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듣기 - 가야금 산조
질박하고도 깊은 맛의 가락이 집 안 구석구석 사방팔방 휘젓고 다니며 공간의 품을 간지럽혔다.
세밀한 농현의 깊고 얕고 굵고 가는 형태에 귀 기울이다 보면, 서구적인 음악적 시각으로 ‘단선율’인 한국 전통음악이 결코 2차원 평면의 선율이 아님을 알게 된다. 국악을 서양식 음악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불가피한 경우가 더러 있지만 결코 참 뜻과 실체를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다시 한번 느낀다. 농현을 “embellishment”라고 한다거나 “microtones”으로 설명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지난 5년간 매년 여름,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배운 바는 이러하다. 한국의 전통적 수리체계와 우리의 언어, 그리고 그것이 집결되어 체계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는 한글에서, 어찌하여 우리 전통예술이 이러한 형태와 형식으로 발전되어 왔을까 하는 의문에 실체 있는 구체적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 음악 연구에서 역사적 접근은 오히려 주변 국가들과의 교류로 인한 영향 등을 더 강조하여 그 실체와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특히나 한 음 한 음에 공을 들이는 음악가에게는 음악 자체의 원리와 괴리가 있는 음악이론은 오히려 음악 수행에 방해가 될 정도이다.
한 시간 정도 되는 이 산조 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도 있는 하나의 호흡으로 완성되어, 마치 가야금으로 할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의 다 들어버린 듯한 포만감을 주었다. 오랜만에 조금 더 성숙해진 귀로 들은 산조는 새롭고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