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남성성, 그 역사적 기원과 전통적 가치

남성이 만들어낸 역사의 장면들과 그 이유들

by NAHDAN

제4장

남성성, 그 역사적 기원과 전통적 가치

- 남성이 만들어낸 역사의 장면들과 그 이유들



1. 남성성의 문화인류학적 뿌리


인류의 역사에서 남성성은 단순히 생물학적 성(sex)의 연장선이 아니라, 문화적 산물로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온 사회적 장치였다. 원시 공동체의 사냥꾼, 부족사회의 전사, 농경사회의 가장, 산업사회의 생계부양자—이 모든 정체성은 시대와 문명의 조건에 따라 남성성의 얼굴을 다르게 그려냈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공통된 기제가 존재했다. 바로 위협에 대응하는 자, 생존을 책임지는 자, 결정을 내리는 자로서의 사회적 남성 역할이다.


남성성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수컷의 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집단이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남성에게 부여해온 상징적 역할, 규범, 행위 양식의 총체다. 이 절에서는 ‘남성성(masculinity)’이라는 개념이 인류 초기 사회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문화적 논리 위에 자리 잡아 왔는지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특히 신화, 통과의례, 부족사회 조직, 초기 생산 구조 속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부각되었고, 어떤 기능을 담당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전통적 남성성’의 기원과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인류 초기의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성의 역할은 ‘사냥’과 ‘방어’로 규정되었다. 생물학적 성 차이에 기반한 기능적 분업—여성은 출산과 양육, 남성은 외부 활동과 위험 대응—은 협력적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 기능은 곧 상징화되었고, 의례화되었으며, 권력화되었다. 남성은 죽음을 무릅쓴 사냥을 통해 공동체의 생존을 책임지는 존재로 신화화되었고, 그 과정은 소년을 남성으로 이끄는 통과의례의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빅토르 터너(Victor Turner)가 말한 ‘림날 상태’—즉 기존 정체성의 해체와 새로운 역할의 부여—는 대부분 남성 청소년이 일정한 고통, 고독, 혈투를 통과함으로써 공동체 내 성인 남성으로 재탄생하는 방식이었다.


많은 문화에서 이러한 통과의례는 남성성의 코어를 구축하는 의례 정치의 한 형태였다. 아프리카의 마사이족, 뉴기니의 세피크족, 아마존 원주민의 공동체 등에서 남성은 피와 고통, 단절과 투쟁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 인정을 받았다. 남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는 늘 폭력, 경쟁, 수치심의 극복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었다. 이는 곧 남성성을 ‘내면화된 권위’로 전환시키는 상징 구조였으며, 남성 간 위계와 충성, 보호와 복수, 영토와 명예라는 코드가 이로부터 탄생했다.


또한 남성성은 집단 외부와의 경계 설정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여성이 공동체 내부의 재생산과 돌봄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면, 남성은 외부의 침입에 대응하고, 낯선 이들과의 교섭, 전쟁, 정복, 혹은 무역 등의 일을 담당했다. 이때 남성은 공동체의 ‘얼굴’이 되었고,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의 생존 여부는 그의 힘과 용기, 지혜에 달려 있었다. 이는 곧 정치적 리더십과 남성성의 결합으로 이어졌고, 초기 족장제와 원시 정치 구조는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남성의 언어는 공적 언어가 되었고, 여성의 언어는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영역에 머물렀다.


신화는 이러한 남성성을 문화적으로 정당화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고대 신화와 종교는 남성을 창조자, 정복자, 심판자, 수호자의 이미지로 그렸다. 수메르의 길가메시, 그리스의 제우스, 힌두의 인드라, 북유럽의 오딘, 중국의 황제신 등은 모두 전사적 남성성을 이상화한 신적 존재였다. 이들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고, 외부를 정복하며, 공동체를 이끌고 규범을 세우는 존재로 그려졌다. 반면 여성 신은 창조와 치유, 대지와 생명, 음성과 감정, 모성의 영역에 속하며 남성 신에 비해 권력 구조의 정점에 서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는 남성적 질서와 여성적 감수성의 이분화를 제도화한 문화적 장치였다.


