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어째서 최적의 태제(Thesis)였는가
총과 칼로만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때로 하나의 단어, 하나의 이념이다.
586세대의 투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이 선택한 가장 강력한 무기, 즉 '민주주의'라는 태제를 분석해야 한다.
그들의 투쟁이 눈물겹도록 순수한 신념의 발로였다는 낭만적인 신화를 잠시 접어두자.
순수함만으로는 혁명을 할 수 없다.
위대한 혁명가는 언제나 위대한 전략가였다.
냉철한 전략가의 관점에서 볼 때, 198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전장(戰場)에서 군부독재라는 거대한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민주주의'보다 더 완벽한 태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격과 방어, 아군의 결집과 적의 고립 모든 측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가장 치명적인 '이념적 살상무기'였다.
1980년대 초, 군부독재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학생 운동 엘리트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떤 깃발을 들고 싸워야 하는가? 그들의 서재에는 수많은 무기가 있었다. 마르크스의 묵직한 망치('계급 해방'), 라틴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해방신학의 뜨거운 불꽃('민중'),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날카로운 메스('헤게모니')까지.
그들은 왜 그 모든 강력한 무기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가장 보편적이고 때로는 부르주아적이라고 비판했던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대표 깃발로 선택했을까? 순수한 이상 때문이었을까? 천만에.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전장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냉철하고 현실적인 전략적 판단의 결과였다.
그들이 버린 선택지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얼마나 영리했는지 알 수 있다.
1980년대 초, 군부독재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학생 운동 엘리트들은 단순한 투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대중을 설득하고 동원해야 하는 '정치 선동가'이자, 동시에 내부 조직원의 사상적 통일을 이끌어야 하는 '이념 교육가'였다. 이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한 두 개의 다른 언어, 즉 '이중 언어 전략' 을 구사했다.
그들 내부의 학습 소모임(세미나), 지하 유인물, 사상 토론의 장에서 사용된 언어는 날것 그대로의 혁명 언어였다. '민중'은 그들의 신이었고, '계급'은 세상을 보는 렌즈였으며, '변혁'과 '해방'은 최종 목표였다.
이 언어는 소수 핵심 조직원들의 사상적 순수성을 담금질하고, '우리는 선택받은 전위대'라는 엘리트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주체이며, 우매한 대중을 일깨워 혁명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부여했다.
철저히 내부 조직원, 동조 그룹, 예비 활동가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된 이 언어는 외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암호'이자, 동지를 식별하는 '피아식별띠'였다.
하지만 이 날카로운 혁명의 언어를 들고 광장으로, 시장으로, 공장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계급'을 외치는 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대중과 언론, 그리고 국제 사회를 향해서는 전혀 다른 언어를 선택했다.
민주주의
이 언어는 내부의 급진적 목표를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인 가치로 포장하여, 사회적 저항을 최소화하고 지지 기반을 최대로 넓히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시민, 중산층, 언론, 종교계, 심지어는 온건 야당까지, 그들이 '연대'해야 할 모든 외부 세력을 향해 사용되었다.
계급과 노동해방을 버린 이유
운동의 핵심 이념이었음에도, '계급'이나 '공산/사회주의'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라는 치명적인 낙인과 동의어였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국시(國是)였던 사회에서 이 깃발을 드는 순간, 그들은 국민적 지지를 얻기는커녕 고립된 소수로 전락하여 손쉽게 진압될 '적'으로 규정될 뿐이었다. 그것은 명예로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민족, 혹은 반미를 버린 이유
'광주'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인식은 운동권 내부의 강력한 동력이었지만, '반미'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 역시 위험했다. 당시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는 6.25 전쟁을 겪으며 미국을 '혈맹'이자 '구원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반미'는 세대 간의 분열을 초래하고, 정권에게 "북한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라 공격할 완벽한 명분을 주는 행위였다.
민중을 버린 이유
민중'은 그들이 섬기는 신이었지만,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했다.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구호는 가슴을 뛰게 하지만, 당장 먹고살기 바쁜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되지 못했다. 중산층을 설득하고,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어내기에는 너무나 내부 지향적인 구호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최적의 대의명분(Exoteric Language)으로 선택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들의 내부 언어인 '민중 해방'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넓은 다리였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학생들을 보며, 시장의 상인은 '자유로운 장사'를, 회사원은 '안정된 사회'를, 야당 정치인은 '공정한 선거'를 떠올렸다. 그 누구도 그 구호 뒤에 숨겨진 '미 제국주의 타도'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상상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586 운동권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엄청 써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내부강령'이었다. 그들이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그 내부강령을 대중 앞에서 숨기고 '민주주의'라는 완벽한 '대의명분'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동원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념에만 충실한 순진한 혁명가가 아니라, 상황과 대상에 따라 언어를 바꾸어 사용하는 능숙한 이중 언어 구사자(Bilingual)이자,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위장할 줄 아는 냉철한 전략가였던 것이다. 이 '이중 언어 전략'의 성공이야말로 586 신화의 핵심적인 비밀이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선(善)'이다. 20세기 후반, 공산주의와 대치하며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 국가 정체성을 설정했던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였다. 586세대가 이 태제를 자신들의 깃발로 선택하는 순간, 투쟁의 구도는 복잡한 정치 공학에서 단순하고 강력한 '선과 악의 성전'으로 재편되었다.
