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장에서 PC방, 온라인 게임 길드로 남자의 무대는 옮겨졌다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의 한 PC방.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 여덟 명이 나란히 앉아 '로스트아크'에 몰입해 있다. 헤드셋을 낀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전략을 논의하며, 마치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탱커 준비됐어?", "딜러 포지션 잡아", "보스 패턴 조심해". 이들의 대화는 과거 축구장에서 "수비 라인 올려", "측면 공격 가자", "골키퍼 준비해"라고 외치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의 몸은 의자에 고정되어 있고, 오직 손목과 손가락만이 바쁘게 움직일 뿐이라는 점이다.
30년 전 같은 시간, 같은 동네 어딘가에서는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동네의 공터나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몸을 부딪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명확한 팀이 있었고, 정해진 포지션이 있었으며, 90분이라는 시간 제약 속에서 승부가 결정났다. 경기 후에는 치킨과 맥주로 하루를 마감하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우정을 확인했다. 때로는 거친 몸싸움으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것조차도 남성들 간의 소통 방식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경쟁과 협력, 승리와 패배, 개인적 욕망과 집단적 책임감을 동시에 학습했다.
지금 PC방의 남성들에게도 팀이 있고 포지션이 있으며 승부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운동장'은 21인치 모니터 안에 압축되어 있고, 그들의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정신과 감정은 가상공간에서 격렬하게 움직인다. 레이드 실패 시의 좌절감, 보스 몬스터 처치 시의 성취감, 길드원들과의 연대감은 모두 진짜다. 하지만 게임이 끝나면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 다시 혼자가 된다. 축구 후 치킨집에서 이어지던 '뒤풀이'는 사라졌고, 카카오톡 단체방에서의 간단한 인사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한국 남성들이 찾아낸 새로운 서식지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종이 서식지를 바꾸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적응이다. 환경이 변했을 때 기존 서식지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종은 자신의 행동 양식과 생활 패턴을 바꾸고, 때로는 신체적 특성까지도 변화시킨다.
남성들의 이 '대이동'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전통적 서식지를 떠나 디지털 공간으로 이주한 것은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된 사회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적응이 과연 성공적일까? 새로운 서식지에서 그들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변화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은 어떨까?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왜 기존의 서식지를 떠나야 했는지, 그리고 새로운 서식지에서 무엇을 찾았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남성들의 '서식지 이동'은 개인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의 전통적 서식지였던 공간들이 지난 20년간 급속도로 해체되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의 물리적 소멸이 아니라, 그 공간들이 담고 있던 문화적 의미와 사회적 기능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직장 내 남성 중심 문화의 붕괴다. 과거 직장은 남성들에게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핵심 공간이었다.
특히 회식 문화는 그 중심에 있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의 직장 문화에서 회식은 단순한 친목 도모를 넘어서는 중요한 사회적 의례였다. 상사와 부하, 선배와 후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공식적 업무관계를 넘어선 '의리'와 '끈끈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남성들은 서로의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결국 '한 팀'이라는 연대감을 구축했다.
42세 중견기업 부장 김광우 씨는 "예전에는 회식에서 선배들한테 인생 얘기도 듣고, 후배들한테 조언도 해주고... 그게 진짜 소통이었어요.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서로를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성평등 교육이 의무화되면서 전통적 회식 문화는 급격히 위축되었다. 2019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대기업 직장인의 65.2%가 '회식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답했고, 2023년 같은 조사에서는 20-30대 직장인의 72.3%가 '회식을 부담스러워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선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 남성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조심스러운 이방인'이 된 상황이다. 29세 IT회사 개발자 백동현 씨는 "함부로 말했다가 성희롱으로 몰릴까 봐 여성 동료들과 대화할 때 항상 조심해요. 농담도 못 하고, 개인적인 얘기는 아예 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정말 업무적인 대화만 하게 되어요"라고 털어놓는다. 31세 제조업 과장 이정빈 씨 역시 "회식 자리에서도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전 선배들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하면 '꼰대'라는 소리 듣고, 그렇다고 조용히 있으면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라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과거에는 자연스럽던 농담과 스킨십이 이제는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되었고, 남성들은 직장에서 편안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워졌다. 더욱이 젊은 세대는 기존의 위계적 조직 문화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2023년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직장인의 54.7%가 '수평적 조직 문화를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38.2%는 '상하관계보다는 동료 관계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직장이 더 이상 남성들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소속 공간이 아님을 의미한다.
