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지역주의를 없애려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말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수십 년째 확인하고 있다. 화합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여럿 나왔고, 지역감정 극복을 외치는 캠페인도 반복됐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면 영남은 보수, 호남은 민주당으로 돌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주의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선거제도의 문제다.
지금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 단순 다수 1위 당선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만 뽑고, 가장 많이 득표한 사람이 이긴다. 이 방식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선거 결과를 보면 안다. 대구·경북에서 민주당 후보가 40%를 득표해도 한 석도 얻지 못한다. 호남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30%를 득표해도 결과는 같다. 표가 사라진다. 사표가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유권자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에 표를 낭비하지 않고, 그 지역에서 이길 수 있는 정당에 집중적으로 투표한다. 이것이 지역주의의 구조적 원인이다. 감정이 먼저가 아니라 제도가 먼저인 것이다.
1987년 체제의 기본은 소선거구제 국회의원 제도와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는데, 3김과 1노는 각자의 셈법으로 공천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지역정당 체제를 그리며 합의했다. 지역주의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 제도 안에서 정치인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제도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해법도 제도에서 나와야 한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질적 도입이다. 이름이 길고 복잡하게 들리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리고 정당이 전국 어디서든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겠다. 전국을 권역으로 나눈다. 예컨대 영남권, 호남권, 수도권, 충청권, 강원·제주권 같은 방식으로. 각 권역에서 지역구 선거를 치르되, 비례대표 의석을 그 권역 단위로 배분한다. 정당이 영남권에서 지역구 의석을 하나도 못 얻었어도, 그 권역에서 30%를 득표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례 의석을 갖는다. 호남에서 20%를 득표한 보수 정당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선관위가 19대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해 본 결과 새누리당은 호남권에서 4석을 확보하고, 더민주는 대구·경북에서 5석, 부산·울산·경남에서 14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호남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새누리당과 영남에서 2석만 얻은 더민주가 상대 당의 텃밭에서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제도가 바뀌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의석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의 행동 방식 자체가 바뀐다.
지금 민주당은 영남에서 선거를 뛰지 않는다. 어차피 이길 수 없으니까.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선거를 뛰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러나 권역별 비례가 도입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남에서 득표한 만큼 비례 의석이 나온다면 민주당은 영남에서 진지하게 선거운동을 할 유인이 생긴다.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정책을 만들고 후보를 세울 유인이 생긴다. 득표가 곧 의석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각 지역의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 손해가 된다.
연구에서는 의석 정원을 그대로 두고 비례 의석을 100석으로 늘리는 경우와, 지역구 의석 245석을 그대로 두고 대신 비례 의원정수를 120석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의석수가 커질수록 지역별 독점 현상은 완화되었다.
비례 의석이 많을수록 효과가 크다는 것은 연구로도 확인된다. 현재 한국의 지역구 대 비례 비율은 약 5.4 대 1이다. 독일은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1대 1이고, 뉴질랜드는 1.4대 1이다.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비슷할 때, 연동형의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다. 2019년 한국의 준연동형 실험이 실패한 것은 연동형 자체가 나쁜 제도여서가 아니라 이 비율이 너무 낮은 상태에서 반쪽짜리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위성정당 문제도 비율이 낮으니까 그 적은 비례 의석을 채가기 위해 꼼수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도입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첫째. 비례 의석 비율을 현행보다 대폭 높여야 한다. 전체 300석에서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를 100석으로 늘리거나, 의원 정수를 확대해서 비례 의석을 추가하는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의원 수를 늘리면 비용이 든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맞다. 그런데 지역주의가 지속되는 비용과 비교해야 한다. 영남 민심이 국정에 반영되지 않고, 호남 유권자가 수십 년째 사실상 선거에서 소외되는 상태가 공화국의 원칙에 부합하는가. 그 구조적 비용이 의원 수십 명의 인건비보다 많이 든다.
둘째. 위성정당을 원천 봉쇄하는 조항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2020년 준연동형 실험이 무너진 핵심 원인이 여기 있었다. 위성정당 창당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한 줄짜리 법률 조항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꼼수에 따라 얻는 이득을 줄이거나 정당이 지역구선거와 비례선거에 동시에 출마하도록 강제하는 간접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과 지역구 후보를 낸 정당이 동일해야 연동 혜택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 그 방향 중 하나다.
셋째. 비례 명부의 작성 방식을 투명하게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 비례대표 명부는 사실상 당 지도부의 밀실 작업으로 채워진다. 비례 명부가 권력자의 낙하산 자리가 되면 비례제의 취지가 훼손된다. 각 권역 명부는 해당 권역 당원과 시민의 심사를 받는 구조. 혹은 순위 결정 과정을 공개하는 조항이 필요하다.
이 제도가 한국 지역주의를 단번에 해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 년간 굳어진 지역 정치 문화가 선거제도 하나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조가 바뀌면 유인이 바뀌고, 유인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며, 행동이 바뀌면 문화가 서서히 바뀐다. 대구에서 민주당을 찍어도, 광주에서 국민의힘을 찍어도 그 표가 의석으로 연결되는 경험이 쌓이면, 지역 경계선을 따라 기계적으로 줄을 서는 투표 패턴은 약화한다.
지역주의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마음을 바꾸라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해도 손해가 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공화국이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