농경 사회가 등장하면서 남성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생산 수단의 안정성과 소유 개념의 강화는 ‘토지를 지키는 자’,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자’로서의 남성의 위상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구조는 가족 중심의 사회 조직, 가부장제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남성은 단지 생존의 기능자가 아닌 윤리적 중심, 정치적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법과 종교, 관습 속에서 남성은 ‘지배’와 ‘보호’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설정되었으며, 이러한 기대는 이후 수천 년 동안 남성 개인에게 엄청난 사회적 역할과 심리적 부담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전통 사회에서 형성된 남성성은 언제나 균열과 저항을 동반해왔다. 전통적 남성성은 용기와 책임, 명예와 충성을 핵심 가치로 삼았지만, 그 내부에는 감정의 억압, 실패의 낙인, 연약함의 금기와 같은 부정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 남성은 눈물을 흘려선 안 되고, 두려움을 보여서도 안 되며, 돌봄과 의존을 표현하는 순간 ‘비남성적 존재’로 배제되었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보편 감각을 억제하고, 남성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고립시키며, 자기파괴적 남성성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장치로 작동했다.


결국 우리가 오늘날 문제 삼는 ‘전통적 남성성’은 단순한 억압적 시스템이 아니라, 생존과 위계, 윤리와 통제, 신화와 현실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화적 산물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장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 개개인을 도구화하고, 여성과의 관계를 지배적 구조로 규정지은 이념적 틀이다. 이 틀은 오늘날 무너지고 있으며, 그것의 붕괴는 단지 남성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과 공동체 윤리의 탐색을 요구하는 문명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분기점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뚜렷한 해부학적 구조에서 출발하지만,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능화하느냐에 따라 ‘성별 정체성’은 전혀 다른 사회적 구획으로 변모한다. 진화심리학과 생물인류학은 초기 인류의 생존 전략에서 남녀 역할의 분화가 특정한 생리적·심리적 특성에 기반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초기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성은 대체로 신체적 근력, 지구력, 공간지각력, 그리고 위험 회피가 아닌 위험 감수 전략에 상대적으로 특화되어 있었고, 이는 사냥과 외부 위협 대응이라는 역할로 귀결되었다.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에 기반한 생존 기여 전략을 중심으로 공동체 내부에서의 안전, 식물 채집, 아동 돌봄 등을 맡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생물학적 특성이 곧바로 사회적 규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언어를 통해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을 규정짓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종이다. 이때 ‘사회적 성(gender)’은 반복되는 역할 수행과 사회적 보상을 통해 내면화되며 제도화된다. 인간학자 마가렛 미드는 『세 가지 원시사회에서의 성과 기질』(1935)에서 이를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뉴기니 지역의 아라페쉬, 문두구머, 참불리 세 부족의 사례는 남녀의 역할 구분이 각기 다르게 설정되어 있으며, 남성이 온유하고 감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성역할은 고정된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반영이다.


더 나아가 현대 인류학은 모계 중심 사회의 존재와 기능도 조명한다. 예컨대 인도 북동부의 카시족(Khasi)이나 중국 윈난성의 모쒀족(Mosuo)은 여성 중심의 가계 구조와 혼인 체계를 갖고 있으며, 남성은 외가 중심의 경제 체계 속에서 역할을 보조하는 형태로 살아간다. 이들은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강하다는 인식에 기반하지 않고, 공동체의 유지와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적 구조를 설계해왔다. 이는 ‘남성다움’이란 문화의 산물이자 학습된 성향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tisese.jpg 모쒀족의 남녀관계는 결혼이라기보단 연애에 가까운데, 이를 주혼(走婚)이라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남성성’이란 개념은 진화론적으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서 유용했기 때문에 발달하고 제도화된 결과물이다. 사냥 중심 사회에서의 공격성과 경쟁심은 생존에 유리한 전략이었지만, 농경이나 정착 사회에서는 그만큼의 유용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는 이를 계승하여 문화적 이상으로 만들었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 남성성’이라는 규범으로 굳어졌다.


최근의 젠더 연구에서는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의 분리를 넘어서, 젠더 정체성(gender identity)과 젠더 표현(gender expression)의 다층적 구조를 강조한다. 이는 남성성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행(performance)과 선택(selection)을 통해 구성된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트랜스젠더 남성이나 논바이너리 남성들은 전통적 남성성이 강요하는 규범과 긴장하면서도 새로운 남성 정체성을 창조하고 있으며, 이는 남성성의 스펙트럼이 단일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남성성은 인간 사회가 진화의 과정 속에서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제도화한 사회적 구성물이다. 그것은 자연의 결과가 아니라 문화의 결정이며, 따라서 변화 가능성과 재구성 가능성을 항상 내포한다. 이 사실은 오늘날 남성성이 흔들리는 이유와, 그것이 파국이 아니라 진화의 새로운 국면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동시에 말해준다.




