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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 Sep 27. 2015

지중해의 푸른 보석, 니스 해안

  혹독했던 리옹의 폭염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니스로 향하는 TGV에 발을 디뎠다. 코트다쥐르의 심장이자 프랑스 제일의 휴양도시인 니스는 영화제로 유명한 칸, 향수의 도시 그라스, 레몬 축제가 열리는 망통과 모두 인접해 있어 프랑스 남부 여행의 거점이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던 파리의 반나절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흐린 날씨 없이 항상 맑았기에, 어느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그것이 곧 프랑스의 하늘이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리옹에서 두 시간 여를 달리자, 어느새 푸른 지중해가 눈앞에 그려졌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닷물결이 아니었으면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마저 구분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지중해는 푸른 보석 같았다. 기차는 한 시간이 넘도록 지중해 바다를 끼고 달렸다. 넓고 광활한 지중해 바다를 보고 있으니 폭염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저 멀리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니스는 휴양도시답게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여태껏 프랑스에서 느꼈던 특유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니스의 활기찬 정오는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시내로 나오자 거리 곳곳엔 야자수가 가득 이었고, 온통 하얗게 칠한 건물들은 이곳이 휴양도시임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건물들과 비슷한 높이의 야자수와 나무들은 거리 곳곳에 큰 그늘을 만들어 더위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잠시나마의 안식처가 되었다. 우리는 트램을 타지 않고 거리를 구경하며 이십여 분을 걸은 끝에 니스 공식 호스텔에 도착했고, 짐을 풀고 기지개를 켜며 바다로 나갈 채비를 했다. 마세나 광장에 도착하자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해안까지 여행객들을 태우는 인력거들과 마차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마세나 광장 한편에는 작은 규모의 분수가 여기저기 뿜어져 나오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분수를 맞으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곳의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바닥이 비쳐 거울 같은 형상이 나타나 거리의 사람들을 데칼코마니로 만들었다. 우리도 그곳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어린아이들은 바닥에 비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한 듯 마구 물장구를 치고 있었고, 이제는 다 커 버린 어른들도 잠시 현실은 내려놓고 숨겨뒀던 동심을 한껏 꺼낸 것 같았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은 어깨를 한껏 펼치며 우리는 니스 해안가로 걸어갔다. 골목의 레스토랑과 아이스크림 가게들을 지나자 탁 트인 전경이 눈을 찔렀다.

엄지를 치켜든 친구의 모습.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물결과 점처럼 찍힌 사람들의 모습.

 물은 너무도 맑아서 꽤 깊은 곳이 아니면 물 속의 자갈까지 모두 보일 정도였다. 한껏 달궈진 자갈밭은 사람들로 붐볐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잔뜩 피부를 태운 외국인들은 빨간 토마토 같았다.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올라가다 사람들이 바위에서 다이빙을 하는 장면을 보고, 바로 내려갔다.

 나는 운 좋게도 지금 막 바닷속에 풍덩 들어가 온통 하얗게 물보라가 퍼진 장면과, 지금 막 바위에서 뛰어내린 한 여자의 사진을 동시에 찍을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가끔씩 사진첩을 들여다보면 감탄하게 되는 사진이다. 니스에서의 이틀은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광욕을 즐기는 니스의 휴양객들. 그 흔한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인적이 드문 한 바위 위에 올라가 바로 발밑에서 요동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서 있었다. 바닷바람은 뜨거운 태양도 잊을 정도로 시원했고, 지중해의 맑은 파도 소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내리는 것 같이 들렸다. 한참 돌아다녀 피부가 따가워진 우리는 저녁식사를 할 겸 숙소로 돌아갔다.

거리에는 조명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고, 작은 꼬마는 멋진 포즈를 취하며 분수 사이에 서 있었다.

 숙소에는 낯선 외국인이 있었다. 우리 나이 또래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는 우리와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한참 있다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Yann' 얀이었다. 얀은 낯선 한국인들에게 선뜻 다가와 마술을 보여 준다며 카드더미를 능숙하게 섞으며 우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얀의 마술쇼를 보며 웃고 그와 간단한 대화를 했다. 얀은 프랑스 북부 어느 작은 마을에서 왔다고 했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어서 어디인지 잊어버렸다. 얀은 스무 살이었고 대학교가 니스에 있어서 여자친구와 함께 같이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잠깐 호스텔에서 지내는 중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처음 놀랐다. 스무 살의 나이에 여자친구와 동거할 집을 마련할 생각을 하고 있다니... 우리는 얀에게 바닷가에 산책이나 하러 가자고 말했고, 그는 흔쾌히 우리를 따라나섰다.

 니스의 해는 저물고 있었고, 바닷가에는 더위에 지쳐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선선해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때늦은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저녁 무렵의 니스 바다는 한낮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들 소리에 묻혀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려왔다. 바닷물이 자갈에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청량하고 상쾌했던 그 소리는 그 어느 바다에서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얀과 함께 니스의 밤을 걸었다. 우리는 얀과 대화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프랑스의 우리 나이 또래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나, 프랑스 전체의 교육제도와 진로 교육에 대해서 우리는 얀에게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청소년 교육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리옹 공원에서 보았던 그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얀과의 대화는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니스의 밤거리는 예술인들과 클럽의 무대였다.  한쪽에는 흥겨운 리듬의 클럽 음악이 바닷가 귀퉁에 마련된 라운지에서 흘러나왔고, 젊은이들은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캐리커처를 그리고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니스의 밤을 물들였다. 우리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니스의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니스 시청의 모습.
트램이 지나는 니스의 번화가 거리.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에즈 마을로 향해야 했기에, 얀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숙소를 나와야만 했다. 우리는 에즈 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니스 버스의 시작 정거장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에즈 마을로 향하는 해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해안 버스는 지중해를 향해 튀어나와있는 골짜기를 위태롭게 달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까마득한 지중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30여분을 달리면, 어느새 에즈 마을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정거장에 도착한다. 우리는 골목골목이 아름다운 에즈 빌리지를 지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에즈 전망대의 조각상. 그 조각상을 설명하는 문구.

 선인장 마을로 유명한 에즈 빌리지는 신혼여행 코스로 유명한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익숙한 한국어가 들리기에 반갑게 인사한 우리는, 잘생긴 총각들이라며 호탕한 웃음을 퍼뜨리는 아주머니들에게 순식간에 둘러싸였다. "어머, 여기 신혼여행 코스인데 남자 둘이 이런 데를 다 오네?" 호호 웃는 아주머니들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주머니들과 우리는 사이좋게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반가운 분들이었다.

 
에즈 빌리지 전경.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경이다.

 지중해를 흠뻑 느낄 수 있었던 니스와 에즈 빌리지. '지중해의 푸른 보석'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활기찬 니스의 모습과 푸른 수평선은 지친 여행자들에게 활력을 선물해 줄 것이다. 무엇보다 니스를 방문한다면 꼭 저녁 노을 지는 바닷가에서 파도가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길 바란다. 그 소리는 보석 그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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