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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22. 2023

차를 타고 길 위로

두브로브니크에서 플리트비체

오늘은 바쁜 날이에요.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이거든요.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씻고 짐을 싸고 식사를 했어요. 남편과 제가 유니렌트에 가서 렌터카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유럽에는 렌터카 회사가 많은데, 유니렌트는 크로아티아 로컬 렌트회사예요. 글로벌한 회사는 아니지만 크로아티아를 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고 이용되는 곳이지요.

저희는 다른 것보다 픽업 위치 때문에 결정한 게 컸어요. 대부분의 렌터카 회사들이 거의 공항 근처에 있거든요. 근데 유니렌트는 공항뿐만 아니라 두브로브니크 시내에도 사무실이 있어서 정했답니다. 시내라고는 해도 보통 관광객들이 많이 머무는 구시가지 쪽은 아니고, 리조트가 많은 신시가지 쪽이긴 하지만, 저희가 머무는 숙소에서 가려면 공항보다는 훨씬 가깝거든요. 



우버를 타고 유니렌트로 향합니다. 십 년 전에는 렌터카를 숙소 주인아저씨 아들에게 빌렸어요. 주인아저씨한테 '우리 크로아티아를 차로 여행할 거고, 그래서 이제부터 렌터카 회사에 가서 알아보려고'라고 말했더니, 아저씨가 '내 아들에게 빌려, 싸게 해 줄게'라고 해서 진짜 싼 값에 차를 구했어요. 심지어 두브로브니크에서 빌렸는데 자그레브까지 가지러 와주셨지요.

그때는 그런 때였답니다. 차도 숙소 아저씨 말하면 짠 하고 나오고, 도로를 달리다 마음에 들면 똑똑 문 두드려 가격 흥정해서 자고, 마당에 열린 과일들 마음껏 따먹어도 되던 시절. 저 너무… 늙은이 같나요?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졌죠. 세월도 흘렀지만 저희가 가진 조건도 달라져서, 아무 차나 빌릴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는 일단 인원이 다섯에 큰 트렁크가 네 개라 다 들어가는 큰 차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유럽에서 큰 차는 운전도 주차도 여러모로 너무 고돼서, 적당한 사이즈를 찾는 게 정말 중요했거든요. 네, 저의 몫이었습니다. 알맞은 차를 찾아라! 

덕분에 유튜브에서 차 리뷰하는 걸 일일이 다 찾아보고 사이즈 세세하게 확인하고요. 그렇게 결정한 건 시트로엥 C4 그랜드 피카소였는데요. 정말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원하는 걸 검색만 하면 다 나오니 정말 다행이었죠.


유니렌트에서 서류를 다 작성하고 차를 받아 출발하려는데, 시동이 도통 걸리지 않는 거예요. 고장 난 차를 줄 리는 없는데 차는 움직이지 않아서 남편이랑 둘이 당황했어요.

사실 저희 가족은 차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요. 어느 정도냐면, 제가 고등학교 때 산타모라는 차를 중고로 사서 저 결혼할 때까지 20년 넘게, 길에서 산타모가 숨을 거둘 때까지 탔어요.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제발 그냥 버리라고 할 정도로 낡아 있었지요. 물론 좋은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그 순위가 다른 것에 비해서는 한참 뒤에 있답니다. 아빠는 차를 좋아하긴 하시지만 다년간 엄마에게 철저한 교육을 받으신 후 욕망을 잠가두신 듯해요. 

남편도 저랑 연애 시작할 즈음 중고로 산 경차를 지금까지 10년째 몰고 있습니다. 타보니 경차가 주차도 쉽고 할인도 받고 연비도 좋아서 마음에 들어요. 저나 남편이나 차에 크게 로망이 없네요.

왜 이렇게 구구절절 말씀드리냐면요. 그런 연유로 저희가 요즘 차를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뜻이랍니다. 이 차는 뭔 선반 같은 곳에 차 키를 둬야 한대요. 키를 꽂는 모양새가 아니라 그냥 올려두게 생겼어서 짐작도 안 갔거든요.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안 되길래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려다가, 일단 유튜브로 검색해서 보니 그렇더라고요. 참내. 진짜 와이파이, 유심, 유튜브가 없던 시대에는 여행을 어떻게 했을까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겨우 차를 움직여 숙소로 향합니다. 초행길에 익숙지 않은 차라 남편은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가 봅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운전은 아빠의 영역이었지요. 아빠는 운전을 좋아하시거든요. 사실 남편은 운전을 안 좋아하고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역할 분담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요. 아빠가 점점 연세가 드셔서 잦은 실수가 생기는 데다, 사실 성격도 조금 급하시고 조심성도 아주 약간 없으신 편이라 엄마가 걱정이 많으세요. 