동네 단위의 남성 공동체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조기축구회, 등산동호회, 낚시모임, 당구장 모임 같은 전통적 남성 집단 활동 참여율이 급격히 감소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동호회 모임 참여율은 2010년 34.2%에서 2023년 18.7%로 떨어졌으며, 특히 20-30대 남성의 참여율은 15.4%에 불과하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축구동호회 참여율은 2010년 23.1%에서 2023년 8.7%로, 등산동호회는 18.9%에서 6.2%로 급감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과 함께 시간 사용 패턴의 근본적 변화가 있다. 과거 남성들이 토요일 오전을 '축구 시간'으로, 일요일 새벽을 '등산 시간'으로 할애했다면, 지금의 젊은 남성들은 그 시간을 '개인적 회복'을 위해 사용한다. 26세 마케팅회사 직원 정강성 씨는 "주말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평일에 너무 지쳐서... 늦잠 자고, 넷플릭스 보고, 게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예요"라고 말한다. 28세 공인회계사 한우석 씨 역시 "축구하러 나가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모이는 시간도 맞춰야 하고... 너무 번거로워요. 그 시간에 차라리 집에서 홈트레이닝하는 게 낫죠"라고 덧붙인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집단 활동에서 얻어야 할 소속감이나 성취감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았다는 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길드 활동, 개인 운동 후 SNS 인증, 유튜브를 통한 간접 체험 등이 직접적인 집단 활동을 대체하고 있다. 굳이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함께 땀 흘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30세 IT개발자 최규성 씨는 "게임에서는 매일 길드원들과 만나서 협력하고 경쟁해요. 현실에서 축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협력하고, 더 자주 만나고,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죠"라고 설명한다.
군대라는 강제적 남성 공동체 경험의 의미도 크게 변했다. 과거 군 복무는 남성들에게 '남자다움'을 학습하고 동기들과의 전우애를 형성하는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의 성인 남성들에게 군대 경험은 공통의 문화적 자산이었다. "군대에서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남성들 간의 소통 코드였고, 계급과 부대, 복무 시기 등이 사회적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군대에서 형성된 동기 관계는 전역 후에도 오래 지속되며, 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젊은 남성들에게 군대는 '2년간의 손실'이자 '견뎌야 할 의무'일 뿐이다. 2023년 병무청이 전역자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3.7%가 '군 생활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특히 20대 전역자의 경우 이 비율이 58.3%에 달했다. 또한 전역 후에도 동기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비율은 2010년 67.8%에서 2023년 34.2%로 급감했다.
24세 대학생 김진욱 씨는 전역 후 이렇게 말했다.
"군대에서 배운 게 다 쓸모없다고만 할 순 없어요. 최소한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챙기는 법,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티는 법은 배웠다고 생각해요. 저나 제 또래 친구들 모두 ‘우리 남자들이 군대 간다고 위세를 떨었던 적은 없다’는 걸 잘 알아요. 그냥 묵묵히 그 의무를 수용하고 다녀온 거죠. 그런데 문제는 사회가 우리를 자꾸 우습게 본다는 거예요. ‘갔다 와서 뭐 대단한 게 있냐’는 식으로, 마치 당연히 배치된 존재처럼 취급한다는 거죠. 기본적인 존중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26세 회사원 박영훈 씨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다.
