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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Aug 17. 2024

도덕경 48장 덜어내고 덜어내어 비움에 이르니

더하는 대신 덜어내기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노자 도덕경 48장 번역 및 해설


본문


배움은 날마다 더해가는 일이고,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일이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무위(비움의 경지)에 이르니, 무위로 하니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천하를 얻고자 한다면 항상 무사(無事, 공공을 위하는 일)로 해야 하니, 유사(有事, 개인을 위하는 일)로 할 경우 천하를 얻기 어렵다.



해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심훈, <상록수>


교과서에 등장하기에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대목, 꽤나 유명한 말.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47장에 등장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주장 중 하나이다. 베이컨 당시 영국은 제국주의를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때 생긴 별명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당시 영국에서는 지구 전역에서 들여온 새로운 문물이 쏟아졌고, 제국이 확장되는 만큼 지식도 확장되던 시기였다.


그러니 아는 것은 곧 힘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제국의 크기만큼 지식은 늘어났고 지식이 커진만큼 국력도 비례하여 세졌으니, 그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인류의 지식도 함께 확장되고 있었다. 물론 유럽 제국주의 국가 기준이다. 유럽인들은 인간이 계속해서 진보해 나갈 것이라 여겼고, 그러한 진보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일러 ‘계몽주의’라 불렀다. 무지하고 몽매한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계몽주의 사상이 반영된 소설로, 당시 조선인을 계몽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근대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묘하게 기분 나쁜 설정이긴 하나, 근대 소설들의 지은이들이 대개 일본에서 배우고 들어와 망해가는 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정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소설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 그들이었니 이런 소설도 등장했다.


일제강점기 전후로 근대화를 외쳤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말한 근대화의 모범은 일본의 근대화였고, 일본의 근대화 모범은 바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근대화였다. 그리고 그근대화는 제국주의를 통해 전세계를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어 얻은 결과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하고, 곧이어 유럽을 좇아 조선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침공하였다. 그렇게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 되었다. 히틀러의 독일과 동급.


배움을 통해 지식은 확장되고, 제국주의를 통해 영토는 확장된다. 둘의 공통점은 확장이다. 다만, 영토의 확장엔 다른 나라에 대한 침공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침략 당한 사람들은 노예처럼 비참한 생활에 처한다. 지식의 확장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빼앗는 것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인권의 신장으로 인류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계몽주의 시대가 또한 그랬다.


그리하여 노자는 배움은 날마다 더해가는 일이고,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일이라 말했다. 배움을 통해 얻은 지식을 어떻게 쓸 것이냐는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에서 덜어낼 대상은 바로 자기만의 이익, 자기를 위한 욕심, 자아를 우선하려는 의도에 있다. 이러한 것들을 없애고 자제하기 위해서는 마음 공부가 필요하고, 그 마음 공부는 대체로 불필요하거나 쓸데없는 것들을 제거하는 데에 있다.


노자의 철학은 덧붙이고, 더하고, 쌓아가는 방식이 아닌 기본적으로 덜어내고, 빼고, 나눠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도달할 지점은 ‘비움’이다. 그것은 투명하고 공평하며 정의로운 상태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공공을 위한 일이라야만 세상을 얻을 수 있고, 개인을 위한 일로는 세상을 얻을 수 없다. 후자로 얻은 세상은 결국 갈등과 반목, 때론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질 수밖에.


<장자>에는 ‘심재’란 개념이 등장한다. ‘심재心齋’란 ‘마음을 비우다’ ‘마음을 굶기다’와 같은 의미다. 마음을 비우거나 굶기는 건 내 안의 욕망과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시 망해, 에고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 자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과 조우하고 그 큰 흐름에 맡겨 살아가고 세상을 경영한다면 공명정대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안회가 물었다. “심재란 무엇입니까?”
중니(공자)가 대답했다.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해서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그리고 가능한 한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를 통해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며 마음은 자기 틀에 맞는 것만 받아들일 뿐이지만, 기라는 것은 텅 비어서 모든 대상에 대응할 수 있느니라. 이 텅 빈 곳에는 오직 도만 남게 되는데, 마음을 텅 비운 것이 심재다.”
안회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저 자신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고 나니 저 자신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비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선생이 말했다. “충분하다. -<장자>

* 노자 도덕경 1-30장은 아래에서

https://brunch.co.kr/brunchbook/taoteching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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