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젠더이슈에 대한 불만과 저항

“역사 이래로 이렇게 남성들이 위축되고 역차별당한 적은 없었다”

by NAHDAN

1장에서 본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자들'과 2장에서 본 '뒤바뀐 세상에서 살아가기'는 개인적 경험으로 시작되었지만, 결코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어떤 20대 직장인은 아침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역차별'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확인하며 공감을 쌓고, 또 다른 20대 남성은 소개팅 자리에서 경제적 부담이 온전히 자신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체감한다. 사회 초년생인 30대 초반의 남성은 직장에서 여성 동료와의 관계에서 언제 어떤 발언이 문제가 될지 몰라 늘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흩어진 개인적 경험들이 모이고 증폭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적 힘으로 전환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20대 남성의 투표 성향이 급격히 보수화된 것, 2022년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것, 온라인 공간에서 끝없이 확산되는 ‘페미니즘 vs 안티페미니즘’의 담론… 이 모든 현상의 뿌리에는 앞 장에서 살펴본 개인들의 구체적이고 생활적인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는 순간, 우리는 젠더 정치의 새로운 지형과 마주하게 된다.






1. 분노의 정치화—온라인 불만이 사회 의제가 되는 과정



디지털 공명실에서 증폭되는 개인적 박탈감


2장에서 살펴본 온라인 확증편향 메커니즘은 단순히 개인의 인식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담론 지형을 바꾸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동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적 불만이 집단적 분노로 전환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체계적이다. 하나의 게시물이 24시간 만에 수만 명의 공감을 얻고, 비슷한 경험담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개별적 경험이 보편적 현상으로 일반화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벌어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과정에서 개인적 경험의 복잡성과 미묘함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1-2장에서 본 남성들의 경험은 실제로는 매우 복합적이고 맥락적이었다. 경제적 부담감 뒤에는 사회 변화에 대한 혼란이 있었고, 직장에서의 조심스러움 뒤에는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이런 경험들이 공유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복잡한 맥락은 제거되고 단순한 피해 서사만 남게 된다.


이런 단순화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의 구조적 특성상 복잡하고 미묘한 내용보다는 명확하고 자극적인 내용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알고리즘은 참여도가 높은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는데, 분노나 불안을 자극하는 콘텐츠일수록 더 많은 클릭과 댓글, 공유를 유발한다. 그 결과 균형 잡힌 시각이나 건설적인 대안 제시보다는 극단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담론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런 과정에서 '진실'의 기준이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되는 경험담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 현실을 대표하는지, 얼마나 일반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 과정은 생략된다. 대신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진실성의 근거로 받아들여진다. 조회수와 댓글 수가 사실성을 보장하는 지표처럼 여겨지면서, 양적 확산이 질적 검증을 대체하는 현상이 일상화된다.


언론과 정치권의 전략적 활용


온라인에서 형성된 담론이 사회적 의제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언론은 온라인의 다양한 목소리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여 보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이트키퍼 역할을 한다. 그런데 현재 언론 환경에서는 클릭률과 화제성이 보도 가치를 결정하는 주된 기준이 되면서, 자극적이고 갈등적인 내용이 우선적으로 선택된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공익적 기능보다는 상업적 성과가 언론사의 생존을 좌우하게 되었고, 이는 보도 내용의 선정성과 자극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특히 젠더 이슈를 다룰 때 언론의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복잡하고 미묘한 젠더 관계의 변화보다는 극단적 대립과 갈등 상황이 훨씬 큰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일부 극단적 사례들이 전체 세대나 성별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도되고, 개별적이고 예외적인 사건들이 사회 전반의 추세로 일반화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20대 남성, '역차별' 주장 확산", "젠더 갈등, 청년층 정치 성향 변화 주도" 같은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온라인의 목소리가 '사회적 현상'으로 포장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단순히 현상을 보도하는 것을 넘어서, 그 현상을 증폭시키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부 의견이 '청년 남성의 목소리'로, 특정 사례가 '전반적 추세'로 확대 해석되면서,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는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부분만이 대표성을 갖는 것처럼 묘사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이 이런 온라인 담론을 보도할 때 충분한 검증이나 맥락 제공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댓글이나 게시글을 인용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의도로 작성되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없이 단순히 '여론'의 일부로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1-2장에서 살펴본 개인적 상처와 복잡한 심리적 배경은 사라지고, 단순한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대립으로만 해석된다.


언론의 보도 방식도 문제를 악화시킨다. 대부분의 젠더 관련 기사들이 '대립' 구도로 작성되면서, 마치 남성과 여성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남성 vs 여성", "페미니즘 vs 안티페미니즘" 같은 이분법적 프레임이 반복되면서, 실제로는 협력과 상호 이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갈등과 대립의 관점에서만 조명된다. 이런 보도 프레임은 독자들에게 젠더 이슈가 본질적으로 갈등적이고 해결 불가능한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정치권의 반응은 더욱 전략적이고 계산적이다. 정치인들은 온라인에서 확산되는 담론을 예민하게 모니터링하며, 이를 정치적 기회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한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유권자들의 감정과 직접 연결되는 이슈를 선점하여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진다. 젠더 이슈는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감정적 반응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는 매력적인 정치적 자원이 된다.