"군대에서 선후임 사이에서 배운 책임감이나 협동심이 분명 사회에 나와서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사회에서는 그런 경험을 존중하기는커녕 ‘군대식 사고’라며 비판부터 하죠. 가끔은 ‘요새 남자들은 안 됐어, 남자로 태어나면 2년은 군대에서 썩어야 하니까’라는 냉소적인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정말 남자들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뭔가 해보려고 해도 평가절하부터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군 복무 경험을 단순한 헛수고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존중의 결핍은 젊은 남성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바로, 젊은 세대가 군대식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관계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선임-후임'의 위계보다는 '개인-개인'의 평등한 관계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2023년 한국국방연구원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71.4%가 '군대 문화가 사회와 맞지 않는다'고 답한 것은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군대를 통해 형성되던 전통적 남성 연대의 기반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가정에서의 아버지 역할과 관련된 기대도 크게 변했다. 과거 아버지는 '무뚝뚝하지만 든든한 가장'이었고, 가족 구성원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재는 '소통하는 아빠',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 '감정 표현을 하는 아빠'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32세 두 아이의 아버지 이씨(가명)는 "아내가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하라', '감정 표현을 하라'고 계속 말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식으로 자라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전 아버지들은 그냥 묵묵히 돈만 벌어오면 됐는데..."라며 혼란스러워한다.
이 모든 변화들의 근본에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가치 변화가 있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위계 중심에서 평등 중심으로, 의무 중심에서 권리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졌고, 2000년대 인터넷 문화 확산으로 개인의 선택권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2010년대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고 젠더 평등 의식이 확산되면서, 남성 중심적 문화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남성들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여성들 역시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다. 차이점은 여성들의 경우 1990년대부터 활발해진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명확한 담론적 틀과 연대의 기반이 있었던 반면, 남성들은 자신들의 변화를 해석하고 의미화할 수 있는 적절한 담론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남성해방' 담론은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논의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그 결과 많은 젊은 남성들이 기존 공간에서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27세 광고회사 직원 조씨(가명)는 "회식 자리에서도, 동호회에서도, 심지어 집에서도 뭔가 어색해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다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29세 은행원 윤씨(가명) 역시 "남자답게 행동하라고는 하는데, 정작 남자다움이 뭔지는 아무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아요. 혼란스러워요"라고 토로한다.
이런 공백 상태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디지털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현실의 복잡한 젠더 관계나 세대 갈등, 권위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게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실력과 개성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어, 현실에서 잃어버린 공정성과 성취감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디지털 공간은 그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서식지가 되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나름의 적응 전략을 개발해나갔다.
2000년을 전후하여 전 세계, 그리고 한국의 남성들에게 기존의 놀이와 경쟁, 협력의 환경 속에 하나의 새로운 장이 추가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온라인 게임’이었다. 온라인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최신 미디어 콘텐츠와 실시간 참여 네트워크를 결합한 새로운 서식지로서 남성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다 기억하지 않는가? 스타크래프트는 대학가 앞 PC방에서만 즐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곳곳에 수천, 수만 개의 PC방이 생겨났고, 젊은 남성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운동장에서 흘리던 땀과 외침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게임과 채팅에 점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기존의 공간에서 밀려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놀이터와 사냥터가 등장하며 남성들을 초대하고, 또 스스로 그 공간을 정복하려는 열망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디지털 서식지는 기존의 전통적 공간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며, 남성들의 근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찾은 것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공정한 경쟁 구조, 즉시적 성취감과 인정, 선택적 소속감, 그리고 완전한 개인적 통제권이다.