사냥과 전쟁, 초기 남성성의 권위 구조


남성성과 폭력, 남성성과 권위 사이의 연결은 인류 초기의 생존 전략에서 비롯된 기능적 역할 분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렵 채집 시대의 사회는 늘 이동 중이었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야 했다. 이때 '남성'은 더 빠르고 강하며, 신체적 위력을 통해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사냥과 전투, 방어와 응전은 단순한 생계 활동이 아니라 남성적 권위의 기초가 되었다.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구조』에서 여성 교환을 통한 남성 간 동맹의 형성을 분석하면서, 남성 간 경쟁이 아닌 협업이야말로 부족의 생존 전략이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협업은 철저히 남성 내부의 계층 질서와 동맹 규칙에 기초했다. 여성은 그 동맹의 매개물로 기능하며 교환되었고, 남성성은 그러한 교환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자의 위치를 통해 강화되었다. 즉, 사냥과 전쟁은 남성에게 단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상징 자본을 제공했다. 위험에 몸을 던진 자는 영웅이 되었고, 영웅은 곧 수장이 되었다.


고대 문명의 신화와 제사 문화에서도 이와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는 전사적 용기와 남성적 과시가 권력의 조건임을 보여주고, 그리스의 헤라클레스는 인간적 한계와 고통을 초월한 강인한 남성의 표상으로 부각된다. 아프리카 마사이 족은 오늘날까지도 사자 사냥을 통해 젊은 남성이 성인 남성으로 인정받는 의례를 수행하며, 이 또한 위험 감수를 남성성의 입문식으로 삼는 구조의 전형이다. 한국의 고구려 사회에서도 무용총 벽화 속 무사의 형상은 힘과 용기를 통한 리더십의 상징이었으며, 무인은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대표하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길가메시서사시.jpg 길가메시 서사시에서의 남성성은 영웅의 초인적인 힘과 친밀한 우정을 통해 형성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전쟁은 이러한 남성성을 제도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특정 집단 내에서 싸움을 잘하는 남성은 곧 보호자와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섰고, 집단 내의 명예와 자원의 분배는 그에 종속되었다. 몽골 제국의 경우 기마 전사 중심의 계급 구조는 남성 간 위계와 충성, 배신과 복수를 중첩적으로 동반한 남성 권력 체계를 정착시켰고, 로마제국 또한 군단 중심의 시민권 부여 제도를 통해 ‘국가를 위해 싸우는 남성’에게만 시민적 권리를 부여하는 구조를 취했다.


이처럼 초기 사회에서 남성성은 공동체 외부의 위협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을 어떻게 제압하는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그 결과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남성적 이상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는 후에 국가가 형성되며 법과 군사 체계로 전환될 때까지도 지속적으로 계승되었다. 근대 이전 대부분의 왕조국가에서는 장군 출신 왕이나 ‘전장에서 무공을 세운 자’가 지배 권력에 다가설 수 있었으며, 심지어 종교에서도 검을 든 예언자나 순교를 감수하는 사도적 남성이 신성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타자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과 폭력을 전제한다. 외부 집단의 위협이 사라졌을 때, 이 전투적 남성성은 내부에서 다시 위계질서를 만들기 위해 작동하기 시작했다. 남성 내에서의 권력 다툼, 경쟁, 복종의 강요, 여성과 어린이의 지배 등은 이와 같은 구조적 유산이 지속된 결과였다. 리차드 랭엄은 인간이 본능적 공격성을 억누르기 위해 ‘도덕’이라는 집단 장치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조직적 폭력’을 통해 지배를 유지해왔다는 이중 구조를 제시한다. 이는 남성성이 어떻게 ‘고귀한 힘’과 ‘억압의 수단’ 사이에서 모순적으로 기능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요컨대, 사냥과 전쟁은 단지 역사적 기능이 아니라, 남성성과 권력의 본질적 관계를 구성해온 핵심 축이었다. 그 속에서 남성성은 언제나 위협을 감수하고, 타인을 지배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로 묘사되었으며, 이것은 남성 내 위계질서—즉 ‘진짜 남자’와 ‘덜 남자’ 사이의 계층 구조—로 이어졌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남성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내면화된 위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농경과 정착, 남성 권위의 제도


