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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an 24. 2017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이동영의 시선(詩選) - 01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에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87회 '0'편에 나와서 알게 된 시이다. MC 김제동씨는 맨 마지막 두 행이 인상깊다고 꼽았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근데 나는 처음 듣고 이 브런치에 '이동영의 시선'을 굳이 포스팅하게 된 구절이 김제동씨와 달랐다.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이 중에서도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라는 구절이 가슴을 후벼팠다. 정말 크게 공감가는 구절이다. 역시 시인이 되려면 시를 살아야 하는가보다. 내가 쓴 시인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와 일맥상통한 구절로 갈음한다.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시인 고정희는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등단 이후에는 주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한 원죄 의식과 고독감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썼으나, 1970~80년대에는 반민주적 정치 현실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현실참여적인 시를 썼다.

1986년 여섯 번째 시집 『눈물꽃』을 출간하면서 쓴 글에서 시인은 “시인에게 시란 생리작용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사소한 생리, 그러나 통로가 막힐 때 질식 직전의 고통에 시달리며 노여워하며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신비한 생리, 그것이 시의 힘임을 알게 되었다.” 고정희 시인의 전체적인 시적 경향은 기독교적인 실존의 영향 아래에서 인간성 회복을 염원하는 방향을 보였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1983년에 출간된 네 번째 시집 『이 시대의 아벨』에 수록되어 있다.

(이하 생략)
출처 : http://naver.me/xvHFRFl9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현대문학
201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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