투쟁은 더 이상 복잡한 정치적 노선 다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원하는 우리"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저들"이라는, 누구든 이해하기 쉬운 선악의 이분법이 완성된다. . 이 프레임 안에서 정권의 모든 탄압은 '체제 안정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자 '악의 발호'로 규정된다.
정권이 학생들을 탄압할 때마다, 그것은 '체제 안정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된다. '민주주의'라는 방패는 그들의 모든 저항 행위에 신성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다. 화염병을 던져도, 쇠파이프를 휘둘러도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저항'이 되었다. 그들은 단순한 시위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성전사(聖戰士)'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희생은 '순교'로 기록되었다.
혁명을 꿈꾸는 급진적 학생, 체제의 안정적 변화를 원하는 중산층, 생존권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 이들은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집단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의 단어가 바로 '민주주의'였다.
이것이야말로 586 핵심 엘리트들의 가장 탁월한 이중 전략이었다. 내부적으로는 '계급 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그들만의 언어(Esoteric Language)로 소수 정예를 무장시켰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대중을 향해서는 '민주주의'라는, 모두가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Exoteric Language)를 사용했다.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쳤다면, 반공 이데올로기가 굳건했던 당시 사회에서 중산층과 대다수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 등을 돌렸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들의 급진적인 진짜 목표를 감추고, 가장 광범위한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완벽한 위장이자 가장 효과적인 대중 동원 슬로건이었다.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그릇 안에서, 그들은 사회의 모든 불만 세력을 흡수하며 자신들의 투쟁을 '국민적 저항'으로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민주주의'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누군가에게는 '노동 해방'으로, 누군가에게는 '자유로운 선거'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언론의 자유'로 읽혔다.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모든 집단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공배수, 그것이 바로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였다. 이 거대한 그릇 안에서, 586 엘리트들은 다양한 사회 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자신들의 투쟁을 '국민적 저항'으로 격상시킬 수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태제는 아군을 결집시킬 뿐만 아니라, 적을 규정하고 고립시키는 데에도 탁월했다. 그들의 적은 더 이상 박정희나 전두환이라는 개인이 아니었다. 그들의 적은 '반민주 세력'이라는 거대한 악의 집단이었다.
'반민주 세력'은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이는 투쟁을 더욱 선명하고 비장하게 만들었으며, 어떠한 급진적인 저항 방식도 정당화하는 논리적 기반이 되었다.
이 프레임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투쟁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내부의 온건파나 회의론자들을 '민주주의의 배신자'로 규정하고 축출하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198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던 시기였다. 미국의 압력과 서구 사회의 지지는 군부독재 정권에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1980년대는 필리핀, 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던 시기였다. 올림픽을 유치하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던 전두환 정권에게 미국의 압력과 서구 사회의 시선은 가장 큰 부담이었다.
586세대는 이 국제 정세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자신들의 투쟁을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동참하는 것'으로 위치시킨 것이다.
이는 국제 사회의 암묵적 지지를 얻어내고, 정권이 함부로 계엄령과 같은 극단적인 탄압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압박 카드가 되었다.
586세대는 자신들의 투쟁을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동참하는 것'으로 위치시켰다.
이는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어내고, 정권이 함부로 극단적인 탄압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압박 카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586세대는 '민주주의'라는, 그 시대에 존재했던 가장 강력하고 정교한 이념적 무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활용했다. 그들의 승리는 순수한 열정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최적의 태제를 선정하고 그것을 통해 도덕적, 정치적, 국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탁월한 전략의 승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권력을 쟁취했다.
투쟁의 시기, '민주주의'는 가장 효과적인 태제(Thesis)였다. 그러나 승리 이후, 그것은 그들의 모든 과오와 부패를 덮어주는 완벽한 알리바이(Alibi) 가 되었다. 부동산 투기, 입시 비리, 권력형 성범죄.
그 어떤 비판에 직면해도 그들은 "내가 과거 민주주의를 위해 어떻게 싸웠는데..."라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모두의 이상이 아니라, 그들만의 특권을 방어하는 견고한 성벽이 되었다.
한때 군부독재라는 적을 향해 날아갔던 만능의 창은, 이제 권력의 단맛에 취한 그들 자신을 지키는 철옹성의 방패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방패 뒤에서, '민주'의 탈을 쓴 새로운 독재가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