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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륜휘 Feb 18. 2021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조화로운 삶

끝이 보이는 터널


  새벽을 지나온 바람 같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나는 구구에게 다시 묻는다. “알아서 생각해 보세요.”라고 무뚝뚝한 구구는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도 새벽을 지나온 바람의 느낌을 말이다. 구구는 나에게 물음을 표시하는 일이 드물다. 반면 나는 구구가 던지는 의뭉스러운 말들과 사랑을 재차 확인하려 든다. “오빠 내가 어디가 좋아?”하고 물었던 날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듣고 싶은 말은 정해져 있는데 구구는 항상 “몰라요.”라며 웃어넘긴다. 

  구구는 말한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어요.” 

  나는 말한다. “자연스러운 삶을 가치로 두고 싶어요.”

  결국 우리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조화로운 삶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늘 삐걱거리는 사람은 나다. 잠을 너무 오랫동안 자버려서 하루 일과가 엉망이 되버린다거나 씻지도 먹지도 않고 잠자는 시간으로 “잠치”라는 소리를 듣거나. 이런 일이 쌓이다 보니 어르신 구구는 또 잔소리 한다. “생활이 바로 서야 글도 쓸 수 있어요.” 또는 “오늘은 세수하고 잠 들어요.” 또는 “오늘은 발을 좀 닦는 게 어때요?”와 같이 그야말로 생활의 일부에 대한 지적이다. 옆에서 나를 보는 구구는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이런 날이 또 쌓이면 나는 잠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짐처럼 느껴진다. 구구가 나의 연인이 아닌 짐꾼이 된 것 같아 미안하다. 


  구구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음악가다. 누군가 지금의 구구에게 “음악 하고 싶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구구는 대답했다. “삶이 음악이지요.” 이에 돌아온 욕바가지를 웃으며 넘기는 그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그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구구의 배짱에 놀랐다. 구구는 자신이 만들어낸 삶의 말들을 행동으로 체화한 사람이다. 말이 서툴다고 스스로 울상을 짓을 때도 있지만 내 눈에는 서투름조차 아름답다. 아름다움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구구의 인생을 응원한다. 그에 반해 나는 찢겨진 욕망 덩어리다. 활동적인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저질체력과 남들보다 못한 건강은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경로를 조용히 글쓰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조용히 있으니 잠만 자느라 바빴다. 어느 것 하나 소망 이뤄낸 것 없어서 좌절하는 이십대를 보냈다. 그러던 중에 내가 일을 하게 된 곳이 라이브바 우산이었다. 

  구구는 요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구구는 요즘 삶이 음악 같지도 않다. 다 내 잘못 같다. 구구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구구는 혼자 자신의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나 때문에 구구가 힘들어 한다. 우리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내가 변해야 한다. 구구가 나에게 진지하게 요청한 적이 있다. 자신을 좀 봐 달라고 했다. 구구의 희한한 얼굴을 보며 웃었지만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새벽을 지나온 바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아서 배시시 웃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요.”

  남해바다가 보이는 모텔에서 구구는 말했다. 코를 드르렁 골며 잠자는 구구를 보았고, 어스름한 새벽에 조업에서 돌아오는 어부들의 뱃고동 소리를 들었다. 나는 잠들기 전 구구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게 같잖아서 잠이 오질 않았다. 

그 새벽 나는 시를 썼다. 


*


  우리는 눈꺼풀만큼 지쳐갔다


  정오 무렵 대로변에는 차들이 오갔고 버스정류장에는 사람이 저마다의 버스를 기다린다 오랜만의 낮 시간 내 눈꺼풀은 감기고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는 신경질적인 엄ㅁ의 품이었다. 우울과 조증을 반복하던 엄마가 눈꺼풀에 내려앉는다 울면서 접시를 깨트리던 아무렇지 않게 생일상을 차리던 사람 눈꺼풀은 무거워서 감기는 걸까 가벼워서 감기는 걸까 내 사랑은 무거워서 끝나는 걸까 가벼워서 끝나는 걸까 다시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고 우리는 눈꺼풀만큼 지쳐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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