인류가 수렵채집 중심의 유목 생활에서 벗어나 농경을 기반으로 한 정착사회로 이행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은 새로운 방식으로 분화되었고, 이로 인해 남성 권위는 보다 구조적이고 제도화된 방식으로 공고화되었다. 농경은 단순한 식량 획득 기술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의 정주성, 소유 개념, 혈통 개념을 형성하는 문명의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남성은 자원의 ‘생산자’이자 ‘소유자’로 위치하게 되면서, 그 권위는 가족 단위는 물론 공동체 전체에 걸쳐 제도적으로 강화되었다.


농경사회는 노동의 지속성과 반복성이 핵심인 체계이며, 이 지속성과 효율성을 유지하려면 노동력의 안정적 배치와 상속 체계가 필요했다. 초기 농경 문명들은 대부분 부계 중심 혈통과 장자 상속을 채택했고, 이는 남성에게 자원의 소유권과 가계 계승권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남성은 단지 물리적 힘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 법적·제도적 권한의 보유자로서 사회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라는 제도의 출현 이전부터, 가족과 씨족 단위에서 권력이 남성에게 편중되는 방향으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특히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권위가 명확하게 규범화되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사상은 남성이 도덕적 수양을 통해 가족을 다스리고, 국가와 천하를 질서 있게 관리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반면 여성은 ‘삼종지도(三從之道)’—아버지를 따르고, 남편을 따르며, 아들을 따른다는 도식—를 통해 언제나 타인의 권위에 종속되는 존재로 자리매김되었다. 이와 같은 젠더 규범은 단지 철학이나 윤리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 법제와 가정 운영, 교육의 기본 틀로까지 확장되었다.


중동과 지중해 지역의 고대 문명에서도 남성 권위의 제도화는 뚜렷했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가부장의 권위를 법적으로 보장하며, 가족 내부의 범죄에 대한 판단권을 남성 가장에게 위임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는 ‘가장(father)’이 종교적·경제적 결정권을 독점했으며, 이는 유대교의 율법 체계에도 명확히 반영되었다. 로마제국은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 : 아버지의 절대권) 제도를 통해 아버지가 자녀와 아내를 생사여탈할 수 있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했다.


Marriage-Roman-Law.jpg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는 가족의 수장인 파터 파밀리아스에게 그의 가정의 구성원들, 즉 후손, 배우자, 노예 및 재산에 대해 거의 무한한 권한을 부여하는 로마 법의 기본 제도였다.


이처럼 농경사회에서 남성은 ‘노동하는 자’에서 ‘소유하는 자’로, 그리고 ‘결정하는 자’로 전환되었고, 이는 생산 수단의 축적과 함께 권력의 재생산 구조로 정착되었다. 남성은 공동체 내부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이, 노인, 심지어 다른 남성에 대해서도 위계적 권위를 행사하는 제도적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권위는 단순히 개인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제도가 보장한 것이다. 즉, 남성성은 권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권력 자체를 성별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중요한 변화는 ‘이름’의 제도화였다. 많은 문화권에서 성(姓)과 이름은 아버지로부터 자녀에게 이어지며, 가문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기능했다. 이른바 ‘명예의 계보’는 남성 라인으로만 이어졌고, 여성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가문을 잃고 남성 가문에 편입되는 구조였다. 이는 남성성이 단지 현재의 권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유산의 소유자로서 기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제도화된 남성성은 역설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규범도 만들어냈다. 남성은 생산자, 보호자, 지도자로서 끊임없이 자신이 그 지위에 ‘걸맞은 존재’임을 증명해야 했고, 이는 곧 감정의 억제, 실패의 은폐, 피로의 침묵으로 이어졌다. ‘진짜 남자’는 강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상은 이 시기에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농경과 정착은 남성성을 생물학적 기능에서 벗어나 사회적 지위와 책임의 구조로 제도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로써 남성은 공동체 내에서 위계적 권위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았고,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성성의 이상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타자, 특히 여성과 비지배 계층 남성의 배제를 전제로 하며, 이후의 사회적 갈등과 젠더 불평등의 씨앗이 되었다.




