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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Eunhye Jeong Sep 05. 2020

곡曲, 굽은 아름다움을 그리며

토기, 음악, 그리고 삶

곡즉전 


뜬금없이 고수레에 대해 찾아보다가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의 세상이 떠올랐다. 스크린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너무너무 추운 겨울에 학교에서 연통 난로를 피우던 시절도 지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겨울, 포차에서 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꼬치나 닭꼬치를 사 먹던 기억이 난다.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소 앞에서 반짝이는 ‘큐빅’ 핀과 길보드라 불렀던 정품 아닌 카세트테이프들을 팔던 가게도 생각난다.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은 확연히 달랐던 것 같다. 뭔가 댐으로 가두어둔 물이 수문이 확 열리면서 쏟아져, 그 흐름에 적응하기에 바빴던 것 같은 쉼 없는 삶이 그 후로 10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운 시절과 시간들은 내 생의 범위 너머에도 많다. 박물관에 가면 의외로 제일 마음을 끄는 것은 신석기시대의 토기다. 민무늬이든 빗살무늬이든 선사시대 토기를 보면 애잔하면서도 좋다. 희한하게 바닥이 편편하지 않고 계란처럼 동글 뾰족한 것이 강가의 모레에 푹 박아 세워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배워서인지, 토기를 보면 따뜻한 봄 햇살에 반짝거리는 모레와 함께 반짝거리는 강물이 떠오른다. 박물관의 고대 유물관에 이러한 토기 이외에 많이 등장하는 제기나 검 등을 보지만, 소박하기 그지없는 토기에게만 그저 애정이 간다. 누구를 제압하거나, “천지신명”과 통하며 우주 및 세상을 다스린다거나 하는 거창한 마음이 없이, 매일 먹는 한 끼를 책임지는 너무나 일상적인 물건이라 그런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산산조각이 나 후대에 이어 붙이니 다시 그 모양이 살아나고, 토기가 품은 그때 그 기억이 눈 앞에 드러난다. 청동검, 그리고 특히 철검은 당시에는 최첨단 무기였을 것이며, 힘의 상징이었을 테지만, 복원해놓아도 여전히 녹이 슨 모양이 보여주는 것은 그저 빛바랜 영광일 뿐이다. 그러나 토기는 그냥 부서진 모양이 금이나 은으로 이어 붙인것이 아니어도, 그저 이쁘다. 그리운 오랜 옛날, 그 시간들을 담아낸 공간을 다시 지금 이곳으로 불러왔다. 토기에 담긴 시간이 그리운 것은 그곳에 담긴 삶의 태도와 마음을 추구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자는 곡즉전이라는 말을 했다. 굽은 것이 온전하다는 뜻이다. 평평한 면이 굽으면 공간이 생긴다. 공간 즉 빈 곳 ‘허虛’가 생기면 그를 채우는 ‘실實’도 나타난다. 평면이 굽어져서 된 기하적 모양이 탄생시킨 공간 속의 또 다른 공간인 그릇. 그곳에는 다른 존재들이 담길 수 있다. 그런 매력이 있다. 자리를 비워둔 채로 어딘가에 앉아서 앞으로 담길 것들과 조우하길 기다리는 빈 그릇의 따뜻한 마음의 품이 좋다.  그릇에는 음식을 담아먹어  그릇이 유용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그에게 흘러들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된다.

평면이 굽어 곡면이 되며 만들어진 3차원의 공간이 그릇이라면, 한 점이 확장하여 소리에 공간을 만들어 활달하게 운동을 하는 것이 노래다. 곡曲자는 기본적인 의미인 ‘굽다’에서 파생된 ‘곡해’와 같은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 부정적인 의미로도 확장되어 쓰이지만 ‘악곡’이란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특히 보통 음악’ 곡’의 뼈대가 되는 선율旋律에서 ’ 선’ 자는 의외로 줄을 뜻하는 선線이 아니라 ‘돌다 선旋’이다. 도는 것은 굽어있다. 선율은 구비구비 도는 소리가 어떤 나름의 법칙으로 운율과 함께 율동하는 것이고, 그것이 한 악곡을 만든다.

한 음의 그 시작은 작게 모여 뭉쳐진 에너지 점으로 그 최초의 지점은 어떤 부딪힘의 지점이다. 씨앗이 그 정체성을 DNA에 꼬깃꼬깃 넣어둔 것처럼, 한 음이 하나의 부딪힘을 통하여 나오는 그 씨앗과 같은 시점에 이미 그 음의 거취가 즉 방향, 혹은 각角을 품고 나온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생장하는 과정이 발생한 한 음이 그 의미를 다하여 펼쳐내는 것과 같다. 그 식물이 다 자라 열매를 맺고 다음의 생의 사이클을 준비하는 수장이 그 음이 각을 내고 다음의 음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생장은 사방팔방으로 공간을 펼쳐내며 이루어진다. 음은 펼쳐져 공간을 만든 그 자리에 인간 내경內景의 운치 즉 감정을 담는다. 가수의 비브라토가 굵으면 더 애절하게 들린다. 비브라토가 적으면 맑고 단정한 느낌이 들지만 희로애락의 감정이 짙게 나타나지 못한다.

그릇과 음악, 이런 굽은 것들을 곁에 두고 그 아름다움을 보고 살피며 그와 닮은 인생을 음악을 통해 빚어나가는 것이 언제나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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