정치인들은 온라인에서 형성된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조정한다. 때로는 극단적 의견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편의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관심을 끌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정치적 관심과 지지의 확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분노와 불만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더욱 자극하여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활용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은 종종 왜곡된다.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들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로 축소되고, 장기적 해결책보다는 즉각적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 우선시된다. 1-2장에서 살펴본 남성들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어려움들—경제적 불안정, 관계에서의 혼란, 정체성의 위기—은 정치적 담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이런 복잡한 문제들이 "여성우대정책 폐지"나 "역차별 금지" 같은 단순한 정치적 슬로건으로 환원된다.


정치권의 이런 접근은 실제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대부분 상징적이거나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개선 방안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발언들이 반복되면서, 사회적 분열만 심화된다.



담론의 정치적 무기화


개인적 경험이 정치적 담론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현상은 담론의 '무기화'다. 원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소통의 도구였던 담론이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무기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담론은 소통과 이해의 매개체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의 촉매제가 된다. 젠더 이슈를 둘러싼 담론이 정치적으로 무기화되면서, 원래 이 담론이 해결하려 했던 실제 문제들은 오히려 더욱 악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담론의 무기화는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첫 번째 단계는 복잡한 사회 현상을 극도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1-2장에서 본 남성들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경험들이 "남성 역차별"이라는 단일한 프레임으로 축소된다. 연애에서의 경제적 부담, 직장에서의 새로운 긴장감, 가정에서의 역할 혼란 등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모두 하나의 정치적 의제로 뭉뚱그려진다.


두 번째 단계는 이 단순화된 프레임을 정치적 정체성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젠더 이슈에 대한 입장이 곧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겨지면서,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복합적인 입장을 취하기 어려워진다. "페미니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라는 이분법적 질문 앞에서 개인의 복잡한 경험과 생각은 설 자리를 잃는다.


세 번째 단계는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다.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을 단순히 의견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열등하거나 사회에 해로운 존재로 규정한다.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주의자"이거나 "안티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주의자"라는 식으로, 복잡한 스펙트럼의 의견들이 극단적 라벨링을 통해 단순화된다.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후보들은 젠더 이슈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고, 유권자들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진영을 나누어 대립했다. 하지만 정작 선거가 끝난 후 살펴보면, 1-2장에서 본 구체적 문제들—연애 경제학의 딜레마, 직장에서의 새로운 긴장감, 가정에서의 역할 혼란—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갈등만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다. 선거 과정에서 젠더 이슈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면서, 실제 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 동원에만 치중한 결과였다.


이는 정치적 담론이 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 동원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단순한 선악 구조로 축소하고,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했다. 그 결과 젠더 이슈는 합리적 토론과 건설적 대안 모색의 주제가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적대감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감정적 반응을 극대화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고,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은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담론의 무기화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젠더 이슈에 대한 토론이 정치적 진영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이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 형성은 더욱 어려워진다. 실제로 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정책들조차 정치적 색깔이 입혀지면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육아휴직 확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돌봄 서비스 확충 같은 정책들이 "페미니즘 정책"이라는 라벨이 붙으면서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담론의 무기화가 사회 전체의 대화 능력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젠더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면서,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대화를 기피하게 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젠더 관련 주제는 '건드리면 안 되는' 금기 영역이 되어버린다. 그 결과 진정한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는 위축되고, 대신 진영 간 대립만 격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1-2장에서 살펴본 개인적 상처들은 치유될 기회를 잃는다.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성들의 고립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들은 정치적 담론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담론의 무기화는 이런 상처들을 더욱 깊게 만들고, 치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개인의 복잡하고 미묘한 경험이 거대한 정치적 담론에 압도당하면서, 진정한 소통과 이해의 기회는 사라져버린다.






2. 혐오의 미러링—언어 전쟁이 만든 새로운 적대 구조


메갈리아 이후의 언어 전쟁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은 한국 사회의 젠더 담론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메갈리아가 채택한 '미러링' 전략—기존의 여성 혐오 표현을 그대로 뒤집어 남성에게 적용하는 방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뒤바꿈을 넘어서, 기존 권력 구조의 은밀한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략적 행위였다. 메갈리아의 이름 자체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핸드메이드 테일』에서 따온 것처럼, 이들의 활동은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 의문 제기였다.


메갈리아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 표현은 대부분 '농담'이나 '관습'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김치녀", "된장녀" 같은 표현들이 온라인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이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성들조차 이런 표현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혐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예민한 여자',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더 큰 공격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메갈리아언어들.jpg 메갈리아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남성 관련 지칭 표현들


이런 상황에서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은 기존의 침묵과 회피와는 전혀 다른 대응 방식이었다. "한남충", "재기해" 같은 표현들을 통해 남성들에게 동일한 언어적 폭력을 가하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여성혐오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려 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언어를 그대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언어적 폭력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미러링의 초기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여성 혐오 표현들이 남성에게 그대로 적용되자, 많은 남성들이 처음으로 그런 언어의 폭력성을 체감하게 되었다. "아, 이게 이렇게 기분 나쁜 거구나"라는 깨달음이 확산되면서, 일부에서는 기존 언어 사용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젊은 남성들 중 일부는 자신이 무심코 사용했던 표현들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메갈리아의 활동이 여성혐오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상시켰다는 점이다. 그동안 개인적 차원에서만 경험되었던 여성혐오가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몰래카메라 범죄, 스쿨미투 운동 등이 사회적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메갈리아가 만들어낸 담론적 기반이 있었다. 여성들도 자신이 경험한 차별과 혐오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언어와 공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이 광범위한 사회적 성찰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반발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남성들이 미러링을 단순한 '교육적 체험'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대해 방어적이고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해서 이제는 우리를 똑같이 혐오해도 되는 건가?"라는 논리가 확산되면서, 젠더 갈등은 '누가 더 피해자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로 발전했다.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던 남성들에게 미러링은 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미 사회적 지위 하락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자신들을 향한 혐오 표현은 추가적인 상처가 되었다. 이들은 미러링의 '교육적 의도'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자신은 여성혐오를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는 이런 일괄적 공격이 더욱 부당하게 느껴졌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미러링 전략이 의도했던 '교육적 효과'보다는 '감정적 반발'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시키려는 의도였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더욱 적대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언어의 폭력성을 체험시키는 것과 그것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감정적 상처를 통한 깨달음보다는, 감정적 상처에 대한 복수 욕구가 더 강하게 작동한 것이다.



