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론

by Edward Alistair Langford

"책임지겠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추적해보면 대부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장관이 고개를 숙이고, 대변인이 유감을 표명하며, 대통령이 국민께 송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날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책임을 진다는 말이 아무런 실질적 변화도 수반하지 않는 언어적 제스처로 소비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정치에서 책임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책임이란 무엇인가.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윤리를 두 가지로 나눴다. 심정윤리는 의도와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책임윤리는 자신의 행위가 낳을 결과를 예측하고 그 결과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베버는 정치인에게 책임윤리가 요구된다고 봤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라도 결과가 나쁘면 그 결과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 옳다면, 한국 정치인들이 반복하는 "최선을 다했다", "의도는 좋았다"는 변명은 책임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심정윤리의 언어이고, 정치에서 그것은 책임 회피의 형식이다.


그러나 베버의 결과 책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과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과정의 정당성이 사라진다. 절차를 무시하고 달성한 좋은 결과도 책임을 다한 것이 되고, 제도를 파괴하면서 얻은 성과도 정당화된다. 현실의 책임은 과정과 결과 양쪽에 걸쳐 있고, 그 두 축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가 핵심 문제다.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정치인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세가 바뀌어 불가피하게 정책을 수정한 것과 처음부터 지킬 의지가 없었던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 구별이 가능한 구조가 없으면 책임은 사후적 평가에 머문다.


공적 설명 의무. 즉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는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책임은 사후적 처벌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지속적 설명 의무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그 행사의 근거와 과정을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이 검증 가능해야 하며,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때 제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구조가 작동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 그 설명을 검증할 수 있는 정보 공개, 그리고 설명이 불충분할 때 실질적 결과가 따르는 제재 메커니즘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 세 가지가 모두 취약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 정치의 무책임을 시민의 묵인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시민이 묵인한다는 진단은 현상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원인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전가하는 방식이다. 정치인이 책임을 지지 않는 데는 시민의 무관심보다 더 근본적인 구조적 이유가 있다. 공천권이 당 지도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정치인의 생존이 유권자가 아니라 당내 권력자에게 달려 있고, 선거제도가 지역구 독점을 허용해서 실질적 경쟁이 없으며, 정치자금의 흐름이 불투명해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 구조 안에서 시민이 아무리 책임을 요구해도 정치인이 반응할 유인이 약하다. 책임의 부재는 시민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유인 구조의 설계 실패다.


그렇다고 시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틀렸다. 문제는 시민의 역할을 어떻게 개념화하느냐다. 투표를 최소한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다음에 요구되는 것이 개인의 도덕적 각성이나 지속적 감시 의지만이라면, 그것은 구조 문제를 개인 덕성의 문제로 다시 환원하는 것이다. 시민의 참여가 실질적 책임 강제로 이어지려면, 참여가 실제로 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통로가 있어야 한다. 광장에 나온 시민이 아무런 제도적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에서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 훈계에 불과하다.


제도적 책임 강제의 방향은 분명하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정치인이 당 지도부가 아니라 유권자에게 생존을 의존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다. 정치자금의 실시간 공개는 필요하지만, 공개 자체가 감시로 이어지려면 그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독립적 기구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공약 이행에 대한 체계적 평가 시스템도 필요한데, 이때 정세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수정과 무책임한 말 바꾸기를 구별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핵심 설계 문제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제도가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전용된다.


책임의 문제는 결국 자유의 문제와 맞닿는다. 자의적 권력 행사가 불가능한 구조. 즉 비지배의 조건은 권력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검증받는 구조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설명 의무 없는 권력은 언제든 자의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 2024년 계엄 사태가 보여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한 사전적 설명 의무와 제도적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권력은 한 사람의 판단으로 헌정 질서를 흔들 수 있었다. 책임의 부재는 단순한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이었다.


책임을 진다는 말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그 말이 특정한 제도적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고개를 숙이는 것도, 유감을 표명하는 것도, 심지어 사퇴하는 것도 그 자체로는 책임이 아니다. 책임은 행위자가 자신의 권한 행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그 설명이 검증되며, 검증 결과에 따라 실질적 결과가 따르는 구조 안에서만 성립한다. 그 구조가 없는 곳에서 책임은 언어로만 존재한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책임이 말장난이 된 것은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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