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중학생 시절, 아침조회를 운동장에서 하는데 전교생 앞에서 교내백일장 대회 '장려상' 수상을 받았던 경험이. 그 다리 후들거림과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끔찍이도 싫어했던 학교인데 학교 전체가 나 하나만 집중해 주목하는 스포트라이트를 켠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내 이름 하나가 불리고 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단상 앞까지 뛰어 올라가고 거기서 교장선생님인가 하는 이로부터 악수와 상장을 받는 약 1분 동안의 내 다큐멘터리가 라이브 생중계되며글쓰기 역량을 공개적으로 인정받는 초유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전까지 백일장에 뭘 써서 제출하라 하면 «88'전국국민학교글짓기수상집»이라는 책 속의 글을 베껴서 제출했었다. 근데 더 이상 베낄 글이 없자, 처음 내 힘으로 100% 순수하게 내 생각과 느낌을 문장으로 표현했는데 무려 전교생 앞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장려상은 작은 상이겠지만, 나는 이 상 이후로 교내 모든 백일장 대회를 휩쓸었고 교내 소식지에 내 글이 매번 실렸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나를 개무시하던 담임이 있었는데, '네가 무슨 글을 써?'라고 토씨하나 안 틀리게 말한 주식에 미친 기술·산업 과목 교사였다. 본래 음악 과목 교사가 담임이었는데 학원을 차려서 잘렸다. 그래서 바뀐 담임이 그딴 인성의 소유자였다.
그때 담임이 '교통안전 글짓기 대회' 글 써볼 사람? 해놓고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점수를 몰아줄 생각이었는데 성적도 변변치 않은 내가 손을 드니 모진 말을 쏟아낸 것이었다. 결국 나는 대상을 받았고, 교장실에서 전교에서 하나밖에 없는 1등 상을 수상했다. 그때 대상이 '금상'이었는데, 전교 1등이 은상을, 전교 2등이 동상을 수상했다.
당시 중학교 도서관 사서 교사가 심사위원이었다. 금상 받은 나를 도서관에 부르더니 글을 정말 잘 썼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으니 지금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잘 진학하고 꼭 작가의 꿈을 꿔보는 것도 어떻겠냐, 지금처럼 글쓰기가 좋다면 작가가 되어 계속 글을 써보라"라고 했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당시 글쓰기는 나에게 너무나 짜릿한 설렘 그 자체였다. 글 쓰는 시간만 되면 심장이 너무 좋아서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기도 했다. 아마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가 좋았고 지금은 그 글쓰기를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글쓰기 강사로서 살고 있다. 모든 건 그 어렸을 적 최초의 공개적 인정과 심사위원이었던 도서관 선생님의 칭찬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