반면에 남편은 엄마아빠가 보기엔 좀 느릿느릿하고 의욕이 덜해 보이는 면이 있지만, 그만큼 운전도 느긋하고 FM으로 하는 편이에요. 또 현지 교통 법규나 신호 숙지도 꼼꼼히 하고 필요한 정보들을 세부적인 것까지 살펴 읽어보는 성격이에요. 아무래도 남편이 운전을 하면 엄마의 걱정이 덜하지요.

그래서, 결국 그 싫어하는 운전을 아주 마르고 닳도록 하게 되었네요.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당연히 아빠가 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고의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남편아, 미안미안해!!


숙소에 도착해 짐을 싣고 드디어 출발합니다. 어차피 여행의 마지막은 두브로브니크에서 마무리할 예정이라 떠나는 아쉬움이 덜했어요. 

남편과 아빠는 멀미가 별로 없고, 엄마는 때에 따라 하는 편이고, 저는 항상 멀미를 하는데요. 민이는 그동안 멀미가 없었어요. 카시트도 뒤보기로 해두었었고 핸드폰 보면서도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길이 꼬불거리는 데다 좌석도 가운데라 그런지 멀미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중간 마트도 들르고 카페 가서 차도 마시며 천천히 달렸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시간이 늦어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식당이 없는 거예요. 길을 따라 달리고 달려도 식당은 보이지 않고 배는 고파 오고. 결국 세시 반쯤 되어 겨우 찾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맛도 모르겠고 일단 배를 채우자며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여기가 대박이었어요. 알고 보니 크르카 국립공원이 보이는 뷰 맛집이었더라고요. 풍경도 끝내주는데 음식 맛이 정말 좋더라고요.



남편이 시킨 스테이크도 야들야들 부드러웠고요. 뇨끼도 조금 짜긴 했지만 쫀득쫀득 감칠맛이 좋았고요. 특히 크로아티아에서 먹어봐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트러플 파스타라는데, 트러플 향이 정말 좋고 고소하다고 합니다. 제가 버섯을 못 먹어서 트러플 파스타도 못 먹는 관계로... 가족의 말을 전해드립니다. 정말 못 말리게 촌스러운 입맛이죠. 



십 년 전에 여행할 때는 지금보다 이동이 훨씬 더 느렸어요. 기간도 지금의 두 배였고, 딱히 일정에 쫓기지도 않았고요. 예약한 숙소가 따로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맘대로 다녔거든요. 멋대로 가다 멈추다 그렇게 다녀서인지 플리트비체가 딱히 멀다는 기억이 없어요.

하지만 두브로브니크에서 플리트비체로 직행하는 건 엄청 먼 길이네요. 그렇게 가는 길에 터널 같은 비구름을 몇 번이나 만났고요. 그 구간만 비가 오고 지나면 다시 쨍하게 맑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여러 번 했어요. 그리고 중간중간 양 떼와 소떼와 돌산과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신기한 지형들도 보았답니다. 예전에는 내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느라 아드리아해만 기억에 남았는데, 이번 여행은 크로아티아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참 좋네요. 운전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함이 가득하지만요. 미안합니다, 정말로.



결국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7시였어요. 숙소는 새로 지어서 깨끗하고 현대식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어요. 조금 좁긴 했지만 지내기 부족할 만큼은 아니었고, 산 속이라 추웠는데 난방이 잘 돼서 다행이었어요. 마당에는 민이를 유혹하는 미끄럼틀과 해먹이 있었는데 산벌레가 너무 많아서 오래 놀지 못해 아쉬웠네요.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씻고 민이를 재우고 나니 졸리던 눈은 또 왜 이리 말똥거리는지. 아이 재우고 나면 잠 깨는 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조금만 혼자 놀다 자야겠어요.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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