무엇보다 남성들은 이제 굳이 땀 흘리며 몸을 부딪치고 외쳐야 하는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을 위해 공간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고 싶어 했다. 대신, 화면 속에서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전 세계에서 접속한 수많은 게이머들과 맞붙고 협력하는 경험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이버 공간의 게임은 현실의 운동과 놀이에 판타지적 경험을 더해주었고, 이는 젊은 남성들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러나 정작 남성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점차 잃어가고 있는 남성성의 한 부분, 즉 오프라인에서 몸과 몸을 맞대며 형성되던 연대와 체험의 상실이기도 했음을….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실시간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와 유튜브다. 2024년 기준 아프리카TV 게임 카테고리 시청자의 94.7%가 남성이고, 유튜브 게임 스트리밍 시청자의 92.3%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이들 플랫폼이 남성들의 특정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남성들은 과거 축구장 관중석에서 경험했던 집단적 열광과 소속감을 재현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과거의 관중은 수동적이었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은 '후원'이라는 경제적 참여를 통해 능동적 역할을 수행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에 개입할 수 있고, BJ(Broadcasting Jockey)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별풍선 1000개 - BJ님 덕분에 오늘 회사 스트레스 다 날렸네요"라는 후원 메시지를 분석해보면, 이것이 단순히 방송이 재미있어서 돈을 주는 행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BJ와의 '관계'를 확인하고, 다른 시청자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일종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려는 복합적 욕구의 표현이다. 28세 회사원 이태형 씨는 한 달에 평균 50만원을 게임 방송 후원에 사용한다. "현실에서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여기서는 'ㅇㅇ이형'이라고 불리며 사람들이 인정해줘요. BJ도 제 닉네임을 기억하고,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된 느낌이에요"라고 말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관계에서 발생하는 위계 구조다. 후원 금액에 따라 'VIP', '매니저', '일반 시청자'로 나뉘는 계급 시스템이 형성되고, 각 계급에 따라 서로 다른 권한과 특권이 주어진다. VIP는 BJ와의 개인적 소통 기회를 얻고, 방송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다른 시청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31세 IT컨설턴트 박철우 씨(가명)는 한 BJ의 VIP 후원자로서 "월 100만원 정도 후원하는데, 그 대신 BJ와 정기적으로 개인 통화도 하고, 방송 기획에도 참여해요. 마치 제가 작은 기업의 스폰서가 된 기분이에요"라고 설명한다.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적 자본'의 디지털 버전이다. 경제적 투자를 통해 사회적 인정을 구매하고, 그 인정이 다시 더 큰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으로 전환되는 구조다. 현실에서는 직장 내 위계나 사회적 성취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얻어야 할 인정을, 디지털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획득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지위는 나이, 학벌, 외모 등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이런 관계의 이면에는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26세 프리랜서 정씨(가명)는 "BJ를 후원할 때마다 뭔가 복잡한 감정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멈출 수가 없어요. 여기서만큼은 제가 중요한 사람이니까"라고 털어놓는다.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인정과 현실에서의 소외감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는 남성들에게 더욱 정교하고 체계적인 대안적 사회 구조를 제공한다.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로스트아크', '던전앤파이터' 같은 게임에서 남성들은 현실보다도 더 명확하고 공정한 협력 시스템을 경험한다. '길드'라는 조직 구조는 현실의 기업이나 군대 조직과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첫째, 길드 내 위계는 순전히 '실력'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길드장, 부길드장, 각 클래스별 리더, 신입 멤버로 이어지는 서열은 게임 내 레벨, 장비, 기여도 등 측정 가능한 요소들에 기반한다. 둘째, 이런 위계는 고정되지 않고 실력 향상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어 상당한 유동성을 갖는다. 셋째, 모든 구성원이 명확한 역할과 책임을 가지며, 각자의 기여도가 투명하게 평가된다.
35세 중견기업 과장 박상재(가명) 씨는 회사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하지만, 게임에서는 30명 규모 길드의 길드장이다. "현실에서는 정치적인 것들이 많잖아요. 실력보다는 인맥이나 운, 심지어 상사의 개인적 호불호가 좌우하는 경우가 많고요. 하지만 게임에서는 정말 실력이 곧 인정이에요. 제가 길드원들을 이끌고 어려운 레이드를 성공시키면, 그 성취는 온전히 저의 것이 되죠"라고 말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게임 내 리더십 경험이 현실의 업무 능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미국 IBM의 연구에 따르면 MMORPG에서 길드 리더 경험이 있는 직원들이 그렇지 않은 직원들보다 협업 능력에서 23%, 문제 해결 능력에서 18%, 의사결정 능력에서 31%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이런 점을 인식하기 시작해서, 일부 회사는 채용 과정에서 게임 내 리더십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29세 게임 회사 기획자 이준 씨는 "게임에서 길드를 운영하면서 배운 것들이 정말 많아요. 30명의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조율하고,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갈등을 중재하고... 이런 경험들이 회사에서 팀 프로젝트를 할 때 큰 도움이 되요"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는 게임에서의 길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게임 내 사회구조에도 한계는 있다. 32세 프로그래머 박승훈 씨는 "게임에서는 모든 게 수치로 명확하게 나오니까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해요. 직장인인 저는 학생이나 백수들과 경쟁할 수가 없죠. 그래서 가끔은 현실보다도 더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지적한다.
