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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Sep 30. 2023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너에게

싫은 건 분명히 - 에세이«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중에서

이동영 작가 반려묘 다행이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 ‘다행이’는 나를 인간 이동영답게 만들어 준다. 그건 다행이가 고양이다운 덕분이다. 아니 고양이도 다 똑같지 않으니까, 다행이답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다행이는 ‘다행이로서’ 산다. 꽃을 두고서 ‘꽃답다, 꽃스럽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듯이 다행이도 그저 다행이로서 온전히 존재할 뿐이다.

나에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라도 껌딱지처럼 종일 붙어 있는 다행이란 녀석은 시크하다. 내가 오라고 할 때는 안 오고, 자기가 오고 싶을 때만 ‘냐아웅’ 하면서 꼬리를 치며 온다. 내가 바닥에 나란히 누워서 자꾸 쓰다듬으려 하면 녀석은 가장 꼭대기에 점프해 올라가 나를 내려다본다. 고양이 전용 바디 티슈로 몸을 닦아주기라도 하면 녀석은 자기 혀로 다시 처음부터 구석구석 제 몸을 그루밍한다.

다행이는 자주 발라당 배를 보이고 눕는데, 만져 달라는 게 아니라 편안한(기분 좋은) 상태라는 걸 나에게 보여 주는 바디 랭귀지다. 그때, 다행이 배를 손으로 만져 주면 녀석은 바로 앙- 하고 이빨로 물어 버린다. 세게 상처를 내려고 무는 게 아니다. 배를 만지는 게 싫다는 걸 알리는 정도로 무는 ‘시늉만’ 한다. 전혀 아프지도 않고, 상처는커녕 약간의 자국조차 남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물었던 내 손의 그 지점을 혀로 날름날름 핥아 준다. 싫어하는 걸 분명히 표현하되, 관계의 선은 지키는 것이다.

  이런 고양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다행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 인간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인간 이동영으로서 싫어하는 것. 그건 바로 다른 시선을 신경 쓰느라 잊고 살았던, 내가 그어 놓은 ‘선’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

20대 중후반에 화풍을 바꾼 파블로 피카소의 변화

오랜만에 만났을 때 삶을 부쩍 업그레이드한 지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비슷한 점이 있었다.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해서 자신으로서 삶을 개척한 모습이었다. 다시 전처럼 가난해지는 게 지독히도 싫어서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투자해 알부자가 된 분. 시스템 없는 작은 회사에서 주말까지 붙잡혀 대책 없이 일하는 게 싫어서 세계적 기업에 취업해 자리 잡은 분. 더는 연애로 방황하며 상처받는 게 너무 피곤하고 끔찍이도 싫어서, 결혼하고 정착해 애도 낳아 열심히 사는 이까지. 그들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한순간 로또 당첨 같은 것이 아니었다.


-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이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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