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함.
낮의 나는 먼저 웃음을 꺼냈다.
“야, 우리 집 아침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니까?
또 한 편 찍고 왔지.”
학교에서, 카페 테이블에서, 기숙사 자습실에서.
사람들이 “진짜?” 하고 묻는 순간,
나는 일부러 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울고, 서로 말을 덮어씌우고,
결국 아무 말도 남지 않는 장면들.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가는 나.
마치 과제 요약을 발표하듯,
하이라이트를 빠르게 편집하듯,
손짓과 웃음을 보태면 공기는 금세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피식 웃었고,
그 웃음은 내게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그 선을 넘는 질문은 보통 나오지 않는다.
그게 좋았다. 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다만 방패처럼 들고 있는 그 웃음은 안쪽이 늘 젖어 있었다.
겉은 번들거리는데, 손바닥은 땀으로 미끄럽고,
웃음이 한 번 나오면 다음 웃음이 자동으로 연결되는 식.
습관이 표정을 만들고, 표정이 얼굴을 만들었다.
낮의 얼굴은 낮에 유용했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대체로 비슷했다.
지하철에서 나오는 목소리,
스마트폰에 남은 과제 알림,
통학로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길을 접었다 펼치는 동안
입술에 남아 있던 웃음은 조금씩 갈라졌다.
균열 사이로 나온 찬 김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앉고,
바람은 옷깃 사이로 그 냉기를 밀어 넣었다.
계단 층수가 하나씩 바뀔 때,
심장은 낯선 공백을 건너뛰듯 리듬을 놓쳤다.
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마지막 숫자 앞에서 늘 잠깐 멈췄다.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먼저 와서.
문이 닫히면 소리의 배열이 바뀐다.
냉장고 모터가 ‘웅’ 하고 올라갔다 내려오고,
노트북 팬이 간헐적으로 바람을 밀어내고,
전자레인지의 00:00이 눈을 먼저 찌른다.
마른빨래에서만 나는 희고 무미한 향,
닫힌 창문 틈에서 스며 나오는 묵은 먼지 냄새,
컵라면 스프 봉지에 남은 짠내가 얇게 겹친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방이 내 쪽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무릎까지 물이 찬 것처럼, 무게가 올라앉았다.
숨을 들이쉬면 공기가 아니라 묵직한 액체가 들어왔다.
폐 안쪽 벽이 안에서 살짝 누르는 느낌.
나는 잠깐, 이 몸이 내 것 맞나 의심했다.
고요는 침묵이 아니었다.
책상 위 프린트물은 서로를 긁는 소리를 냈다.
한밤중 냉장고 모터가 다시 켜지면
내 숨소리도 크게 들려서,
나는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웠다.
천천히, 얕게, 숫자를 세며.
그러다 숫자를 잊으면, 다시 처음부터.
나는 냄새에도 민감했다.
눅눅한 이불에 배어 있는 세제 향,
중성세제 특유의 평평한 냄새,
입안에서 오래 머무는 분필 같은 싸한 맛.
물을 마시려 컵을 들었다가 내부를 오래 바라봤다.
오늘은 유난히 컵이 커 보였다.
내가 작아진 건지, 컵이 커진 건지,
그 판단부터 피곤해졌다.
책상 위에는 종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조별과제 피드백, 수업 공지, 반쯤 쓴 레포트의 첫 문단.
모서리가 눅눅해 조금만 만져도 찢어졌다.
붙이려다 더 찢어지는 일이 잦았다.
버릴 수도, 온전히 이어붙일 수도 없는 파편들.
나는 그 앞에서 상체를 숙이고 오래 앉아 있었다.
전등 하나를 켜면 방의 구석이 오히려 더 어둡게 보이는 것처럼,
한 문장을 붙잡을수록 붙잡지 못한 것들이 진해졌다.
사람들은 가끔 말했다.
“밝다, 웃음이 많다, 분위기 살린다.”
맞다. 낮의 나는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밤이 되면 그 역할이 벗겨진다.
분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분을 지우는 배우처럼,
손등으로 파우더를 훑으면 손등이 하얗게 변하고
거울 속 얼굴은 잠깐 낯설어진다.
내가 쓰던 가면은 웃을 때 가장 정확히 맞았다.
문제는 웃지 않을 때였다.
가면 안쪽의 라텍스 냄새가 내 표정보다 먼저 나를 설명했다.
겨울이 깊어지면 나는 나무들을 떠올렸다.
푸른 것을 놓지 않는 잎, 힘줄처럼 박힌 마디,
살얼음 같은 공기를 찢고 드물게 터져 나오는 꽃.
사람들은 그 버팀을 칭찬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왜 이 계절이어야 하는지.
내 계절감은 언제나 반 박자씩 어긋나 있었다.
빗나간 온도가 몸 안에 오래 머물렀다.