1인 가구라는 물리적 공간 역시 남성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서식지가 되었다. 2024년 기준 전체 가구의 41.4%에 달하는 1인 가구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8.2%에 이른다. 특히 20-30대 남성 1인 가구는 2010년 23.7%에서 2024년 47.8%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에게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완전히 통제 가능한 개인적 영역이다.
29세 회사원 최운형 씨의 주말 일과를 살펴보면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토요일 오전 10시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 편의점에서 사온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오전에는 넷플릭스에서 해외 드라마를 2-3편 연속으로 시청하고, 점심은 배달 앱으로 주문한 치킨으로 해결한다. 오후에는 홈트레이닝을 1시간 정도 하고, 그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한다. 저녁에는 1인용 테이블에서 배달음식을 먹으며 유튜브 게임 방송을 시청한다. 밤에는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새벽 1-2시에 잠든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해요.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내가 원하는 걸 언제든 할 수 있거든요. 피곤하면 바로 누울 수 있고, 배고프면 바로 주문할 수 있고... 완벽한 자유죠"라는 그의 말은 1인 가구가 제공하는 핵심 가치를 보여준다.
이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성'의 특징으로, 고정된 관계와 집단 소속감보다는 유동적이고 선택 가능한 관계를 선호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완전한 개인화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낳는다.
27세 프리랜서 박경희 씨는 "처음에는 정말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뭔가 공허해져요. 아무도 저를 기다리지 않고, 제가 없어도 아무도 모르고... 가끔은 무서워요"라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이런 개별화된 생활에는 심각한 그림자가 있다. 2023년 기준 고독사 사망자의 71.2%가 남성이며, 그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89.7%에 달한다. 더욱이 20-40대 남성의 고독사가 전체의 42.3%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젊은 남성 1인 가구의 잠재적 위험성을 보여준다. 30세 IT개발자 정씨(가명)는 "가끔 '내가 죽으면 누가 알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건강관리에 더 신경 쓰게 되고, 가족들과도 정기적으로 연락하려고 노력해요"라고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리적 고립과 사회적 연결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을 제공한다. 30세 프리랜서 정씨(가명)는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레딧, 네이버 카페 등에서 매일 활동하며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는 몇 년째 교류하고 있고, 서로 안부도 묻고 조언도 해주고...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예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런 온라인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적 친밀감'이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 강제적 관계와 달리, 공통의 관심사나 취향을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관계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더 깊어질 수 있는 유동적 특성을 갖는다. 28세 그래픽디자이너 한씨(가명)는 "온라인 친구들과는 정말 편해요. 만나고 싶을 때만 만나고, 연락하고 싶을 때만 연락하고... 의무적인 관계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진실한 것 같아요"라고 설명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관계들이 현실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다. 나이, 직업, 외모, 사회적 지위, 경제적 수준 같은 현실의 위계 요소들이 온라인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며, 순수하게 개성과 능력, 관심사로 평가받을 수 있다. 25세 대학원생 김씨(가명)는 "온라인에서는 제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아무도 모르고, 나이도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제가 올리는 글의 내용과 댓글로만 평가받죠. 이게 진짜 공정한 관계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
이는 현실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인정과 소속감을 제공한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수', '유명인'으로 인정받는 남성들 중 상당수가 현실에서는 평범하거나 오히려 소외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32세 공무원 이씨(가명)는 "직장에서는 조용하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온라인에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아요. 수천 명이 제 글을 읽고, 조언을 구하고... 이런 느낌을 현실에서는 절대 가질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온라인 관계에도 한계와 위험이 있다. 익명성에 기반한 관계이다 보니 깊은 신뢰 관계로 발전하기 어렵고, 갑작스럽게 관계가 단절될 위험도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만 활발한 반면 오프라인에서는 더욱 소극적이 되는 역설적 상황도 발생한다. 29세 회계사 박씨(가명)는 "온라인에서는 정말 활발하게 소통하는데, 정작 현실에서 사람들과 만나면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온라인 소통에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현실 소통 능력이 떨어진 것 같아요"라고 우려를 표한다.
