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을 비판하면 꼭 따라오는 말이 있다. "그럼 내란 세력을 지지하냐?"라고. 이 질문은 주로 대화를 끝내는 용도로 쓰인다. '민주당 비판 = 국민의힘 지지'라는 이분법을 강요해서 비판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세상에 오직 두 개의 선택지만 존재해야 한다. 내란과 민주당. 그것 말고는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 논리 구조 자체가 포퓰리즘이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것. 자신만이 진짜 민의를 대변한다는 것. 반대를 배제하는 것. 민주당 지지자들이 반복하는 이 논법이 바로 민주당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먼저 분명히 해두겠다. 2024년 12월 3일의 계엄은 헌정 파괴였다. 헌법재판소 8인의 만장일치 파면이 그것을 증명한다. 국민의힘이 그것을 방어하고 탄핵에 집단 퇴장한 것은 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이것은 이 글에서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실이 민주당의 문제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이 다른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한국 정치에서 실질적으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당이다.
21대 국회에서 176석, 22대 국회에서 175석. 두 번 연속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그 의석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들여다보면 패턴이 반복된다.
21대 국회에서 소위원회를 건너뛰고 법안을 상임위 전체 회의에 직권상정 하거나, 공청회를 한다며 야당의 눈을 돌려놓고 법안을 기습 처리했다. 필리버스터는 이틀도 기다리지 못하고 표결로 강제 종결시켰다. 야당의 거부를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민주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크고 가장 많은 개혁을 이뤄냈다"라고 자축했다.
22대 국회에서도 동일했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 내에 "1일 1건" 처리 방침을 내걸고 사법개혁 3법과 상법 개정안 등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맞서면 24시간 후 표결로 끊었다. 친여 성향 시민단체들까지 우려를 나타냈고, 수정안 입법을 반복하는 것 자체가 숙의 과정이 부족했음을 방증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기서 한 가지 반론을 먼저 차단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21대에서 필리버스터로 똑같이 방해하지 않았냐는 것. 맞다. 그런데 그 반론이 성립하려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방해로 규정하고, 민주당이 여당이 되자 자신들의 필리버스터 차단을 개혁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일관된 원칙이 아니라 편의에 따라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공화주의적 절차의 정당성은 내용이 아니라 방식에서 나온다. 내가 할 때는 개혁이고 상대가 할 때는 독재라면, 절차는 더 이상 원칙이 아니라 도구다.
사법부 문제는 더 직접적으로 다뤄야 한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특검법, 대법관 수를 늘리는 법안, 헌법재판소가 대법 판결을 다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재판소원법을 추진했다.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재판소원법과 대법관 증원법이 민주당 주도로 의결됐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이 여러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그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사법부 구조를 바꾸는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있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 비율이 높아진다. 재판소원을 허용하면 대법원판결에 불복해 헌재로 가는 통로가 열린다. 대법관 증원법 통과 직후 국민의힘은 "12개 혐의로 5개 재판받는 대통령의 무죄 만들기를 위해 사법 낭비, 사법 파괴, 사법 독립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것이 사법개혁인가, 사법 통제인가. 공화국의 기본 원칙은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분산되고 제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분산 구조의 핵심이 사법부의 독립이다. 입법부가 사법부를 재편하고 행정부는 그 혜택을 받는 구조는 삼권분립의 구조적 해체다.
또한 포퓰리즘 문제를 구체적 사례로 들어야 한다. 전 국민 민생 회복 지원금 25만 원 법안이 2024년 8월 국회 본회의를 재적 의원 187명 중 찬성 186표로 통과됐다. 13조 원이 소요되는 이 법안은 학계에서 위헌 소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예산 소요가 불가피한 정책을 특별법 형태로 추진할 경우 헌법이 보장한 행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무력화한다는 이유에서였다. KDI는 2020년 재난 지원금 분석에서 정부가 투입한 예산 14조 원의 26~36% 수준인 4조 원만이 실제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경제적 효과가 의심스러운 정책을 위헌 소지를 감수하면서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정책은 총선 공약이었다. 선거에서 이겼으니 밀어붙여도 된다는 논리. 이것이 다수결을 정당성과 동일시하는 포퓰리즘의 논리 구조다.
팬덤 정치가 정당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친명 횡재-비명횡사" 공천이 이루어졌고, 민주당이 사법 방탄과 대선 도전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도 팬덤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다. 여야가 합의한 특검안이 하루 만에 뒤집혔고, 개혁신당은 "대통령의 신중론도, 여당 지도부의 합의도, 결국 팬덤의 목소리에 무너졌다"라고 비판했다. "지금 민주당의 실세는 용산도, 여의도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정당이 팬덤에 포획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판단의 기준이 정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팬덤의 감정이 된다. 당내 이견은 배신으로 분류된다. 금태섭 의원이 공수처법에 기권 표를 던지자, 권리당원들이 징계를 요구했고 결국 지도부가 굴복해 경고 처분을 내렸다. 국회의원의 개인 소신을 정당이 강제로 누르는 것. 이것이 의회민주주의의 어느 원칙과 부합하는가. 이것은 내부에서도 비지배 자유가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팬덤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합리적 판단도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서 과연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쯤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내놓는 전형적인 반론 두 가지를 다뤄야 한다.
첫 번째. "내란을 일으킨 것보다는 낫지 않냐." 그런데 문제는 비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계엄이 더 심각한 헌정 파괴라는 것은 맞다. 그러나 비교를 통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논리라면, 한국 정치는 영원히 저쪽보다는 낫다는 기준으로만 평가받게 된다. 그 기준에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민주당이 계엄보다 덜 나쁘다는 것이 민주당이 공화국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뜻이 아니다.
두 번째. "국민의힘이 먼저 협치를 거부했지 않느냐." 이것도 같은 구조의 반론이다. 상대가 나쁘게 굴었다는 것이 내가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공화주의적 절차의 가치는 바로 상대가 나쁘게 굴 때도 지켜지는 데 있다. 쉬울 때만 지키는 원칙은 원칙이 아니라 편의다.
그래서 결론은 이것이다.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말하고 공화국을 말하고 싶다면, 권력을 가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금 현재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입법 절차에서의 숙의를 복원해야 한다. 필리버스터를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의 시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사법부를 정치적 목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팬덤의 분노가 아니라 정책의 논리가 당의 결정을 이끌어야 한다. 자신도 법 아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이것들은 민주당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민주당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을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쯤에서 민주당을 비판하면 내란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말을 다시 하고 싶은 사람에게 묻겠다. 그 논리대로라면 한국 정치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권력을 가진 한, 어떤 잘못도 계엄보다는 덜하다는 논리로 방어된다. 이것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그리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그것이 어느 쪽이든 공화국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