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라디오 작가계의 '구심점'이었던

by 문리버

한때 방송국 친한 작가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 중에 하나로 ‘구심점’이 있었다.


구심점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가 잘나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아니고

당시, 내 연차나 경력이

위, 아래 선후배들을 놓고 봤을 때 딱 중간 위치이기도 했고

동료 작가들이 여러 방송사에서 일을 하면서

서로서로 알게 된 인맥들이 나를 중심으로 겹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교집합이 형성되면서 이런 호칭이 생긴 것.


라디오가 호시절이었던 90년대 중, 후반부터 2000년대 초, 중반까지

우리는 (친한 작가 무리, 피디, 매니저, 어쩌다 연예인)

홍대 산울림 소극장 앞 ‘기찻길’부터 ‘롤링 홀’이 있는 상수역 쪽 까지

홍대 온 동네를 오르락내리락 이리저리 쏘다니며 부어라 마셔라 했다.

(구심점인 내가 주로 멤버를 소집하고, 식당을 예약한 듯하다.)


피디 때문에 열받은 날이나

예민하고 까칠한, 혹은 변덕스러운 디제이 때문에 열받은 날..

혹은, 봄과 가을 개편 시즌이 되면, ‘내 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에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모였다.


방송 후에 눈빛교환을 한 두 어명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차례로 각자의 방송을 끝내고 홍대로 넘어오기도 했고,

어느 날은 모두 스케줄을 맞춰서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기도 했다.


오후 네, 다섯 시에 만나서 다음날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네버 엔딩 스토리’

1차부터 3차, 4차까지 차례로 가는 단골집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모든 방송사가 여의도에 있던 시절에는

노상에 있던 주황색 포장마차가 만남의 광장이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당시, 20대부터 40대까지 골고루 있었던 우리들은

어느덧 40대부터 60대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삶의 모습들이 저마다 달라지다 보니

더 이상 그때와 같은 만남은 없다. 아니, 없어진 지 오래다.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 멤버들 중에서 두 명이상 늘어나면 약속 잡기가 쉽지 않다.

겨우 한 명 만나는 것도 날짜를 맞추고 맞춰야 한다.


각자 처한 상황도 상황이지만..

어쩌면 그만큼의 에너지, 애정, 의지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부터가. (내 한 몸 건사하며 사는 것도 버거우니까..)


그래도, 만나지 못하는 시간 사이.. ‘다들 잘 살고 있나?’ 하는 마음에

이따금씩 전화번호 목록과 카톡 프로필을 살펴보곤 한다.


전화번호 목록에는 2495명, 카톡 친구에는 2154명이 있다고 나온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그리운 이름과 얼굴들 사이에

누군지 기억 안 나는 이름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날 잡아서 정리해야겠다.)


우리가 쉽게 만나지 못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뜨거운 만남은 더 이상 없더라도,

어디서든.. 우리 서로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상투적이지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해본다.


후훗, 옛 생각이 나는 걸 보니.. 계절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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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 줄 : 오늘의 단어 = ふらっと (느닷없이, 훌쩍, 불쑥)

어느 날 느닷없이, 불쑥, 만나러 갑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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