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조용한 날이 없었고 여전히 긴장감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대대가 곧 전방 쪽 대대와 교대를 하기 때문에 이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난 일병이었기에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몰랐다.
그 시절엔 힘든 일이어도 시키면 그냥 했던 시절이니깐.
솔직히 내 초반 6개월의 군생활의 절반은 아마도 청소하는 모습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사준비 한다고 청소를 빡세게 한번 하고 우리 이삿짐들을 다 실은 다음 새로 들어올 부대를 위해 다시 청소를 했다.
이때만큼은 그 어떤 청소업체만큼의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전방으로 새로 이사를 간 건물은 소초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건물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예전에 지내던 건물의 축소판이랄까.
초반엔 열악해 보이는 시설과 원래도 시골이었지만 더 시골로 들어온 거 같은 느낌이었기에
여기서 어떻게 전역까지 지내지? 이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 소초에 들어와서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꽤나 충격을 받았다.
심각하게 더럽고 청소가 안 돼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부대를 위해 그놈의 대청소를 일주일도 안 되는 간격으로 두 번이나 했는데
떠나간 부대는 모든 쓰레기와 낡아서 못쓰는 것들을 그냥 짬처리 하듯이 다 남겨두고 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시 4~5일 동안 대청소와 가구이동이 이어졌다.
내가 군대에 온 건지 정말 그때는 헷갈렸다.
전방으로 오고 나서 달라진 점이라 하면
일단 수면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24시간 근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새벽에 자기도 하고 아침에 자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순에 따라 작전구역을 정찰하는 것도 매일 해야 했다.
솔직히 추운 겨울날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무장한 채로 걷다오는게 여간 피곤한 게 아니지만
복귀 후 라면이나 미역국,소세지구이,흰밥 조합으로 먹으면 온몸에 얼어있던 게 다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나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침대에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인생에서 최고였다.
아무래도 24시간 근무가 돌아가고 바로 잠을 자지 않으면 근무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각자의 근무표대로 움직이기 바빴다.
그렇기에 선후임간에 터치가 예전에 비하면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땐 워낙 자주 혼나던 시기였던 터라 선임들이 조용히 넘어가면 그것만큼 좋은 날은 또 없었다.
(하지만 훗날 내가 선임이 되었을 땐 내 선임들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이렇게 근무, 정찰, 근무, 정찰 이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눈 녹듯이 사르륵 가버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내 첫 휴가 날짜가 다가왔고!
7개월 만의 첫 휴가였다.
그 사이에 사회가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겠지만
달라진 내 신분과 마음가짐이 사회를 달라 보이게 만들었다.
역시나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안전한 보금자리였고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공간이었다.
휴가기간 동안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렇듯 가족들과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친구도 만나면서 놀다 보니 어느새 난 다음 날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복귀하자마자 상병진급이 기다리고 있었고
휴가로 다시 에너지를 재충전을 했기에 군생활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복귀라는 것 자체는 그닥 행복하진 않았다.
복귀를 하고 며칠 있다가
내 상병 진급식이 있었다.
보통 진급식이라 하면 중대장님이나 간부님들이 계급장을 바꿔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겠지만
우린 부대 여건상 그게 불가능해서 병들끼리 진행을 했다.
하지만 그래서 내 기억에 남았고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다.
상병이 되는 날 00시까지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면 다른 소대 선임들과 후임들이 빈 식당에 와서 모인다.
그리고 우리 소대 선임들이 사회와 계급장을 바꿔주는 역할을 맡아주고 나머지 선임들과 후임들은 옆자리 다들 서서
축하해 준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일병으로 불려 왔기 때문에 실수하지 말라고 계속 내 이름을 불러서 상병이 입에 붙도록 해준다.
군대에서 간부들이 병문화가 너무 퍼지지 않게 방지하고 예방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이 정도의 문화는
오히려 병들 간의 관계와 협력성을 더 돈독하게 만들어준다 생각한다.
상병이 되고나서부터는 확실히 기분도 달랐고 선임들도 어느 정도의 상병인걸 감안해 주는 듯한 태도였다.
확실히 시간도 전보다 더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내 밑에도 꽤나 많은 후임이 생겼다.
그 뜻은 내가 직접적인 작업을 하는 것보다는 관리를 더 많이 하고
또 그만큼 후임들 관리와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한창 실수가 많은 일병들이라서 나도 선임들한테 많이 불려 갔다.
그래도 이젠 선임들이 혼을 내도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저녁에 선선한 타임이나
점심시간에 음료수 한잔하면서 고민얘기도 나누고 하면 모든 마음이 다 풀렸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나이가 동갑이거나 1~3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 계급이라는 것 하나로 사람이 책임감이 생기고 갑자기 어른스러워진다는 점이다
다들 처음 입대할 때는 나보다 동생이 선임이면 어떡하나 이 생각을 많이 하겠지만
막상 입대하고 그런 텐션 있는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결국 나이는 있게 되고 계급만 보이게 된다.
괜히 계급이 깡패라는 말이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래도 군대에서 철이 들어서 나온다는 게 단순히 집과 부모님을 떠나서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밑에 챙겨야 할 애들이 많아질수록 정말 가족 같은 느낌으로 살피게 되고 혼나더라도 다른 소대 애들한테
혼나는 걸 보면 못 참으니 말이다.
내가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새로 전입온 소대장 형 두 명이 있었다.
아마 소대장형들도 처음으로 실무에 투입된 거니 긴장이 됐을 것이다.
입대 전에 듣기론 갓 들어온 하사나 소위들이 기선제압한다고 상병들이나 병장들에게 압박을 넣는다던데
우리 부대에 온 소대장들은 그런 거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직 실제 부대운영에 관해서 너희들이 더 많이 알고 있을 테니 잘 알려달라고 말을 하고
부대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축구도 함께하고 맛있는 것도 자주 사주며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져나갔다.
결국엔 시간이 지나니 소대장들을 싫어하는 부대원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일도 잘했기 때문에 상급간부들도 좋아했다.
또 마냥 이렇게 부드럽게만 대원들을 대했다면 무조건 기어오르는 놈이 한 명쯤은 있겠지만
그걸 알고 있었는지 과업이나 훈련, 정말 해야 할 때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엄격하게 했기 때문에 그러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소대장이 뭐라 하기 전에 주변에 병들이 먼저 나대지 말라고 눈치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나도 처음에 어리숙하고 잘 모르던 시절에서 벗어나 점점 익숙해지고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위치로 가고 있었고
군대 속에 있다 보니 어느새 나도 나이를 계급으로 생각하게 되고 소대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말이나 누군가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이 어떤 파장을 줄지에 대한 경우에 수까지 다 예상을 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들이 갓 20살인 나에게는 어른이 되어가는 작은 발판이 되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