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MAN, REBIRTH OF MASCULINITY
나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남자로 살아왔다.
여전히 남자이며, 남자다움을 갈망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나만의 성별을 받아들이고 남자의 성질과 속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릴 적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친구들과 어깨를 부딪칠 때, 나는 당연히 ‘남자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던 여자아이의 연필을 장난 삼아 숨기며 놀렸을 때도, 그것이 단순한 유희를 넘어 남자애들의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군대에 가서는 강압적인 위계 질서 속에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고, 오히려 후임에게 큰소리를 치며 나의 두려움을 감췄다. 사회에 나와서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든든한 남자가 되려 애쓰며 “나는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가뒀다.
나는 결코 남자라는 이유로 부끄럽거나 박탈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자니까 강해야 하고, 잘 나야 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 안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종종 허세와 과장의 늪에 빠졌다. 회사에서 능력보다 먼저 큰소리를 치다가 감당하지 못해 무너진 적도 있었고, 연애 관계에서는 “남자는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솔직한 감정 표현조차 제대로 못했다. 사실은 두렵고 불안했는데, 남자라는 이유로 약함을 숨겨야 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남성성은 나를 지탱해 준 동시에 왜곡시켰다. 술자리에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농담 한마디에 자존심이 무너지고, 무리한 도전으로 건강을 해치고도 참아내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차라리 못한다고 말했더라면, 차라리 부족하다고 고백했더라면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사회는 달라졌다. 과거 남성들이 생존과 질서를 위해 감당해야 했던 폭력과 권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회의실에서는 계약과 합의가 우선하고, 가정에서는 돌봄과 공감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많은 남성들은 여전히 과거의 습관에 매여 있다. 사회 선배 한 사람은 “남자라면 야근쯤은 당연하다”며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한참 어린 후배 한 녀석은 소개팅 자리에서 “군대 다녀온 게 왜 점수도 안 되냐”며 분노를 쏟아낸다. 이 모습들은 모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남성성의 초상이다.
현대 페미니즘은 남성들에게 단순히 특권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를 넘어, 감정과 돌봄의 영역까지 함께 짊어지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남자는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저출산과 복지 체제 속에서 남성의 역할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나는 이런 흐름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남자의 정의는 무엇인가, 남성성의 가치는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성찰이자 고백이다. 나는 남자들이 과거의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별은 우열을 가를 수 없는 주어진 조건이며, 성은 평등하고 균형적으로 공존해야 한다고 믿는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소통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이며, 우리가 향해야 할 길이다.
남자다움이란 개념을 완전히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폭력이나 지배가 아니라, 스스로를 단련하고 공동체를 지탱하며 위기 앞에서 책임지는 힘이다. 나아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열려 있는 감각,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새롭게 배워나가는 용기가 곧 현대적 남자다움의 핵심일 것이다.
『남자의 종말, 남성성의 재탄생』은 그래서 종말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회복을 모색한다. 남자다움은 과거의 폐쇄적 위계가 아니라, 성숙과 성장, 열린 감각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늘 아래 모든 수컷과 암컷이 아름답듯, 인간 사회의 남성과 여성 역시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
나는 이제 늦게나마 고백한다.
“나는 부족하다. 그러나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며, 새로운 남자다움을 회복하고 싶다.”
실존적인 책임감과 열린 감성을 가지고 적정한 인정 범위에서
효능을 발휘하는, 나름의 목적을 가지며, 성실히 노력하는 한 남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