혐오의 상호 증폭과 극단화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촉발한 것은 예상과 달리 성찰이 아니라 혐오의 상호 증폭이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제는 당당하게 여성혐오를 해도 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여성들도 남성혐오를 한다는 것이 기존 여성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된 것이다. "그들이 먼저 시작했다", "우리만 참을 이유가 없다"는 식의 논리가 확산되면서, 기존에 억제되어 있던 혐오 표현들이 더욱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들의 본성이 드러났다"며 더욱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러링에 대한 남성들의 격렬한 반응을 보며, "역시 남성들은 자신들이 가해자가 되는 것은 싫어한다"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는 남성들 전체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온건한 목소리를 내는 남성들조차 "위선적"이거나 "계산적"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메갈리아혐오.jpg


이 과정에서 개인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경험은 완전히 사라졌다.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성들의 고립감이나 뒤바뀐 세상에서 느끼는 혼란 같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들이 "남성 특권에 대한 향수"나 "가부장적 욕망"으로 단순화되어 해석되었다. 여성들의 경험 역시 "남성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나 "역차별 의도"로 왜곡되어 받아들여졌다. 대신 서로에 대한 단순하고 극단적인 스테레오타입만 남게 되었다.


남성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여성은 '히스테리컬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이런 단순화된 적대는 온라인 공간에서 끝없이 재생산되고 강화되면서, 점점 더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을 "감정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정치 참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을 "본능적으로 폭력적이고 지배욕이 강한 존재"로 규정하며 남성과의 어떤 협력도 불가능하다는 극단적 입장이 등장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온라인 혐오 담론이 현실의 남녀 관계와 점점 더 괴리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 직장이나 학교,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성들은 온라인에서 그려지는 극단적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대부분은 평범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었고, 극단적 혐오를 표출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형성된 편견이 현실 인식을 점점 더 강하게 왜곡시켰다. 온라인에서 접한 극단적 사례들이 마치 일반적 현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실제 경험보다 온라인 정보를 더 신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실과 인식의 괴리는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켰다. 처음 만나는 이성에 대해서도 온라인에서 학습한 스테레오타입을 적용하여 의심하고 경계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남성들은 여성을 만날 때 '혹시 이 사람도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나?'라는 의심을 품었고, 여성들은 남성을 만날 때 '혹시 이 사람도 여성혐오자인가?'라는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호 불신은 건전한 관계 형성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연애나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극단적 이미지 때문에 이성과의 관계 자체를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는 서로 잘 맞을 수 있는 사람들도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는 개인적 차원의 불행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저출산과 고립 문제와도 연결되는 심각한 사회적 손실이었다.



혐오 담론의 정치적 도구화


온라인에서 확산된 혐오 담론은 곧 정치적 동원의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정치세력들은 이런 감정적 대립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할 기회로 인식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페미니즘이 남성을 차별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적극 활용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여성혐오 백래시에 맞서 여성 권익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정치인들은 젠더 갈등을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


이런 정치적 활용 과정에서 혐오 담론은 더욱 체계화되고 조직화되었다.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전략적 도구로 발전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젠더 이슈를 둘러싼 감정적 대립을 부추기면서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했다. 특히 젊은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남성 역차별'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했다. 반대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페미니즘 백래시에 맞선 투쟁' 프레임을 강조하는 정치인들도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혐오와 적대감은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았고, 공론장에서 당당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의 발언과 정책 공약을 통해 온라인의 극단적 담론이 제도 정치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이는 혐오 담론에 일종의 '공식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았다.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니 자신들의 혐오 표현도 정당하다는 논리가 확산되었다.


여가부폐지,폐지반대.jpg 여가부 폐지반대(극우남성단체)와 여가부존치찬성(일반 인권단체, 여성단체 등)


정치적 도구화는 또한 혐오 담론을 더욱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욕설이나 비하 표현에서 벗어나 정책적 근거와 이론적 배경을 갖춘 형태로 발전했다. "여성할당제 폐지", "군가산점 부활", "여성가족부 해체" 같은 구체적 정책 대안들이 남성혐오에 대한 대응으로 제시되었고, 반대로 "성별임금격차 해소", "유리천장 철폐", "성폭력 처벌 강화" 같은 정책들이 여성혐오에 맞선 투쟁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도구화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고착화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통합 능력을 해치는 위험한 전략이다. 젠더 이슈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면서, 실제 성평등 개선을 위한 합리적 논의는 더욱 어려워졌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1-2장에서 본 당사자들—실제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젊은 남성들과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진솔한 고민과 건설적인 노력은 정치적 구호와 혐오 담론 속에 묻혔다.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성들의 고립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는 "남성 특권 상실에 대한 불만"으로 폄하되었고, 여성들의 성평등 요구는 "남성에 대한 복수"로 왜곡되었다.


