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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Nov 20. 2020

확진자00명 너머, 코로나19환자 개인의 삶이 보일 때

뒤늦게 펼친, 코로나19 파견 의료진의 일기장


2020년 4월의 어느 날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 이후 불안증세를 호소하는 환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항생제 투약을 마무리하고 스테이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차, "♬♪~♬♪~♪" 간호사를 찾는 콜벨이 울렸다. 코로나19 환자들은 입원해 있는 병실 밖으로 나올 수 없기에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할 때, 콜벨을 누르게 된다. "어! 제가 가 볼게요."  임상에 있을 때, 귀에 박히도록 콜벨 소리를 들었고 소리를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콜벨이 울리자마자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도움을 요청한 병실을 확인했다. 그리곤 두 다리를 감싸고 있는 방호복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릴 만큼, 빠른 발걸음으로 병실로 향했다. 이 또한 습관처럼.



"위~잉~" 병실 문을 열자마자 창가 쪽에 설치되어 있는 이동식 음압기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병실 문을 닫고 입원해있는 5명의 환자들을 한눈에 쭉 둘러보는데,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한 환자를 발견했다. 순간, '무슨 일이지? 어디가 많이 아픈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왜 울고 있어요, 괜찮아요?



라며 곁으로 다가가니, 앳된 얼굴의 환자는 대답 대신 본인의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내 쪽으로 건넸다. 두 겹의 글러브를 낀 손으로 핸드폰을 건네 받았다. 그리곤 "제가 받아 볼까요?"라고 물으니, 환자는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여보세요."
"간호사 선생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저 000 엄마예요.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저희 아이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환자의 어머니였다.

"아이가 자꾸 어제부터 침대 밑에서 누가 쿵쿵 친다면서 무섭다고 해요. 원래 겁이 많은 편이긴 한데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새벽에도 자꾸 잠에서 깨고 잠을 거의 못 잤다고 그래요. 제가 걱정이 너무 많이 돼서요. 혹시 가능하면 병실을 바꿔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좀 괜찮아질지, 부탁 좀 드려요."

"네, 많이 불안하셔서 그런가 봐요. 어머님, 제가 우선 환자분이랑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그러고 나서도 환자분이 병실을 바꾸길 원하시면, 병동 상황을 확인해 보고 상의드려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요, 혹시나 다른 전달사항이 생기면 직접 다시 전화드릴게요."

홀로 병원에 격리되어 있는 딸에 대한 걱정이 가득 담긴 엄마의 목소리. 울면서 엄마에게 너무 무섭다, 잠도 제대로 못 잔다며 전화하는 딸이 얼마나 안쓰러울까. 오직 핸드폰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채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화로 딸을 달래는 것. 그리고 딸을 치료하는 의료진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그것이 엄마의 최선이기에, 나는 어머님이 내게 전하는 이야기들을 마음을 다해 들었고, 조금이나마 걱정을 내려둘 수 있도록 답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 비로소, 신문 기사에서 보던 신규 확진자 00명이라는 수치 너머의 코로나19 확진자 개인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의료진으로서, 이제껏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 곁에서 간호했던 경험을 바탕 삼아 이 상황을 잘 해결해 드리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내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이 또한 '간호'이지 않을까 싶었다. 누군가를 '간호한다'라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처치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니까. 약물을 투여하고, 이상 징후가 없는지 체크하고 치료 과정이 원활히 이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뿐만이 간호가 아니니까. AI가 간호사를 완벽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환자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그의 심리적인 아픔까지도 '간호'하는 그 과정엔 반드시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의 역할도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신체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두려움, 불안, 스트레스, 죄책감 등의 환자의 심리적 문제도 간호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본원 간호사 선생님에게 전달을 한 후 다시 환자 옆으로 갔다. 여전히 울고 있는 환자의 어깨를 다독이며 마음이 좀 안정될 때까지 옆에 있겠다고 말했다. 극도로 불안할 땐, 누군가 나를 위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정될 수 있으니까. 그리곤, 자연스럽게 어떤 점이 불안하고 힘든지 표현할 수 있도록 질문을 했다.



그래서 어제도 잠을 제대로  잤어요?
아이고, 그랬구나. 얼마나 피곤해요.
제가 지금 침대 아래 보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아마도  음압기 때문에 바닥이 울려서 그렇게 느껴질  있을  같아요.
여기 병실에 혼자 있는  아니라 다른 환자분들도 계시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콜벨 누르면 언제든지 간호사가 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불안해서 그렇게 느낄  있어요."
 

환자가 느끼고 있을 감정과 심리 상태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해주며 긴장감과 불안감이 완화되기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현재 입원해 있는 특수한 병실 환경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해주었다. 그렇게 한참 환자 곁을 지켰다.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이내 눈물을 그친 환자 분에게 잠시라도 눈을 붙이라는 말을 전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30 분이 흐르고   조심스레 다시 병실 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곤히 숨을 내쉬며 잠들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껏 긴장되어있었던 얼굴이 이제야 편안함을 되찾은  같았다. ', 다행이다.'


방호복을 착용한   시간이 훌쩍 넘어 몸은 더없이 무거웠지만 발걸음 벼웠다. 다시 남은 업무를 마무리짓기 위해 스테이션으로 향하며, 파견 기간 동안 부디 오늘처럼 나의 존재가 이롭게 이기를 바랐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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