신화와 종교, 남성성의 신성화


인류가 자연현상과 존재의 이유를 해명하려 했던 가장 오래된 문화적 장치는 신화였다. 신화는 자연의 섭리를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 사회의 규범을 정당화하고 정착시키는 상징 체계였다. 그런데 놀랍도록 많은 신화에서 남성은 창조자, 파괴자, 영웅, 통치자, 사제 등 질서를 부여하는 자로 등장한다. 반면 여성은 대지, 생명, 다산, 유혹 등 수용적이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위험한 이중적 존재로 그려진다. 이처럼 신화는 남성과 남성성이 갖는 기능을 단순한 역할 이상으로 ‘신성한 권위’로 승격시키는 장치였다.


수메르 문명의 영웅 길가메시는 전투와 모험을 통해 불멸을 추구하며 문명과 통치를 상징한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스는 12과업이라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며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는 이상적 남성의 표상이었다. 인도의 라마야나에서 라마는 부인의 순결을 지키고 악을 물리치는 왕이며, 북유럽의 오딘은 지혜와 전쟁의 신으로, 자신의 눈을 희생하면서까지 절대적 통찰을 얻는다. 이러한 신화들은 남성이란 곧 희생과 헌신, 폭력과 지배, 질서와 통제의 매개자라는 관념을 문화적으로 내면화시켰다.


동양에서도 비슷한 서사가 반복된다. 중국 고대 신화에서 남신 복희는 문자를 만들고, 치우천황은 전쟁의 신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다. 한국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에서도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곰 여인은 단지 ‘수동적’ 존재로 남아 단군을 출산함으로써 역할을 다한다. 이러한 구조는 남성적 위계와 통치의 정당성을 ‘하늘’ 혹은 ‘신’의 이름으로 부여받았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신화적 질서는 곧 종교적 교의와 제도로 이어졌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힌두교, 유교, 불교 등 세계 주요 종교들은 공통적으로 남성을 사제, 지도자, 교사, 군주로 위치시킨다. 기독교의 아브라함, 모세, 예수 모두 남성이며, 여성은 성모 마리아처럼 ‘순결하고 조용한 존재’로만 이상화된다. 이슬람은 남성에게 가족 통제권과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며, 유대교는 남성만이 율법 해석과 신성한 의식을 주관할 수 있다.


힌두교에서는 브라만 교단의 사제들이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며, 여성은 ‘샥티’로서 신성하되 위험한 이중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된다. 유교는 남녀유별과 부부유별을 강조하며, 여성의 ‘은근하고 참는 미덕’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불교조차도 초기에는 여성의 출가와 깨달음을 경계했고, 여성이 남성으로 환생해야만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승되었다. 이 모든 구조는 남성성이 단지 사회적 우위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와 연결된 절대적 위계임을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여성의 신성성의 퇴조라는 중요한 문화사적 전환이 있었다. 초기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여성 중심의 다산 신앙이 존재했다. 예컨대, 아나톨리아 지역의 대지 여신 키벨레나 구석기 시대 비너스 조각상은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적 권위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정착 이후 토지 소유와 군사 체계가 사회의 주축이 되자, 남성신들이 여성신을 대체하거나 병합하면서 여신은 점차 주변화되었다. 이는 곧 남성 권력의 신성화와 여성 권위의 세속화라는 상징적 구조 전환이었다.


이러한 신화와 종교의 구조는 단지 상징적인 의미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실제 제도와 삶의 방식에 깊숙이 침투했다. 예배당, 절, 모스크, 성전—이 모든 공간에서 남성은 앞줄에 위치하고, 여성은 경계 밖에 놓인다. 남성은 설교하고 법을 해석하며 지도자로 군림하는 반면, 여성은 조용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존재로 제한된다. 종교는 남성에게 ‘신의 대리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는 곧 정치적 지배와 도덕적 통제를 정당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결국, 신화와 종교는 남성성을 초월적 질서의 일부로 승인하면서, 사회의 모든 위계 구조를 남성 중심으로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남자다움’은 단순한 생존 기술이 아니라, 우주 질서와 일치하는 행위로 여겨졌고, 그에 따라 여성성과의 차이는 곧 신적 질서의 반영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상징적 구도는 오늘날까지 문화 콘텐츠, 정치적 수사, 교육 커리큘럼에 영향을 주며, 남성성이 자연스럽고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도록 만든다.




