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남성'을 묻다
20세기 초반의 세계는 전쟁과 산업, 식민주의와 탈식민, 근대화와 도시화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남성’을 중심에 놓았다. 전쟁터에서 몸을 던지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공장의 톱니바퀴 속에 팔과 시간을 내맡긴 이는 언제나 남성이었다. 이 시기 남성성은 곧 책임, 근면, 경쟁, 침묵, 강인함의 미덕으로 응축되었다. 여성은 보조자였고, 주변인이었고, 그늘이었다.
그러나 변화는 느리지만 깊게 스며들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미국과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남성 중심 사회’라는 구도는 첫 금을 맞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1960년대의 급진적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 문화의 해체를 본격화했다. 여성의 권익이 확대될수록, 남성에게 요구되는 ‘전통적 남성다움’은 도리어 무게감 있는 족쇄가 되었다.
근대화의 핵심에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있었다. R.W. 콘넬이라는 학자가 이론화한 이 개념은 단순히 힘 있고 터프한 남자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남성이 사회 내에서 우위를 정당화하며 여성과 비주류 남성성을 종속시키는 이데올로기 구조였다. 이러한 남성성은 시대가 요구한 ‘가장(家長)’ 역할과 결합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경제를 책임지고, 결정을 내리고, 위계를 유지하는 남성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추앙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에서도 산업화 시기와 유교적 가부장제가 맞물리면서 강하게 작동했다. 군사문화는 남성성의 규율성을 강조했고, 입시와 취업 경쟁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이른바 ‘군사화된 남성성’은 남자를 ‘사회적 병사’로 길들였다. 하지만 경제 안정기 이후, 이러한 남성성의 기능은 퇴색되었고, 한때의 특권은 부담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의 대중문화와 사회학 담론은 남성성의 ‘위기’를 반복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킴멜은 이를 “상대적 박탈감”으로 진단했다. 더 이상 남성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우대를 받지 않는 사회, 오히려 도전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남성 생계부양자의 신화가 깨졌고,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 진출이 높아지면서 젊은 남성들의 경쟁 상대는 더 이상 동성의 타자가 아니라 이성의 타자가 되었다. 성평등은 진전되었지만, 그 과정을 충분히 공론화하고, 포용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젠더 갈등을 폭발시켰다. 특히 20대 남성들은 역차별의 피해자라는 자각을 공유하며, 정치적 보수화와 여성 혐오 정서로 기울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절망사(deaths of despair), 한국의 높은 남성 자살률 등은 남성들이 역할 상실 속에서 정체성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직한 아버지, 육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편,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로 낙인찍힌 청년—이들은 한때 자랑이던 남성성이 지금은 위기의 근원으로 다가오는 현실을 증명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극렬한(?) 통계 수치에 잡히고 있는 남성 노인들의 자살율은 소리없는 남성의 집단적 퇴장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이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북유럽의 ‘돌보는 남성성(caring masculinity)’이나, 미국심리학회의 ‘건강한 남성성’ 지침은 남성성이 반드시 지배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의 남성다움은 사회를 위해 필요했던 기능이었을 뿐,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남성 자신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연다.
한국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은 천천히 증가하고 있고, 대중문화 속 남성상은 더 이상 한 가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꽃미남 아이돌, 남성 뷰티 유튜버, 요리하는 아빠—이들은 한때 ‘여성스럽다’고 조롱받던 특질을 재구성하고 있다. 즉, 새로운 남성성은 강요된 역할에서 해방된 ‘선택 가능한 남성성’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할 책글 ‘남성의 종말’은 남성 자체의 소멸이 아니라, 전통적 남성성—즉 폭력적, 위계적, 침묵 강요형 남성성의 해체를 의미한다. 이 절멸은 종말이 아니라 전환이며,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남성이 이제는 ‘힘’이 아니라 ‘책임’으로, ‘지배’가 아니라 ‘의리’로 사회적 관계를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남성의 재탄생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