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론

by Edward Alistair Langford

보수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통상적으로 보수를 '현상 유지'라고 정의하지만, 이건 표층적 오해다. 보수주의의 사상적 출발점은 에드먼드 버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크는 프랑스혁명의 급진적 파괴를 거부했지만, 동시에 영국의 의회 전통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점진적 개혁 자체에는 찬성했다. 그에게 보수란 기존의 모든 것을 지키는 태도가 아니라, 지킬 가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판단력이었다. 즉 진짜 보수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먼저 설계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논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보수는 오히려 더 깊은 수준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링컨이 공화당이라는 보수 진영에 서면서도 노예제 폐지를 밀어붙인 건, 연방의 질서와 공화국의 헌정 원리가 노예제와 공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 역시 1952년 이전까지는 반공과 헌정 질서, 정당제를 기반으로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골격을 구축하려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즉흥적 감정이 아니라 제도와 질서에 대한 구조적 설계를 앞세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은 이 기준에 부합하는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군이 국회로 향했고,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정치·사회 전반의 통제를 선언했다. 결과는 선포 6시간 만의 해제였지만, 남은 건 헌정 질서의 노골적 훼손이라는 사실이었다. 국민의힘은 이 사태를 앞에 두고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1차 탄핵 소추안 표결에서 의원 105명이 집단 퇴장했다. 결국 2차 표결에서 탄핵이 가결되고, 2025년 4월 헌법재판소는 8인 만장일치로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전 세계에서 대통령 탄핵을 두 번 경험한 최초의 정당이라는 불명예는 덤이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무엇인가. 지킬 가치가 있는 것들. 즉 헌정 질서, 권력 분립, 법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 이들은 단 한 번도 일관된 판단을 보여주지 않았다. 1차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하면서도 국제 여론과 국내 민심이 악화되자 슬그머니 입장을 조정했고, 탄핵 가결 이후에는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려 했다. 나경원 의원은 국회를 포위한 것이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국회를 봉쇄한 것은 계엄군과 경찰이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될 경우 발의 의원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하는 법안을 야당과 공동 발의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의 언어인가.


근본적 문제는 이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이 실제로 지킨 것들의 목록을 열거해보면 분명해진다. 대통령의 법적 면책, 강남 부동산과 학벌 구조, 반공 브랜드, 기득 권력 집단의 이해관계, 그리고 '우리 편'이라는 감정적 귀속감이다.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제의 구조적 결함을 논한 적이 없고, 시장 질서를 지키기 위해 재벌 개혁을 주장한 적도 없으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기 진영의 권력 남용을 제어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슬로건으로서의 '자유'와 '시장'은 반복됐지만, 그것을 실제로 지탱하는 제도 설계에는 무관심했다.


이것은 보수주의가 아니다. 정확히는 기득 수호주의이며, 감정적 반동주의다. 자신이 불리해질 때 법 위에 감정을 올려놓고, 권위보다 인기에 기대며, 절차보다 결과를 먼저 계산하는 태도는 버크가 경계했던 바로 그 자의적 혁명주의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방향만 반대일 뿐이다.


한국에서 진짜 보수가 지켜야 할 것들은 따로 있다. 권력의 절차적 책임과 분립 구조를 뒷받침하는 헌정 질서, 감정이 아닌 규칙으로 운영되는 법치, 선거와 정당 같은 공적 제도, 중산층 기반의 시장 질서, 시민적 책임감, 그리고 연금·교육·인프라로 대표되는 세대 간 사회계약이다.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대통령제를 손보자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세금 구조를 재설계하자고 논할 수 있어야 하며, 재벌 개혁을 의제로 올릴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진영의 권력 남용도 법 아래 두겠다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기준에서 보면 지금 한국의 자칭 보수 다수는 복고주의자이거나, 반공 브랜드 상인이거나, 기득권 수호대이거나, 이미지 장사꾼이다. 보수주의를 코스프레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의 위기는 선거 패배나 탄핵 파면의 문제가 아니다.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게 본질적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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