대신 극단적이고 선정적인 목소리만이 공론장을 지배하게 되었고,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정치적 도구화는 젠더 이슈를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게임'으로 만들어버렸고, 이 과정에서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결국 혐오 담론의 정치적 도구화는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을 뿐, 실제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3. 페미니즘의 스펙트럼과 남성들의 인식 혼란


다층적 페미니즘과 단일화된 인식의 괴리


1-2장에서 본 남성들의 혼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 동시다발적으로 유입된 페미니즘의 복잡한 스펙트럼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2010년대 이후 한국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차이주의 페미니즘, 교차성 페미니즘 등 서로 다른 철학적 배경과 실천적 지향을 가진 다양한 페미니즘 담론이 압축적으로 유입되었다. 이들은 여성의 권익 신장이라는 큰 틀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구체적인 방법론과 지향점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기존 제도 내에서의 성평등 실현을 추구한다. 교육 기회의 확대, 고용 차별 금지, 정치 참여 확대 등을 통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기존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보다는 그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온건한 접근이다. 실제로 많은 직장 여성들이 취하는 실용적 접근 방식으로, 승진 기회의 공정성, 육아휴직 제도의 개선, 성희롱 예방 시스템 구축 등 구체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이들은 남성과의 협력을 통한 변화 가능성을 믿으며, 대립보다는 상호 이해를 통한 문제 해결을 선호한다.


반면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구조 자체가 남성 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부분적 개선으로는 진정한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이들은 언어, 문화, 제도, 관습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스며있는 가부장적 요소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로는 기존 체제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남성들과의 갈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차이주의 페미니즘은 또 다른 접근을 취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되, 그 차이를 위계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여성적 특성을 남성적 특성과 다르지만 동등하게 소중한 것으로 보며, 사회가 이런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의 모성, 돌봄 능력, 감정적 지능 등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 인정, 여성 친화적 조직 문화 조성 등을 통해 여성의 고유한 기여를 사회가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성별 외에도 계급, 인종, 성적 지향, 연령, 장애 여부 등 다양한 정체성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복합적 차별을 다룬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층적 차별 경험을 조명하며, 특히 소수자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이주 여성, 성소수자 여성, 장애 여성 등 교차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복합적 어려움을 사회가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이런 복잡하고 다층적인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이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채, 모든 것이 단일한 '페미니즘'으로 뭉뚱그려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언론과 온라인 담론에서는 이런 다양성이 거의 다뤄지지 않았고, 대신 가장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부분만이 '페미니즘'의 대표 사례로 부각되었다. 특히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경험과 맞물려, 서구에서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다양한 페미니즘 담론들이 짧은 시간 내에 동시에 유입되면서 혼재와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매우 편향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육아휴직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여성 직원과 온라인에서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같은 '페미니스트'로 분류되어 인식되었다. 전자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접근이고, 후자는 구조적 변화를 위한 급진적 전략이었지만, 이런 차이는 사회적으로 거의 인식되지 않았다.


이런 인식의 혼란은 남성들에게 특히 심각한 문제로 작용했다. 직장에서 성평등을 추구하는 온건한 여성 동료와 온라인에서 극단적 언어를 사용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모두 같은 '페미니즘'의 범주로 묶여서 인식되다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1장에서 본 것처럼 이미 공적 영역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남성들에게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은 더욱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성평등에 찬성하고 여성 동료와 협력하고 싶어도,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목소리들 때문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더욱이 이런 혼란은 페미니즘 전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실제로는 성평등의 가치에 동의하면서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남성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성평등 정책에는 찬성하면서도, 그것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제시되면 주저하거나 반발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급진적 언어의 주류화와 온건 목소리의 소외


특히 심각한 문제는 메갈리아, 워마드로 대표되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언어가 페미니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미러링", "한남충", "재기해" 같은 표현들은 원래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전략적 목적으로 사용된 언어였다. 이들은 기존의 여성혐오 언어를 뒤집어 사용함으로써 그 폭력성을 체험시키고,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미러링 전략의 핵심 논리는 명확했다. 그동안 여성에게 가해져온 언어적 폭력을 그대로 되돌려줌으로써, 그 부당함과 상처를 남성들이 직접 체험하게 하여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적 언어 사용에는 나름의 사회적 배경과 논리가 있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일상적이고 은밀한 형태로 만연해 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다. "김치녀", "된장녀" 같은 여성혐오 표현들이 온라인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었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대상화나 외모 품평도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기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접근으로는 이런 구조적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을 통해 여성혐오의 심각성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여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고, 그동안 은밀하게 이뤄지던 여성혐오 현상들이 공론화되었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몰래카메라 범죄, 직장 내 성희롱 문제 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러링 전략은 이런 변화의 촉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급진적 언어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마치 페미니즘의 일반적 언어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언론은 자극적이고 화제성 있는 내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소셜미디어 알고리즘도 참여도가 높은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킨다. 그 결과 극단적이고 과격한 표현들이 온건하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압도하게 되었다. 클릭률과 조회수, 댓글 수와 공유 횟수를 중시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자극적이고 논란적인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이런 극단적 언어들이 본래의 맥락에서 분리된 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급진적 페미니즘의 언어가 일상적으로 유통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페미니즘의 '표준적' 언어로 인식하게 되었다. 미러링의 전략적 의도나 맥락은 사라지고, 단순히 남성 혐오적 표현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늘어났다. 심지어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런 극단적 표현들을 통해서만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 편향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언론의 보도 행태도 이런 문제를 악화시켰다. 여성 문제를 다룰 때 가장 극단적이고 논란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건설적인 접근들은 뉴스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이 접하는 페미니즘 관련 정보는 대부분 갈등과 대립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었다.


