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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Oct 30. 2024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좋아할 필요 느끼지 못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이 각자 외로운 게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이걸 아는 이상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거다. 여전히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는다. 여전히 사람은 각자 외롭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달라졌다.


그냥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인간은 누구나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뿐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그냥 타인이 이해와 오해와 의도와 실수 등으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역학 관계를 굳이 빚어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거란 걸.


우리 몸 신체 기관 하나하나의 시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면 갑자기 이 세상이 참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우주 속 한 점 먼지 같은 우리가 지구에서 또 이렇게 땅을 차지하고 먼지와 공해를 일으키며 살아가는 게 새삼 자각되는 것이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세상이 본래 사람과 사람을 어색하게 엉켜 놓은 거란 걸. 누구도 원한 바 없단 걸.


그래서 난 이제 사람을 좋아한다 안 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호오를 선택할 대상이 처음부터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운명이니까. 누굴 탓할 수 없으니 다정하게, 배려해야만 하고, 귀 기울여야 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 내 인생 안에서 부대껴야만 하는 연이 있는 것이 인간관계이니까. 


일상의 평화를 해치는 어떤 인간이 하필 악의를 가지고 날 물어뜯거나, 친밀한 배신자였거나, 악의가 아닌데도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존재  그러한 관계 살아가면서는 불가피하다.


그런가 하면 나를 돕는 귀인 같은 인연도 있고, 소소하게 좋은 영향을 남기고 스치는 인연도 있는 것. 그러니까 한 명 한 명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그저 멀리 보면 감사한 경험으로 겪어낼 각오를 하게 되었다. 잊힐 사람은 잊히고 만날 사람은 만나고 스칠 사람은 스치니까. 애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가 아니라, '한다'.


그냥, 사람 만나는 걸 한다.


해야 하니까. 국방의 의무 납세, 교육, 노동의 의무처럼.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살아있는 한 의무이다. 자연인으로 살아도 현대 문명사회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싫어하는 건 사람 자체가 아니라, '술에 취한 이를 상대하는 것'이라든지 '나를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를 만나는 것', '비호감으로 날 보는 이를 매일 마주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일 테다.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이를 만나고 이야기 나누려고 한다. 나를 확장해 가고자 한다. 나로 인해서 상대도 확장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건 그가 나를 어떤 태도로 만나느냐에 따라 라진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만남은 없으므로. 공허라도 남는다. 허무라도 남는다. 누구도 그걸 위해서 만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남는다. 인간관계가 그것인데 어찌 피할까. 마주하면 된다. 내 삶을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시적산문으로 만들면 작품이 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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