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막내로 지낸다는 것은 하루일과 중에 내 시간은 거의 없다 보면 된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순탄하게 넘어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우리들에겐 아침 기상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속도싸움과 눈치싸움 시작이다.
일어나자마자 모포를 개고 양말 신고 선임들을 낮은 기수부터 차례로 깨운다.
그리고 환복을 하고 아침점호하러 연병장으로 나가 기준번호를 제일 먼저 잡아야 한다.
혹시나 다른 선임이 먼저 도착해 있다면 일단 밥 먹기 전에 욕부터 먹고 시작이다.
아침점호에는 항상 국군도수체조라는 것을 하는데 막내라인들이 제일 앞줄에 서고
선임일수록 뒤에 선다.
만약 조금이라도 틀리거나 멈칫하는 게 보이면 그것 또한 혼나는 이유 중 하나다.
비몽사몽 한 아침점호를 산뜻? 하게 보내고
밥을 먹으러 간다.
우리들에겐 밥 먹는 시간조차도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조심해야 한다.
만약 밥을 푸려고 하는데 밥이 없으면 너나 할거 없이 뛰어가서 새 밥통을 들고 와야 한다.
그리고 만약 나보다 선임이 먼저 들었으면 “제가 들어도 되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같이 뛰어와야 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처음으로 중대인원들과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여러 반찬 중에 깍두기가 나왔는데 그닥 땡기지 않아서 그거 빼고 다 펐다.
근데 그걸 본 선임들이 내 맞선임을 혼내고 난 맞선임에게 불려 가서 깍두기를 퍼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그때 처음 알았다.
먹지 않더라도 반찬은 무조건 다 퍼야 하고 반찬은 남기되 밥과 우유는 무조건 다 먹어야 한다는 게 규칙이었다.
사실 아직 군대보다 사회의 물이 더 많이 베여 있는 나에겐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지만
군대에서 이해를 바란다는 게 어쩌면 출발점이 잘못된 걸 수도 있다.
그냥 주는 대로 오는 대로 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군대에 오게 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청소의 달인이 되게 된다.
열악한 장비로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하는 곳은 군대밖에 없을 것이다.
냄새가 난다면 다우니와 물을 섞어 향을 나게 하고 얼룩이 있다면 무한 빡빡이질을 하면 된다.
저녁점호청소 때 내가 처음 맡은 구역은 화장실이었는데 그땐 그냥 더러운 것도 모르고 그냥 했다.
머릿속에는 빨리 끝내고 선임을 도와주러 가야 하고 최대한 실수하지 않고 혼나지 말자 이런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건 아마 막내를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저녁점호 때는 환자체크, 다음 날 과업 등에 관한 내용들을 알려주는데 우리들은 모든 내용을 또 상세히
기록을 해서 근무 중인 선임이나 못 들은 선임한테 달려가서 즉각 보고를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어느새 내 후임이 들어올 날이 찾아온다.
군대 오기 전 만화를 보면 후임이 온다 하면 다들 좋아하던데
난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과연 지금 상태에서 후임을 잘 이끌고 갈 수 있을지 잘 따라올지 등 이런 고민이었다.
내가 있는 소대는 중대본부/60mm였는데 생활반 후임은 후반기 때문에 늦게 오고
중대본부 쪽으로 먼저 후임이 온 것이다.
생활반 직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대 후임이니 열심히 가르치고 알려주려고 노력을 했다.
전통처럼 px에서 과자나 생활용품 등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훈단 냄새가 가득 베인 빨래들을 돌리고
체조도 다시 알려주는 등.
그래도 소대후임은 좀 덜 바쁠 때 와서 그나마 여유롭게 챙겨줄 수 있었지만
내 생활반 맞후임은 하필 포사격 준비 중일 때 와서 나도 정신없고 맞후임도 정신없었을 거다.
위로는 선임들 눈치 보면서 작업하고 또 동시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을 챙겨야 했으니 확실히 쉽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혼난 이유가 순전히 내 실수였다면 이제는 플러스 후임들의 실수까지 같이 혼나야 했다.
내 후임인데 교육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였다.
내가 막상 이 상황이 되니 나를 그렇게 혼내던 맞선임이 이해가 되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도 됐다.
그래도 다행히 맞후임이 눈치도 빠르고 금방 잘 따라온 덕분에 수월하게 초반을 보냈다.
우리가 처음 자대를 가서 생활반에 들어가면
구석 침대에서 민간인처럼 누워있거나 백수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이제 군대 물이 다 빠진 전역대기자들인데
당연히 기수 차이도 엄청 난다.
그래서 아마 저 아래에 있는 우리들은 신경도 안 쓰는 경우도 많다.