이로 인해 1-2장에서 본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 자체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는 성평등에 찬성하고 여성의 권익 신장을 지지하는 남성들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측면은 접할 기회가 적었고, 대신 가장 극단적인 부분만을 반복적으로 노출당했다. 2장에서 살펴본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는 남성들에게 이런 극단적 언어는 자신들에 대한 일방적 공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페미니즘 전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이런 극단적 언어가 일상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여성과 남성이 젠더 이슈에 대해 대화할 때, 온라인에서 학습한 극단적 언어들이 무의식적으로 사용되면서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본래 건설적 대화가 가능했던 관계에서도 이런 언어적 장벽 때문에 소통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늘어났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성평등 이슈에 대해서는 아예 대화를 피하려 하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이는 자칫 극단적 언어로 인한 갈등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직장이나 일상에서 온건하고 실용적인 성평등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이들은 극단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주목받지 못했고, 언론도 이들의 목소리보다는 더 자극적인 내용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 많은 직장 여성들이 추구하는 것은 승진 기회의 공정성,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불이익 방지, 성희롱 예방 시스템 구축 등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선이었다. 하지만 이런 온건하고 실용적인 요구들은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대신 더 자극적이고 논란적인 사안들만이 '페미니즘 이슈'로 다뤄졌다.


특히 중간 관리층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는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이들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확보했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이나 '경력 단절'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들은 극단적 언어만큼 화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되었다.


그 결과 페미니즘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부분만이 사회적 관심을 독점하게 되었다.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크게 왜곡시켰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평등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렸다. 온건한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주장이 급진적 언어에 묻혀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페미니즘 내부에도 분열을 가져왔다. 온건한 페미니스트들은 급진적 언어와 전략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처럼 오해받기도 했다. 내부 비판자들은 '페미니즘을 분열시키는 자'나 '남성의 편에 선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부추긴다"거나 "여성 연대를 해치는 행위"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많은 온건 페미니스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급진적 언어를 비판하는 여성들마저 '명예남성'이나 '인턴십 페미니스트'라는 식으로 폄하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내부 검열과 배제의 분위기는 페미니즘 내부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건전한 토론 문화를 위축시켰다. 그 결과 페미니즘 내부의 건설적인 토론과 성찰은 위축되고, 대신 외부의 비판에 대한 방어적 반응만 강화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페미니즘의 발전과 사회적 수용성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관점과 접근 방식이 공존해야 할 페미니즘이 단일한 목소리로 획일화되면서, 실제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과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었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이 강화되면서, 성평등을 위한 사회적 합의 형성이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급진적 언어의 주류화는 본래 의도했던 사회 변화보다는, 오히려 성평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현실과 담론의 괴리가 만든 소통 불가능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당혹스러운 경험 중 하나는 바로 현실과 담론 사이의 극심한 괴리다. 특히 젠더 이슈를 둘러싼 이 괴리는 단순한 인식의 차이를 넘어서 근본적인 소통 불가능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1장에서 살펴본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성들과 2장에서 분석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남성들이 마주한 현실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담론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여성 동료와 일상적으로 협력하며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던 30대 남성이 퇴근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마주하는 것은 극도로 대립적인 젠더 담론이다. 낮에는 여성 상사의 지시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업무를 처리하던 그가, 밤에는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라는 극단적 언어들로 가득한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현실과 담론의 괴리는 개인의 경험을 왜곡시키고, 실제 경험했던 긍정적인 젠더 관계까지도 의심하게 만든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괴리가 양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담론이 현실 인식을 왜곡시키는 동시에, 현실의 복잡하고 미묘한 경험들이 온라인의 이분법적 담론 구조에서는 설명되지 않거나 배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예컨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이 이를 신고했을 때 조직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고 동료들이 지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변화의 사례는 온라인 담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극단적인 사례들만이 반복적으로 유통되면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점진적이고 건설적인 변화들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괴리는 특히 남성들에게 이중적 곤란함을 안겨준다. 1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공적 영역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남성들은,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극단적 페미니즘 담론을 통해 자신들이 사회의 '가해자'로 규정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실제 일상에서는 여성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여성 동료와 협력하며,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온라인 담론은 자신의 실존적 경험과 전혀 맞지 않는 이질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담론이 사회의 '공식적' 목소리로 인식되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거나 부정하게 되는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여성들 역시 이 괴리의 피해자다.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급진적 페미니즘 담론이 모든 여성의 경험을 대변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여성 경험들이 존재한다. 남성과의 관계에서 긍정적 경험을 한 여성들, 전통적 성역할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여성들,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온라인 담론에서 '내재화된 여성혐오'나 '거짓 의식'으로 치부되기 쉽다. 이는 여성 내부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이 될 수 있다.