디지털 서식지로 이주한 남성들이 얻은 것들은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자유로운 시간 사용, 선택적 인간관계, 즉각적 성취감, 공정한 경쟁 구조, 완전한 개인적 통제권 등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이득들과 함께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근본적이고 역설적인 문제는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되지 않은' 상황, 즉 디지털 연결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깊어지는 실존적 고립감이다.
32세 IT회사 직원 박씨(가명)는 게임에서 3년째 함께 활동하는 길드원들과 매일 2-3시간씩 대화하고 협력한다. 레이드를 성공시킬 때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실패했을 때의 아쉬움도 공유한다. 길드원들의 게임 내 성향과 실력, 성격까지 꿰뚫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끄고 나면... 뭔가 허전하죠. 진짜 친구가 있는 건지, 진짜 성취한 게 있는 건지 가끔 의문이 들어요. 길드원 중에 실제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요"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관계와 성취가 분명히 실재하지만, 그것들이 현실의 삶과 분리되어 있을 때 발생하는 일종의 '분열된 정체성'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인정받고 성공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여전히 불안하고 외로운 이중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28세 그래픽디자이너 정씨(가명)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천 명이 제 작품을 좋아해주고 댓글도 달아주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인정받지 못해요. 회사에서는 그냥 평범한 직원일 뿐이고... 이게 진짜 제 실력인지, 아니면 착각인지 헷갈려요"라고 토로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이중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즉시적이고 명확한 피드백에 익숙해질수록, 현실에서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간관계를 더욱 어려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현실 회피가 심화되고 디지털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30세 프로그래머 한씨(가명)는 "게임에서는 모든 게 명확해요. 레벨업하면 수치로 보이고, 잘하면 바로 보상받고... 그런데 현실은 너무 복잡해요. 열심히 해도 결과를 알 수 없고, 인정받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그래서 점점 게임 시간이 늘어나게 되더라고요"라고 설명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성과 모순이 나타난다. 과거 남성들이 '가장' 역할을 통해 경제적 책임감과 함께 사회적 정체성과 자존감을 확보했다면, 현재의 젊은 남성들은 그런 경제적 부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경제적 목표와 동기 자체를 잃어버렸다. 29세 마케팅회사 직원 한씨(가명)는 "결혼?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지금 혼자 살면서도 경제적으로 빠듯한데, 가족까지 책임진다는 건 상상도 못하겠어요"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럼 제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목표가 없으니까 의욕도 없고... 그냥 생활비만 벌면 되는 건가요?"라는 혼란도 토로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경제 활동을 추동했던 가족 부양이라는 명확한 동기가 사라지면서, 많은 젊은 남성들이 장기적 경제 목표에 대한 의욕을 잃고 있다. 대신 그들은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소비에 더 많이 집중한다. 취미 장비, 게임 아이템, 개인 여행, 자기계발, 외모 관리 등에는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지만, 저축이나 투자 같은 미래 대비에는 소극적이다.