근데 내가 이 사람들에게 군대에서만 느끼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새벽 상황실 근무를 서고 있을 때 잠이 안 왔는지 생활반 선임이 한 명 와서
내 옆에 앉아 여러 가지 얘기를 해줬는데 그동안 자기가 군생활 하면서 느낀
실용적인 팁들 같은 것들을 얘기해 주고 형처럼 대해줬다.
그땐 나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였고 몰아치는 상황에 적응 중이라
나도 모르게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닿을 거 같지도 않은 선임이 격 없이 얘기해 주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어린 시절 좋아하는 형이랑 있는 기분이었다.
해병대에는 싸인지라는 문화가 있다.
전역자들은 전역사진 후임들은 사회시절 사진을 인쇄해서
그 뒷면에 이름과 기수를 쓰고 편지를 써서 서로 주는 것이다.
이 문화만큼은 제발 오래갔으면 하는 것 중 하나다.
보통은 밑으로 10기수나 많으면 12기수까지 쓰는데
13 기수나 차이 나는 나한테까지 싸인지를 써준 것이다.
그것도 빼곡하게 써서
솔직히 같이 훈련을 한 적도 없고 함께한 추억이 많지 않아서 쓸게 없을 줄 알았는데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적어준 거에 감동이었고 싸인지와 별도로 필통에 그동안
본인들이 쓰던 필기구를 가득 채워서 내가 없는 사이 관물함에 놔두고 구형 전투복도 새로 세탁해서
고무링과 함께 내 침상 위에 놔두고 갔다.
그때 많이 놀랐고 나에겐 그렇게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이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많이 받는지 놀랐다.
세상 온순한 사람도 군대에 오면 후임 혼내는 거 하나는 기깔나게 하는 능력자가 되고
내향적이고 소심한 사람인데 생활반 한가운데서 아이돌 노래를 틀고 춤을 추고
왜 사람이 좋은 환경에 지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알았다.
물론 위에 같은 경우들은 다 살아남기 위해 저렇게 변한 것뿐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는 생명들처럼.
처음엔 그저 단순무식하게 돌아가고 사람을 대하는 집단인가 생각을 했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원해서 하는 행동들이 아닌 것도 많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그리고 투박하더라도 서로에게 정이 많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먼저 달려오는 사람들이었고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군생활 하면서 일병시절에 제일 무서워했던 선임이 있었는데
같은 생활반이었고 절묘하게 실수를 할 때만 그 선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솔직히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소대전술 훈련을 한다고 외박훈련을 나간다는 공지가 내려와서
우리는 2인 1조로 텐트를 쓸 사람을 정해야 했다.
운명인지 운이 없는 건지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나와 그 무서운 선임이었다.
솔직히 그때 심정은 가슴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첫날에는 그냥 무장 메고 행군하면서 모의훈련하는 거뿐이라 선임들도 크게 뭐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고 나서 텐트를 여러 개 칠 수 있는 산속 어딘가로 다시 행군을 했다.
밥은 전투식량과 각자 챙겨 온 맛다시, 다른 부식거리를 곁들어서 먹는데
더운 날 고생을 해서 그런지 그때 밥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밥 다 먹고 자기 전에 다 같이 모여서 손전등 몇 개에 기대 담소를 나누는데
그때만큼은 다른 선임들도 편하게 웃으면서 장난도 치고 우리도 웃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그러다 입이 심심해지면 각자 챙겨 온 젤리나 과자도 나눠먹고 정말로 궁금했던 얘기도 나누고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때를 회상하는데 가끔은 정말 그 시절이 그립다.
자 이제 잘 시간이 다가왔다.
좁은 텐트 안, 나와 그 선임 둘이서 누워있다.
내 머릿속에 온통 같은 생각이었다
“제발 그냥 자자”
그러다 그 생각 사이로 내 이름이 들렸다.
“채윤아 자냐?”
맘 같아선 그냥 자고 싶었지만 본능적으로 관등성명과 함께 대답했다.
“일병 고채윤 아직 안 잡니다”
난 혹시나 또 오늘 훈련하면서 나도 모르는 내 실수를 보고 혼내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근데 예상과는 다르게 궁금하게 없냐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다정한 말투로 말을 하지 뭔가?
솔직히 궁금한 건 없었다.
그래도 지금이 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서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질문폭탄을 던졌다.
그러자 “채윤이가 궁금한 게 많았구나”
하며 모든 대답을 정성으로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새벽까지 얘기를 했고 그 뒤에 다시 훈련에서 복귀했을 때는
여전히 무서운 선임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거리감이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몸으로 느껴졌다.
이런 순간들이 마냥 무섭고 말이 통하지 않을 거 같은 선임들에 대한 인식을 서서히 바꿔갔다.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