소통 불가능의 상황은 언어 체계의 차이에서도 비롯된다. 온라인 담론은 주로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개념들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젠더', '가부장제', '구조적 차별', '교차성' 등의 개념들은 분명 중요한 분석 도구이지만, 이러한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접근 장벽이 된다. 특히 2장에서 살펴본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는 남성들은 자신들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어려움을 이론적 언어로 번역하여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반대로 학술적 담론에 익숙한 이들은 개인적 경험담을 '일화적 증거'로 치부하며 구조적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 개인들의 삶은 구조와 개인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이며,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이러한 언어와 접근 방식의 차이는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이들 간의 소통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더욱이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적 특성은 이러한 괴리를 증폭시킨다. 개인의 기존 관점과 유사한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는 추천 시스템은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다양한 관점에 노출될 기회를 줄인다. 젠더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용자에게는 점점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노출되며, 이는 현실보다 훨씬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미묘한 변화나 긍정적 사례들은 알고리즘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점점 더 비가시화된다.


시간성의 차이도 중요한 요소다. 온라인 담론은 즉시성과 반응성을 특징으로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해석과 판단이 뒤따르고, 빠른 시간 내에 여론이 형성된다. 하지만 현실의 젠더 관계나 사회 변화는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시간성의 차이는 온라인에서 형성된 급진적 담론과 현실의 점진적 변화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만든다.


결국 현실과 담론의 괴리는 단순한 정보의 부족이나 오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디지털 미디어의 구조적 특성, 그리고 사회 변화의 속도와 담론 형성의 속도 간의 부조화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문제다. 이 괴리가 지속되는 한, 실제로는 서로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적대적 관계로 인식하게 되고, 건설적인 사회 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소통 불가능의 상황은 1장과 2장에서 살펴본 개인적 상처들을 치유할 기회를 박탈한다.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성들의 고립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들은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과 담론의 괴리가 만든 소통 불가능의 벽은 이러한 치유의 과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4. 정치적 동원의 전략과 청년 남성 표심의 변화


젠더 이슈의 선거 전략화


2018년 이후 한국 정치에서 젠더 이슈는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1-2장에서 본 20-30대 남성들의 불만과 여성들의 권익 요구가 모두 정치적으로 동원 가능한 감정적 자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이런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했고,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보수 진영의 전략은 상당히 정교했다. 이들은 20-30대 남성들의 박탈감과 불안감을 "공정성"과 "역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했다. "남성 역차별 해소", "여성가족부 폐지", "공정한 경쟁" 등의 키워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젊은 남성 유권자들의 복합적 감정을 효과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적 언어였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여성혐오를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젊은 남성들의 불만을 정치적 지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 교묘한 전략을 구사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런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오세훈 후보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자, 20대 남성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는 단순히 여성가족부라는 하나의 부처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불만과 박탈감이 하나의 상징을 통해 표출된 것이었다.


진보 진영의 대응 전략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이들은 "페미니즘 백래시 대응", "여성 권익 보호", "성평등 정책 확대" 등의 키워드로 여성 유권자층의 결속을 강화하려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2장에서 본 남성들의 구체적 경험과 고민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불만을 "기득권의 저항" 혹은 "여성혐오의 발로"로 규정하면서, 이들을 정치적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양극화된 전략은 젠더 이슈를 정치적 갈등의 도구로 변질시켰다. 복잡하고 미묘한 사회 문제가 단순한 정치적 구호로 축소되었고, 장기적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단기적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갔다.




표심 분화와 세대 내 젠더 갈등


2022년 대선에서 나타난 20대 남녀의 극명한 표심 분화는 이런 정치적 전략의 결과였다. 20대 남성의 58.7%가 윤석열을 지지한 반면, 20대 여성의 58.0%는 이재명을 지지했다. 이는 역대 대선사상 최대 규모의 젠더 격차였고, 같은 세대 내에서도 성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정치적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투표 결과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더 복잡한 양상이 드러난다. 많은 젊은 남성들이 보수 후보를 선택한 것은 해당 후보나 정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라기보다는, 기존의 정치적 선택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정치세력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소극적이고 소거법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실제로 선거 이후 진행된 심화 인터뷰들을 보면, 윤석열에게 투표한 많은 20대 남성들이 그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윤석열이 자신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기보다는, 적어도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목소리를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반면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해서는 "아예 우리 얘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를 드러낸다. 기존의 정치 구조가 변화하는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많은 집단들이 정치적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특히 20-30대 남성들은 과거에는 정치적 '기본값'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집단이 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성 유권자들의 선택도 마찬가지로 복합적이었다. 이들이 이재명을 지지한 것은 그에 대한 절대적 신뢰보다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한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특히 윤석열의 "구조적 성차별은 해소됐다"는 발언은 많은 여성들에게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이들은 그동안 이뤄낸 성평등의 성과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방어적 투표를 한 측면이 강했다.




