 중 일부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노숙자’라는 극단적인 예시를 들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모두의 정답이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며 주변 사회의 시선에 따라 세웠던 정답이라는 틀은 결국 나를 옭아매는 장치가 되었다. 나를 일반인과 다르다며 추켜세우는 사람 없이, 그렇다고 내 인생이 느리다고 깎아내리는 사람도 없이, 자연스럽게 ‘정답‘이라는 것은 없는 게 아닐지 생각하며 나를 조금씩 놔주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약간 다른 길을 찍고 와도 인생 누락자는 되지 않음을 느꼈다. 1, 2년의 ‘딴짓’이 남들보다 나의 사회적 경력을 늦추게 되는 원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인생에 있어 패배자가 되는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이 선택은 나의 책임에 따라 전개된다. 그러니 내 생각이 확고하다면 약간의 티끌과 같은 경험은 생채기가 아니라 특징이 되어 나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정답만을 향해가면 정답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놨다. ‘정답‘이라는 틀에 맞춰가면 정답을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남들의 정답은 나에게 있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지만, 나는 분명 주변의 말에 또다시 흔들릴 것이다. 나를 평가하는 말, 또는 나를 이미지를 지정하는 표현을 들으며 또다시 작은 틀에 나를 묶어둘 수도 있겠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니면 틀린 지 남들에게 확인받으려고 재차 묻고 스스로 의심하고 그렇게 오래된 습관이 고개를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글로써 내 생각을 남겨둔다. 일 년의 시간을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해외에 와서, 모든 연락을 줄이고 나의 ‘오늘’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버리고자 했던 시간은 버린 시간이 되지 않았고, 숨통을 트이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겨우 일 년으로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직면해야 할 문제가 태산이다. 순간 다시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상태를 판단할 줄 알고, 안정적인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기억한다. 기억을 잊을까 봐 글로까지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바래지는 기억은 있을 테니, 이 기억을 얼마나 오래 끌고 가는지가 중요할 것인가, 아니면 이 기억을 바탕으로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가치 있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인가.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아직 나의 길을 찾지는 못했음을 안다. 반면에 내가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다. 이전에는 하고 싶은 일을 누군가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웠다. 마치 안개 저편에 있는 듯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무언가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경험을 통한 상상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무엇이 즐겁고 무엇에 흥미가 떨어지는지 현재의 나는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소제목이 “아직 결말을 적지 못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삶과 여행의 중간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진짜 여행이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와서 하나의 점이 되는 과정이고, 하지만 그 점 또한 그림이 될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나의 여행이고, 이제는 그림을 그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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