26세 IT개발자 김경빈(가명) 씨는 "저축? 별로 하지 않아요. 어차피 집도 못 사고 결혼도 안 할 건데, 뭘 위해 모아야 하나요? 차라리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낫죠. 캠핑 장비에만 500만원 넘게 썼는데, 후회는 안 해요"라고 말한다. 이런 소비 패턴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장기적 경제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노후 준비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20-30대 남성 1인 가구의 평균 저축률은 8.7%로 같은 연령대 기혼 남성의 23.4%에 비해 현저히 낮다. 또한 이들 중 67.3%가 '노후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답했으며, 42.1%는 '노후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33세 광고회사 직원 이영진 씨는 "솔직히 60세 이후의 제 모습이 상상이 안 돼요. 그때까지 혼자 살 건지, 뭘 하며 지낼 건지... 너무 막막해서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라고 털어놓는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성취와 인정 역시 그 자체의 한계와 함정을 드러낸다. 게임 랭킹, SNS 좋아요, 후원금 순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평판 등 디지털 성취의 가장 큰 특징은 '즉시성'과 '가시성'이다. 노력한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대부분 숫자로 측정 가능한 명확한 만족을 제공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성취들은 '휘발성'도 매우 강하다. 금방 사라지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극과 성취를 요구한다.
27세 IT회사 개발자 구본상 씨는 "솔직히 회사 일은 재미없어요. 매일 똑같은 업무의 반복이고, 몇 달 동안 프로젝트를 해도 성과가 눈에 잘 안 보이고, 설사 성공해도 별로 인정받는 느낌이 없어요. 하지만 게임에서는 매일 새로운 목표가 있고, 달성하면 바로 레벨업하고 아이템 받고... 성취감이 확실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일인지 가끔 헷갈려요. 게임에서 아무리 성취해도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라는 혼란도 드러낸다.
이는 디지털 공간의 '과도한 즉시성'이 오히려 현실 적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의 대부분의 성취는 장기간의 인내와 지연된 만족, 불확실한 결과를 감수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즉시적 보상에 익숙해진 남성들에게는 이런 현실의 리듬이 더욱 견디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현실 회피 경향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29세 은행원 박광현(가명) 씨는 "업무 성과가 나오려면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요. 게임에서는 1시간만 투자하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데... 그래서 일할 때 집중이 안 되고, 자꾸 게임 생각이 나요"라고 고백한다. 이런 현상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업무 적응 문제로도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역설이 나타난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깊이 있고 지속적인 관계는 형성하기 어려워졌다. 온라인 관계의 '선택적 친밀감'은 자유로움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책임감과 헌신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31세 프리랜서 정재원(가명) 씨는 "온라인에서는 수백 명과 대화하지만, 정말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모두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관계라서... 깊이 의존하기 어려워요"라고 말한다.
더욱이 온라인 관계에 익숙해질수록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형성 능력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28세 그래픽디자이너 한형준 씨는 "온라인에서는 정말 활발하게 소통하는데, 정작 현실에서 사람들과 만나면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온라인처럼 편집해서 말할 수도 없고, 즉시 검색해서 답할 수도 없고... 점점 현실 만남이 부담스러워져요"라고 털어놓는다.
가장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는 이들의 변화가 개인적 차원에서는 합리적 선택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상당수의 젊은 남성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가족을 형성하지 않으며, 장기적 경제 목표를 갖지 않는다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역사상 최저치는 이미 그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재의 20-30대가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가족의 돌봄을 받을 수 없다면, 사회적 돌봄 시스템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40년에는 65세 이상 1인 가구가 전체 고령자 가구의 34.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43.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우려되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20-30대 남성의 우울증 진단율은 2018년 2.3%에서 2023년 7.8%로 급증했으며, 자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같은 기간 8.7%에서 18.4%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31세 디자이너 윤씨(가명)는 "자유롭긴 한데... 가끔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싶어요. 특별한 날에 함께 축하해줄 사람도 없고, 힘들 때 진짜로 기댈 사람도 없고... 자유와 외로움의 경계가 애매해요"라고 말한다.
