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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Oct 13. 2022

내 안의 기준 : 관계의 가이드라인

내가 바보 같~아서..

6가까이 프리랜서로 일했다.(현재는 사업자를 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처음이 있었다. 퇴사 후 자유를 얻은 만큼 많은 걸 새로 정립해야 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나만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었다.

어떤 걸 '허용'하고
어떤 걸 '내칠지'에 대한
문제 말이다.

오직 강사료만을 기준으로 출강에 응할 것인가(돈만 많이 주면 정녕 나머지는 무조건인가), 담당자의 열의와 수강생의 자발성을 기준으로 출강할 것인가, 추천과 소개 등으로 마련된 강의는 군말 없이 출강할 것인가, 강의 장소 거리, 레퍼토리 커리큘럼이나 시간 등의 효율성 정도, 내 책을 수강생 인원대로 구입하여 강의 후 사인회를 열어주는 곳, 강의 주제와 내 강의 역량의 정합도,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해당 기관의 네임 밸류 등등..  출강 여부 기준.

살다 보면 단기 혹은 장기적으로 보기에도 나를 위해 옳은 선택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옛말에 덩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꼭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어떤 분야의 어떤 시기에는 불가피하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치여 봐야 겨우 아는 것도 있다는 말이다. 혹여나 외부에 내가 낮은 판단 수준을 가진 인간으로 비칠까 봐 창피해서 '척'만 하고 살다가는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거다. 배움의 자세로 치여봐야, 온몸으로 안다. 몇 번 치인 걸 실패라고 치부하고 좌절해 두려움과 불안에 지고 마유리멘탈도 호기롭지 못하다.


내 안의 기준을 삼아 필요한 순간, 힘차게 외치도록 해야 한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정돈되길 바란다면 말이다. 일렬종대로 헤쳐 모이기 위해서는 제 멋대로 퍼져 있을 때 누군가 하나는 콕 찍어 기준~!을 외쳐야 하는 것처럼.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인간인지, 횟수이든 어휘이든 도덕적 관념이든 간에 냉정한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 건강하게 관계 맺기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의 가치관과도 이어진다.


요즘 에게 들어오는 숱한 강의 제안에 거절하는 횟수가 더 잦아졌다. 달라진 거라면 전에는 거절만 하고 끝냈는데, 요즘은 다른 강사 분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연결해주기에 이른다. 나 먹고살기도 죽겠는데 지금..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못할 짓이다.


내가 최근에 마음에 깊게 새긴 좌우명이 있다.

 '돈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99%다.'
세상에 돈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건 돈이 모자라기 때ㅁ...

그렇다. 내가 거절하고 누군가를 추천하는 건 이 1%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지. 나를 희생한다거나 재능기부, 사회복지 실천과 같은 고상함이 아니다.

좋은 기회가 오면 나는 내 생계를 우선순위로 하여 이익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다. 나부터 살아야 주변도 산다. 내가 불행하면 주변의 기운도 불행하게 만든다. 난 행복한 기운을 뿜어내며 주변도 그랬으면 한다. 


사실 좋은 기회 비슷한 것이 바로 어제 찾아왔었다. 근데 내가 복을 발로 차 버렸다. 저 99%와 1%를 구체화하지 못한 탓이었다. 까마득한 선배님이 내가 글쓰기 강의하는 걸 알고 글쓰기 코칭 개인적으로 받고 싶다며 연락한 것인데, 비용을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내 안에 선배가 이런 요청을 했을 때 이렇다 할 기준이 없던 거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지키는 가이드라인, 마지노선, 매뉴얼 등이 명확히 있었다면 순조롭게 진행 수 있었던 일을 그만 그르쳐 버렸다.

그냥 시원하게 "OO라서 얼마입니다"라고 제시했다면 차라리 더 깔끔했을 텐데. 사회적 관계를 다 떠나서 내가 프로페셔널이라면 당당히 내(공개 가능한)기준을 제시하고 상대가 판단하도록 공을 넘겨야 했다. 진행 성사 여부를 떠나서 찝찝하게 나는 '밍기적'거렸다.

솔직히 난감하네요. 대선배님께 얼마라고 대놓고 말씀드리고 진행하기가..

내 속마음은 '일대일 코칭이 너무 비싼 걸 대선배에게 그대로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확 깎아서 제시하는 것도 실례일뿐더러 내 강의 일정에 막대한 손해이고... 