정치적 해결책의 한계와 갈등의 지속


선거가 끝난 후의 현실은 정치적 해결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1-2장에서 본 구체적 문제들—데이트 비용 부담, 직장에서의 긴장감, 가정에서의 역할 혼란—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젠더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사회적 분열은 더욱 깊어졌다. 선거 과정에서 그토록 뜨겁게 논의되었던 젠더 이슈들이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제시되었던 공약들을 살펴보면 그 한계가 더욱 명확해진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별 할당제 재검토", "군가산점 부활 검토" 같은 상징적 정책들이 주를 이뤘을 뿐, 1-2장에서 본 남성들의 실질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거의 제시되지 않았다.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 남성들의 고립감을 해소할 사회적 지원책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 남성들을 위한 심리적 지원 프로그램,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남성성을 모색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 같은 것들은 정치적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더욱이 실제로 시행된 정책들마저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는 결국 무산되었고, 성별 할당제나 군가산점 문제도 여전히 논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설령 이런 정책들이 실제로 시행되었다 하더라도, 1-2장에서 살펴본 근본적 문제들—연애와 결혼에서의 경제적 부담감, 직장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 규칙에 대한 혼란, 가정에서의 역할 정체성 위기—이 해결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이는 애초에 이런 문제들이 정치적 구호나 정책적 선언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1-2장에서 본 남성들의 경험은 급격한 사회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문제였다. 경제 구조의 변화, 가족 형태의 다양화, 성역할 인식의 변화,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 등 복합적 요인들이 얽혀서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교육, 문화, 복지, 노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했지만, 정치권은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했다.


정치적 해결책의 또 다른 문제는 젠더 이슈를 제로섬 게임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남성의 이익과 여성의 이익이 서로 상충하는 것으로 보고, 한쪽의 득은 다른 쪽의 실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1-2장에서 본 많은 문제들이 남녀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 전체의 문제였다. 예를 들어, 연애와 결혼에서의 경제적 부담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였고, 직장에서의 젠더 관련 긴장감은 남녀 모두의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문제였다.


정치권이 이런 복합적 문제를 단순한 '남 vs 여' 구도로 축소하면서, 실질적 해결책을 찾을 기회를 놓쳤다. 대신 갈등을 부추기고 진영을 나누는 데만 몰두했다. 이는 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 동원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유권자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표를 얻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정치적 갈등이 사회 차원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점이다. 젠더 이슈가 정치적 정체성의 핵심 요소가 되면서, 이에 대한 어떤 의견을 갖는 것 자체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성평등에 대한 관점이 곧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가 되었고,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가 정치적 성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결과 젠더 문제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사회적 논의는 더욱 어려워졌다.


일상적 관계에서도 이런 정치화의 영향이 나타났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젠더 관련 주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역이 되어버렸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정치적 입장을 의심받거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는 1-2장에서 본 개인적 경험들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치적 갈등의 심화는 또한 온건하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더욱 위축시켰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양쪽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정치적 무관심'이나 '기회주의'로 비판받기 쉬웠다. 페미니즘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일부 극단적 양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나, 여성의 권익 신장을 지지하면서도 남성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시각은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명확한 진영 논리에 따른 극단적 입장만이 정치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선거 이후 정치적 관심이 다른 이슈로 옮겨간 후에도 이런 갈등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정치인들은 젠더 이슈를 통해 얻고자 했던 정치적 이익을 얻고 나서는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하지만 사회에는 정치적 갈등이 만들어낸 깊은 상처와 분열이 고스란히 남겨졌다. 1-2장에서 본 개인들의 구체적 어려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이제는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추가적 상처까지 안게 되었다.


정치권의 젠더 이슈 활용은 결국 사회 전체에게 손해를 안겨주었다. 정치인들은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사회는 더욱 분열되었고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정치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적 책임감보다는 단기적 이익 추구가 우선시되면서, 사회 통합과 문제 해결이라는 정치의 본래 기능은 상실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정치적 갈등이 향후 젠더 문제에 대한 건설적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젠더 이슈가 정치적 진영 논리에 매몰되면서, 이 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나 실효성 있는 해결책 모색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어떤 정책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정치적 진영의 이익에 부합하는지가 먼저 검토되고, 실제 효과나 합리성은 부차적으로 고려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 전반에 대한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이었다.





5. 피로감 속에서 싹트는 새로운 가능성


젠더 갈등에 대한 세대적 피로감과 실용적 대안의 모색


하지만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변화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1-2장에서 본 극심한 젠더 갈등을 직접 경험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젠더 피로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모든 것을 남성 대 여성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기존의 이분법적 젠더 정치에 대한 의식적 거부감이다.


이런 피로감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젠더 갈등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건설적인 결과 없이 소모적 논쟁만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온라인과 언론에서는 연일 젠더 관련 논란이 터져나왔지만, 실제 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긍정적 변화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남녀 간 불신과 적대감만 깊어졌을 뿐이다. 특히 이들 젊은 세대는 메갈리아 논란부터 최근의 정치적 갈등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지속된 젠더 갈등을 목격하면서, 이런 대립적 접근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또한 젠더 이슈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면서 진정성을 잃었다는 인식도 강하다. 정치인들이 젠더 갈등을 부추기면서 표를 얻으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런 정치적 이용에 대해 냉소적 반응을 보이면서, 젠더 이슈 자체에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정치권이 자신들의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상징적 논쟁에만 몰두하면서, 정작 중요한 일상적 문제들—취업, 주거, 연애, 결혼 등—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정체성이 성별에 의해 규정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자신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정의하기보다는 개별적이고 독특한 존재로 인식하고 싶어한다. 성별이라는 범주가 오히려 자신을 제약하는 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성별보다도 개인의 취향, 가치관, 능력, 꿈 등이 더 중요한 정체성의 기준이 된다.


이런 피로감과 함께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일부 젊은 세대가 기존의 성역할 규범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조용히 실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거창한 이념적 선언 없이, 일상에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지도 않고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않지만, 실제로는 더 지속가능하고 건전한 방향의 변화일 수 있다.


