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바탕화면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한 웹브라우저, 크롬의 '아이콘'을 클릭한다. 아이콘이란 단어는 동방정교의 성화(聖畵)를 가리키는 러시아어이콘(Икон)에서 유래했고, 이콘은 ‘형상(image)’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에이콘(εικον, eikon)에서 유래했다. 나에게 '아이콘'을 더블클릭한다는 행위의 의미는 곧 내가 그리는 이상형, 우상을 '찜'할 거라는 암시의 느낌을 갖게 한다.우리는 각자 자기와 가까워지길 바라는 인간상을 내재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콘을 통해 열린 페이지 화면, 가장 첫 번째로 내게 보이는 것들을 보자. 본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내가 보는 것 이외에 나머지는 보지 않겠다는 개인 주체의 선택과 집중이라 할 수 있겠다. 동시에 나머지를 보지 못한다는 시선의 한계도 나타낸다. 고로 매번 맞닥뜨리는 첫 페이지는 나에게 '운명'과도 같다. 보이는 것은 운명이다.
그 운명의 페이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우선 상단에 즐겨찾기로 북마크 된 여러 페이지의 아이콘들이 즐비해 있다. 즐겨찾기 목록 중에서도노트북은 작은 창 사이즈로 9개 정도가 첫 페이지를 볼 때 한눈에 들어온다. 즐겨찾기 추가는 '사이트'를 넣는 란 옆에 '별'표시를 누르면 된다. 별로..였던 인간도 내 마음의 별로..삼으라는 깊은 뜻인가? 이걸 인간관계에 적용해보면 흥미롭다. 내가 가장 자주 '즐겨 찾는' 사람들은 다음 9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내 생일을 챙겨주는 친구
: 내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주니까.
2. 급전 필요할 때 선뜻 손 내밀어준 친구
: 나를 세상이 말하는 돈의 논리보다 더 신뢰해주니까.
3. 밥 잘 사준 친구(특히 내가 어려울 때)
: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내 생존에 의미를 부여하고, 매슬로우의 동기부여이론 중가장 기초적 욕구를 해결해줌으로써 나를 계속 살아도 되는 존재로 인정해줬으니까.
4. 지적 허영을 챙겨주는 시사•이슈•인문 상식에 능한 친구
: 나의 부족함을 객관화하도록 돕고 새로운 영감을 주니까.
5. 커피나 술로 속 이야기 들어준 친구
: 나에게 기꺼이 시간과 귀와 마음을 소중하게 내어줬으니까.
6. 북콘서트(북 토크)와 준 친구
: 그때 아무도 안 올까 봐 조마조마한 걸 생각하면 그 자리를 꽉 채워준 친구가 얼마나 고마운지 평생 은혜롭다.
7. 내가 쓴 책 사 주고 알아서 홍보해주는 친구
: 작가에게 책을 사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천군만마와도 같다는 걸, 아는가?
8. 자주 연락해 주는 친구
: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동시에 많이 외로움을 타는 고양이 같은 인간 유형이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친구는 이미 나와 깊은 사이다.
9. 집안 경조사 찾아준 친구
: 이 9번째 유형이 특별히 고마운 이유가 있다. 나는 친구라고 말할 이들(1~9반에 중복해당하는 친구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들 경조사에 잘 간 편이 아니어서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와줬던 딱 한 명의 친구는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나에게 '찐'으로 고마운 친구 유형을 떠올리다가 문득 나는 그들에게 이런 친구였나 생각하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됐다. 내가 이기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많이 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더 베풀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즐겨찾기에 올려놓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실제 더 자주 찾아야겠다고 거듭 마음을 다져본다.
사실 즐겨찾기까지는 다른 웹브라우저에도 다 있던 것이다. 어쩌면 크롬의 가장 좋은 기능 중에 하나로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공룡 게임'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