아침은 시작이라기보다 복사에 가까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따뜻하다기보다 바랜 물감 같았다.
빛은 벽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 발목쯤에서 멈췄다.
그 위를 지나가려고 발을 떼면 밑창에 뭔가가 달라붙었다.
떼어내면 다른 면이 붙고,
붙은 면 때문에 속도는 더 느려졌다.
속도가 느려지면 생각이 불어났고,
생각은 다시 몸을 붙잡았다.
거실을 지나며 그릇을 보면
어제와 같은 위치, 같은 각도, 같은 침묵.
시간이 지났는데도 변색이 없다.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을 때
나는 오히려 나의 시간을 의심했다.
숟가락을 들어 올리면 손목이 먼저 꺾였다.
맛을 느끼기 전에 씹는 일이 지쳤다.
낮에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표정을 다듬고, 호흡을 정리하고, 말의 톤을 맞춘다.
내가 떠들고 있어도 내 목소리는 약간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들렸다.
대화의 중앙에 서 있어도
어딘가 바깥에서 유리벽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 같은 기분.
그래도 나는 가능한 한 밝은 쪽을 택한다.
밝음은 금방 꺼지고,
꺼지고 나면 대부분의 면적은 그림자에게 돌아갔다.
해가 기울면 건물은 서랍장처럼 보였다.
층층이 박힌 작은 불들이 순서대로 꺼졌다.
도서관 좌석표의 초록불이 하나씩 회색으로 바뀌는 속도,
그 속도에 맞춰 내 방의 공기도 다시 무게를 바꿨다.
탁자 모서리의 각이 불필요하게 또렷해지고,
빈 컵 내부가 필요 이상으로 깊어 보였다.
손가락 끝에 보이지 않는 가루가 묻는 느낌.
착각이 오래 달라붙으면 사실처럼 작동했다.
그 감각이 남아 있는 동안,
다른 감각을 믿기 어려웠다.
밤은 어깨, 가슴, 눈꺼풀 차례로 눌러왔다.
눈을 감으면 복도가 펼쳐졌다.
끝이 있는 듯 보이지만 몇 발자국 뒤면
다시 출발점의 바닥무늬가 반복되었다.
내 발자국은 내 발자국을 덮어 지웠고,
지워진 자리에 얕은 그을음이 남았다.
물로 닦으면 번지고, 안 닦으면 진해졌다.
그렇게 자정이 계속해서 넘었다.
가끔은 두 목소리가 스쳤다.
조금만 더 물러서라고 말하는 쪽,
여기서 멈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쪽.
둘 사이를 오가다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한 채
천장을 세었다.
작은 균열들이 별자리처럼 이어졌지만
나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이 없는 것들은 오래 남는다.
부르지 않아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밤엔 창틀에 손을 얹고,
다른 밤엔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은 내 체온을 가져갔고,
손바닥엔 비누로 쉽게 지워지지 않는 냄새가 남았다.
그 냄새가 약해질 즈음이면,
다음 밤이 문턱을 넘어와 있었다.
밤들은 서로 닮아 있었다.
닮은 부분은 정확히 포개졌고,
다른 부분은 묘하게 오래 기억되었다.
말을 아끼는 날이 늘었다.
덜 말하면 침묵의 떫은맛이 줄 줄 알았는데
입안의 공백만 커졌다.
빈칸은 다음 문장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방금 쓴 문장을 지웠다.
지워진 자리엔 설명하기 어려운 무늬가 남았다.
그 무늬가 오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만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것이 내 하루의 방식이었다.
해가 지고 오르고, 불이 꺼졌다 켜지는 동안
같은 성질의 것이 드나들었다.
나는 허락한 적이 없는데
그것은 오래된 세입자처럼 열쇠를 갖고 있었다.
문을 바꿔도, 손잡이를 바꿔도,
그 열쇠는 늘 맞았다.
그래서 오늘도 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
멈춘다고 달라지는 건 거의 없지만,
멈추지 않으면 어느새 안쪽에 서 있는 나를
다시 보게 되기 때문이다.
가끔, 아주 가끔,
방의 형태가 손톱 길이만큼 달라져 있음을 늦게 깨닫는다.
책상과 침대 사이의 거리,
커튼 밑단의 새 주름, 컵받침의 마른 물자국.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그 미세한 차이를 붙잡고
나는 한동안 버틴다.
안도인지 경고인지 분간되지 않는 감정이
발목에서 무릎, 허리까지 천천히 올라오고,
아래를 볼수록 바닥의 무늬는 흐려진다.
그 흐림이 방 전체를 덮기 직전,
초침 소리가 잠깐 끊어지는 듯한 공백이 생긴다.
그 공백에서, 아주 얇은 틈이 열린다.
현실의 가구들이 반 걸음 뒤로 물러나고
익숙한 배치가 낯선 순서로 배열되는 순간.
거기까지가 오늘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