연애 관계에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2장에서 본 전통적 연애 경제학을 거부하고 대등한 비용 분담을 추구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누가 더 많이 벌면 그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하되, 성별에 관계없이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합리적으로 분담한다. 또한 데이트 코스나 만남의 방식도 한쪽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상호 협의를 통해 정한다. 이런 커플들은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내야 한다"거나 "여자가 집안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각자의 상황과 능력에 맞는 현실적 해결책을 찾는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성별에 관계없이 동료로 대하되,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이는 여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거나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성격을 기준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런 직장에서는 성별과 관계없이 업무 능력이 인정받고, 승진이나 인사에서도 성별보다는 실력이 우선시된다. 동시에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여성의 특수한 상황도 자연스럽게 배려되지만, 이것이 '특혜'가 아니라 '정당한 지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정에서의 역할 분담도 점차 유연해지고 있다. 성별에 따른 고정된 역할보다는 각자의 능력과 상황, 선호도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육아와 가사노동도 '여성의 일' 혹은 '함께 해야 할 일'이라는 당위적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관점에서 분담한다. 예를 들어, 요리를 더 잘하는 사람이 요리를 담당하고, 정리정돈에 능한 사람이 청소를 맡는 식으로, 성별과 관계없이 합리적으로 역할을 나눈다.




포용적 남성성과 자율적 여성성 : 새로운 정체성의 실험


특히 주목할 것은 1-2장에서 본 정체성 혼란을 겪던 일부 남성들이 새로운 형태의 남성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전통적 남성성의 경직된 틀도 급진적 페미니즘의 남성성 부정도 모두 거부하면서, '포용적 남성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이분법적 젠더 담론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미묘하고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포용적 남성성은 전통적 남성적 덕목(책임감, 리더십, 보호 의지 등)은 유지하되, 그것을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이 아니라 협력적이고 배려적인 방식으로 발휘하는 것이다. 또한 감정 표현이나 돌봄, 섬세함 같은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진 특성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는 남성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들은 가족이나 연인을 보호하고 책임지려는 의지는 유지하지만, 그것을 일방적 결정이나 권위적 명령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협의와 소통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이런 남성들은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기존의 남성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다. 슬플 때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동시에 타인의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돌봄과 배려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이들에게 '강함'이란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직업적 측면에서도 이들은 기존의 남성적 성공 모델에서 벗어난 다양한 길을 추구한다. 반드시 높은 지위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적성과 가치관에 맞는 일을 찾으려 한다. 육아휴직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거나,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거부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성공이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성취만이 아니라, 개인적 만족과 가족의 행복을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요구되던 '강한 여성성'이나 '투쟁하는 여성성'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율적 여성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기대나 페미니즘적 당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과 선호에 따라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자율적 여성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은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모든 종류의 규범적 기대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이는 전통적 성역할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적 기대에서도 벗어나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육아에 전념하는 것도,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커리어에 집중하는 것도 모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압력이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욕망과 가치관이다.


이런 여성들은 또한 관계에서도 더 솔직하고 직접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합리적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들에게 '여성스러움'이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들은 아직 소수에 그치고 있고,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기존의 미디어나 담론 구조에서는 이런 미묘하고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대립이 더 주목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은 기존의 이분법적 젠더 정치를 넘어선 대안적 경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이들의 실험이 성공할 경우, 젠더 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존을 위한 새로운 담론과 미래 설계


이런 변화들이 더 확산되고 정착되려면 새로운 언어와 담론이 필요하다. 기존의 젠더 담론은 너무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이어서, 이런 미묘하고 복합적인 변화를 담아내기 어렵다. 갈등과 투쟁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와 협력의 언어, 대립의 논리가 아니라 공존의 논리가 필요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실험들을 설명하고 격려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과 용어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개인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는 담론이 필요하다. 모든 남성이 같고 모든 여성이 같다는 전제에서 벗어나, 개인마다 다른 특성과 욕구,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별이라는 범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개인을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계층, 지역, 연령, 직업, 가치관 등 다양한 변수들이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교차성의 관점이 더욱 중요해진다.


새로운 담론에서는 '피해자 vs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도 극복되어야 한다. 1-2장에서 본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모두 기존 성역할 규범의 변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누가 더 피해자인가를 경쟁하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어떻게 함께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상호 경쟁이 아니라 상호 협력의 프레임이 필요하다.


미디어와 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 극단적이고 갈등적인 내용만 부각시키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사례들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젊은 세대가 성별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 내용과 방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는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개인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포용적 남성성과 자율적 여성성의 실험들을 소개하고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사례들이 더 많이 알려져야 젊은 세대가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런 변화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 시스템 등이 확산되어야 한다.


정치권의 변화도 필요하다. 젠더 이슈를 정치적 동원의 도구로 활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진정한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이익이 적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통합과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화합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적 경험이 본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은 현대 한국 사회가 젠더 문제를 둘러싸고 겪고 있는 깊은 혼란을 보여준다. 개인의 진솔한 고민과 상처가 사회를 가르는 칼로 변질되면서, 문제의 본질은 가려지고 갈등만 증폭되었다. 하지만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도 새로운 망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과 혼란을 단순히 부정적 현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더 성숙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일 수 있다. 기존의 성역할과 젠더 규범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관계와 정체성을 실험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갈등과 대립의 프레임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의 프레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남성들의 경험도, 여성들의 요구도 모두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를 제로섬 게임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모두가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젠더 피로감과 새로운 실험들은 매우 희망적인 신호다. 젊은 세대가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더 유연하고 포용적인 사고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변화가 확산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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