더 복잡한 것은 이들 자신도 현재 상황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32세 회계사 조씨(가명)는 "지금 생활이 불만족스럽다는 건 아니에요. 자유롭고 편하고... 하지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요"라고 털어놓는다. 이는 많은 젊은 남성들이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만족하면서도 동시에 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다른 문제는 이들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혁신 동력에 미칠 영향이다. 전통적으로 사회의 발전과 혁신을 이끌어왔던 젊은 남성층이 안정과 현상유지를 추구하게 되면, 사회 전체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 30세 스타트업 직원 김씨(가명)는 "주변 친구들 보면 다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해요. 대기업 취직하고, 적당히 일하고, 개인 시간 확보하고... 누구도 뭔가 크게 도전하려고 하지 않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변화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전통적 남성성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다. 또한 성별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져 더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할 수 있게 된 것도 의미 있는 발전이다. 문제는 이런 개인적 자유가 사회적 연대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는 점이다.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자들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남성성과 생활 양식을 실험하고 있다. 이들의 변화는 전통적 남성성의 요구와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찾아낸 나름의 생존 전략이자 적응 과정이다. 하지만 이 전략이 과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공적 적응인지, 아니면 일시적 회피에 불과한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변화가 개인적 일탈이나 세대적 특이성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대응이라는 점이다. 성평등 의식의 확산, 개인주의 문화의 정착,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가,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전통적 가족 제도의 해체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런 변화를 추동했다. 그들이 기존 서식지를 떠난 것은 그곳이 더 이상 안전하고 편안하며 의미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디지털 서식지가 제공하는 이점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구조, 능력 중심의 평가 시스템, 선택적이고 유연한 인간관계, 즉시적이고 명확한 성취감과 피드백, 완전한 개인적 자유와 통제권 등은 분명히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요소들이다. 특히 전통적 남성성의 억압적 요구와 경직된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정신건강과 개인적 성장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생활 방식의 한계와 위험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적 고립과 관계적 빈곤, 장기적 목표와 동기의 상실, 현실 적응력과 문제해결능력의 저하, 경제적 불안정성과 미래에 대한 무계획성, 즉시적 만족에의 중독과 인내력 부족 등이 그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개인적 선택들이 대규모로 집합화될 때 사회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장기적 영향이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출산율 급감, 1인 가구 급증,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부담 증가, 혁신 동력의 약화, 사회적 연대 의식의 감소 등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조짐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별 고정관념의 해체, 다양한 생활 방식의 인정, 개인의 자율성 확대,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등 긍정적 변화들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성들은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급변한 사회 환경 속에서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적응해 온 변화의 세대다. 이 변화는 지난 4반세기—특히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이 확산된 2000년 전후부터 시작되어—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남성들이 전통적으로 누려온 놀이·경쟁·성장 영역이 확실하게 달라진 현실을 보여준다.
2000년대 초 대한민국에서는 PC방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고,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경쟁하던 시대를 지나 가상의 운동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제 현실의 몸의 움직임 대신 사유와 욕망의 움직임으로 전환된 가상 공간에서 뛰는 선수이며, 동시에 구경꾼이 되어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여가 형태의 전환이 아니라, 몸의 운동을 사유와 욕망의 운동으로 치환하는 산업을 성장하게 했으며, 게임 산업은 그 중심에 섰다.
글로벌 게임 산업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1,844억 달러에 달하며, TV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미디어 분야로 성장했다. 모바일 게임 분야만 해도 2023년 한 해 동안 약 997억 달러에 이르렀고, 2032년에는 약 2,275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 당시 약 3조 원이었던 게임 산업 규모가 2018년엔 14조 원을 넘어섰고, 2022년에는 약 23조 원 수준까지 성장했다. 이러한 규모의 비약적 확대는 단순한 오락 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남성들이 오프라인에서 경험했던 운동과 놀이의 영역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간 수준을 넘어선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 수치들은 결국 남성들이 전통적 운동장과 집단 공간에서 포기하고 상실한 '남성성의 값(?)'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찾은 것은 단순한 대체물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 구조, 즉시적 성취감과 인정, 선택적 소속감, 그리고 완전한 통제력 등 네 가지 근본적 욕구의 충족이었다.
그렇지만 이 변화가 개인적이며 세대적으로 일시적인 회피인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남성성인지에 대해 아직 결론 내리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 변화가 한국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구조적 변화—성평등 의식 확산, 개인주의 강화, 경제적 불안정, 전통 가족 해체,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 발전 등과 얽혀 있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