기준이 없으니 생각이 많아져 딱 잘라 말하기가 정말 모호했다. 골문 앞에 스트라이커가 패스할지 슛을 때릴지 너무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 끝나는 거다. 핑계를 대보자면, 그냥 수강생이고 비즈니스 관계고객이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10년 차도 훌쩍 넘는 선배라는 포스가 나를 압도한 뒤였다.


"생각하시는 비용에 최대한 조율할 의향이 있다"고만 했다가 결국 둘 다 명확히 말하지 않고 흐지부지 버렸다. 이건 비단 '출강의 조건'에 맞는 기준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관계를 맺고 끊을 땐 다 똑같다.


연애 직전 썸 타고 삼귀는 사이에서도 나는 이렇다 할 기준이 없었다. 나를 깨닫고 상대 정치적·사회적 관계를 가장 밀도 높게 경험하는 것이 연애일진대, 공식처럼 다가오면 나는 급히 밀어내거나 너무 푹 빠지거나 하기 일쑤였다. 썸을 타거나 연애한 횟수는 적지 않은데 비해 연애고수가 되지 못한 이유다. ((앗, 이제야 메타인지가 되는 걸 보면 드디어.. 도가 튼 것인가?))


자기 안에 기준이 확실한 연애고수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명징하게 내재해있다. 가시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맘에 든 상대를 만났을 때.

고백은 최대 딱 세 번만 하겠다. 그때까지 거절하면 미련없이 돌아선다-는 개념이 박혀있는 상태.
내가 바보 같~아서

이런 타입은 무리하며 이기적으로 열 번씩 찍어 상처 남길 일도 없다. 나름의 세 번도 센스와 눈치를 최대치로 발휘해 얼마든지 그전에 끝낼 수 있다. 유연하게 조정·조율이 가능하다.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는 과정이니 서로 관계의 맺음 깔끔하다.


이런 기준 설정이 없는 사람은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남긴다. 좋았던 관계가 질척이는 상태로 변질되거나 오해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서로 타이밍이 안 맞아서 한창 설렜던 시작마저도 의미 사라져 버린 채 끝맺음이 흐지부지되고 만다. 아니 그런 바보 같은 인간이 어딨냐고? 그게 나다.

이 나이 먹도록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가 내 안의 기준이 명확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하고 결론을 내렸다. (나이를 굳이 전제로 하는 건 경험치가 확률상 높기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만 불과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 조건. '유연하게' 허용할 수 있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 조건. 거기에 '따르는' 나의 말이나 행동, 마련할 조건 등이 모두 개인이 내재한 관계의 가이드라인에 감각적으로 새겨져 있어야 좀 더 깔끔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위기대처능력과 장기적 혜안을 발현하는 순발력 좋은 사람보면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기준이 비교적 확고하다는 점이다. 그게 누적된 결과로써 자연스러운 바이브가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똥고집으로 비칠 것인지 지혜로 비칠 것인지는 사소한 차이에서 판가름 나는 법. 간접·직접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지혜롭다. 모든 어른이 꼰대가 아니라,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위험할 뿐이다.

글: 책<문장의 위로> 이동영 작가/ 캘리그라피: 셀봉캘리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기회를 붙잡는 자는 준비된 사람이라고 하지 않나. 이 준비가 기준안 마련이다. 여러 안들을 시도해보면서 덩인지 된장인지 구별하는 감각을 익히고 반복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며 성숙한다. 멘탈도 점점 단단해진다.

내 안의 기준에 따라 시원하게 분노할 때와 참고 넘어갈 때를 알고 행한다는 건 괜찮은 나를 완성해가는 인성과 인격 세팅의 영역이다.


지금 왠지 정체한 기분이 들거나 기회가 나를 자꾸 비켜가는 것 같다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지 말자. 대신 과감하게 들이대고 경험하면서 내 안의 기준안을 하나씩 마련해 최적안을 선정할 시점이라고 생각하자.


인생에 기회가 딱 세 번만 온다는 말? 나는 믿지 않는다. 수없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기회가 눈에 보이는 순간이 다. 그때 내 안의 기준이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줄 거라고 믿고 실행해보는 거다. 그럼 성공과 실패가 아닌 성공과 과정으로 남을 것이니.


글_이동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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