남성성은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가


남성성은 인류 문명의 진화 과정에서 단순한 성적 정체성을 넘어선 사회적·정치적 구성물로 자리를 잡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 시기의 생존 전략이나 역할 분화에 그치지 않고, 점차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인간상으로 표준화되었고, 나아가 ‘신화’로 포장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신화는 문자 그대로의 전설이 아니라, 사회가 반복적으로 내면화하고 재생산하는 지배적 상징 체계로서의 허구적 진실이다.


남성성이 신화가 된다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정체성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연적 본성’처럼 고정되어 전승되는 문화적 왜곡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이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 상징자본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점이다. 특히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상징폭력’ 이론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설명한다. 상징폭력이란 억압이 억압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은밀한 문화 권력이며, 남성성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위계’를 정당화해 왔다.


1200x675.jpg La Domination Masculine(France, 2009) 남성 지배의 사회 구조와 성별 권력 관계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다큐멘터리


예컨대 “남자는 책임져야 한다”, “남자는 울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언설은 단순한 윤리적 훈계가 아니라, 남성의 존재 자체를 사회 구조 안에 묶어두는 규범적 굴레이다. 이 규범은 남성을 강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감정과 고통, 실수를 ‘무능’으로 간주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많은 남성은 구조적 압박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했다. 이는 곧 남성성이 단지 권력의 특권이 아니라, 자기파괴적 기능도 내포한 신화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신화는 근대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포장되어 왔다. 산업화 시대의 근면한 가장, 전쟁기의 용맹한 병사, 냉전 시대의 이성적 관리자, 21세기 초반의 CEO형 리더에 이르기까지 남성은 늘 사회 변화에 맞춰 새로운 이상형으로 갱신되었다. 하지만 이 이상형은 언제나 타인을 배제하고 자신을 통제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사회적 남성성’이란 개념이 본질적으로 권력의 보전과 재생산을 위한 기능이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현대 미디어 역시 이러한 남성성의 신화를 강화하거나 희화화하는 방식을 통해 그것의 변형 또는 왜곡에 기여하고 있다. 영화, 광고, 드라마 속 ‘터프가이’, ‘무심한 천재’, ‘냉철한 CEO’ 등은 남성성을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로 축소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의 리더십은 남성의 몫이라는 인식을 유지시킨다. 특히 미디어가 ‘강인함’을 미화하고 ‘감정 표현’을 나약함으로 코딩하는 방식은 남성성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상징 질서 속에서 여성은 ‘지원자’, ‘격려자’, ‘희생자’의 위치로 고정되며, 남성은 '주체'이자 '행동자'로 자리매김된다. 심지어 남성성 자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조차 그 서사의 중심은 여전히 남성에게 돌아간다. “남자가 더 힘들다”, “남성성의 위기”라는 말은 때로 젠더 권력 구조를 재성찰하기보다는, 남성 주체의 재중심화를 위한 수사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남성성의 신화를 해체하고, 그 허구적 구성과 정치적 효과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남성성이 신화화되는 과정에서 배제된 감정, 무시된 약함, 억눌린 인간성—이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면, 남성 역시 이 신화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여성성과 소수자 정체성이 배제된 이 구조 속에서 남성성의 회복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남성성을 ‘신화’에서 ‘실존’으로 되돌려야 한다. 신화가 사회적 기능을 위해 만들어낸 이상을 절대화하는 것이라면, 실존은 개인이 겪는 모순과 혼란, 고통과 관계의 현실을 담아내는 진짜 인간의 삶이다. 남성성 역시 실존의 차원에서 다시 구성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약할 수 있는 남성, 돌보는 남성, 비폭력적인 남성, 공동체적 남성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남성성은 역사 속에서 위대한 신화로 포장되어 왔지만, 이제 그것은 신화로서가 아니라 서로 돌보고 연결되는 인간성의 일부로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 재구성은 남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한 해방의 서사가 될 때에야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다음 게재 예정>


2. 농경사회에서 근대산업사회까지 : 남성적 가치의 형성

3.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사회의 강화

4. 전쟁과 남성성 : 전사적 가치의 구축과 유지

5. 산업화와 근대 남성성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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