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미움이 교차하여 얽혀 있는 상태.
나는 여전히 부모님 세대와 마주할 때마다 두 갈래 길 위에 선다.
그들은 나를 길러준 존재이자, 동시에 나를 상처 입힌 세대였다.
전화기 너머의 따뜻한 안부 속, “밥은 챙겨 먹나?”라는 말에도, 나는 늘 날카로운 가시를 느꼈다.
그들의 말은 분명 다정했지만, 그 다정은 언제든 뒤집혀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와 함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혹시 나만 이상한 건 아닐까? 내가 괜히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랑과 미움의 경계에서 늘 흔들렸다.
돈을 보내주면 감사했지만, 그 돈이 나를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밥을 차려주면 고마웠지만, 그 밥상 앞에서 나는 늘 침묵해야만 했다.
품 안에 있으면서도 낯설고, 멀리 떨어지면서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고모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나를 아껴주었지만, 세대의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내가 겪는 감정을 설명할 때마다, 말은 서로 스쳤지만 마음은 닿지 않았다.
공감은 있었으나, 그 공감은 허울뿐인 장막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 장막 너머에는 내가 끝내 건너지 못한 강이 있었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여전히 그들을 미워하면서도, 그들의 인정과 애정을 갈망할까?”
이 질문은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싫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준 작은 다정에 흔들렸으니까.
거부와 갈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는 늘 균열 난 자아를 바라봐야 했다.
아마 이것이 세대 갈등의 본질일 것이다.
부모 세대는 그들 나름의 상처와 결핍 속에서 살아왔고,
나는 그 결핍의 잔해 위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서로에게는 사랑과 원망이 동시에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그 교차의 매듭을 풀지 못한 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를 낯설게 바라본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애증은 단순히 감정의 모순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미움이 있다는 건 아직 사랑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사랑이 있다는 건 여전히 미움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나는 오늘도 그 교차점에 서 있다.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
이제 와서 부모님이 “그땐 몰랐다”, “너무 미안하다”라고 말해도, 그 말이 내 몸의 기억을 되지우진 못한다. 상처는 이미 오래전에 흉터로 굳어, 단순한 말 한 줄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갈망한다. 과거의 내가 느낀 고립과 공허를 누군가가 정직하게 바라봐 주기를. “그럴 수 있었겠다”라는 단순한 인정이, 사과보다 더 깊은 치유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언어를 붙잡았다.
침묵 속에서는 버틸 수 없었다.
말하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으면, 허무가 내 안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내가 글을 쓰는 일을 두고 “철학 흉내”라 조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글은 흉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숨을 고르는 방식이었고,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줄다리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 세대와의 거리를 체감할수록 나는 오히려 또래 혹은 낯선 타인 속에서 나와 닮은 얼굴들을 찾았다.
그들도 글을 썼고, 철학을 말했고, 심리를 언급하며 자신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마치 같은 언어의 공동체를 발견한 듯 위로를 느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닮음은 표면일 뿐, 방향은 달랐다.
그들의 글은 삶을 정리하고 균형을 잡기 위한 통로였다.
그들에게 쓰는 일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사다리였다.
하지만 내 글은 달랐다.
나는 글을 심연 속으로 던졌다.
그 끝에서 반향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버티기 위한 무게추였다.
글을 쓰지 않으면 무너지고,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에, 내 언어는 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닮았다는 사실은 잠시의 위안을 주었지만, 다름은 언제나 더 큰 고독을 안겼다.
나는 거울 속에 누군가와 같은 모습을 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전혀 다른 풍경이 비치고 있었다.
하나는 햇살을 향했고, 하나는 어둠을 향했다.
나는 왜 늘 어둠 쪽을 바라보는가,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길을 알게 되었다.
닮음을 붙잡고 있으면 나는 안도했지만, 동시에 내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졌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의 방향이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 선명함은 언제나 허무를 동반했다.
닮음이라 믿었던 것들이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 나는 더 깊은 고독 속에 서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와 닮은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것.
나는 언제나 다름 속에서만 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다름을 끝내 기록해야만, 나라는 존재가 흔적이라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부모님 세대를 떠올릴 때마다 모순된 감각이 동시에 일어났다. 머리로는 그들이 겪어온 시대의 고단함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몸은 여전히 과거의 잔상을 기억한다. 설명으로는 수긍할 수 있어도, 심장은 그 순간마다 더 빨리 뛰고, 손끝은 알 수 없는 경계로 굳어버린다. 이해와 거부가 한 몸 안에서 엇갈리는 이 불일치가 나를 지치게 했다.
부모님 세대는 전쟁과 가난, 산업화를 지나오며 “버텨야 한다”는 말을 삶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감정은 사치였고, 상처는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준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상처 입었고, 동시에 그 기준에 적응하지 못해 더 큰 고립을 느꼈다. 세대의 가치가 곧 가정의 규칙이었고, 그 규칙은 나를 보호하지 못한 채 옭아맸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상하게도 그 규칙에 길들여져 있었다. 따뜻한 말을 듣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낯설어 몸을 경계했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웃음을 흉내 내면서도, 동시에 그 웃음이 공허한 연극이라는 사실을 또렷하게 자각했다. 결국 나는 그 세대가 만든 질서 속에 상처 입은 동시에, 그 질서 없이는 스스로를 지탱할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부모님 세대를 단순히 미워하는 데서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의 모순은 곧 내 몸의 모순으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물려준 세계를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그 세계의 언어와 습관을 빌려 살아가고 있었다. 미움은 나를 분리시켰지만, 그 분리조차 완벽할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순간이 있었다. 내담자로서 만난 30년 경력의 어른, 부모님 세대의 한 사람이 내 글을 대하는 태도였다. 나는 내 글을 단순히 “어린 내담자의 하소연”쯤으로 치부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내 언어에 귀 기울였고, 내가 삶을 붙잡으려 애쓴 흔적을 존중해 주었다.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벽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 금이 간 틈 사이로 빛 한 줄기가 스며들 듯, 내 세계에 예상치 못한 가능성이 들어왔다. 부모 세대 전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확신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한 사람의 공감은 단순한 예외가 아니라 내 생각 전체를 흔드는 증거였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부모님 세대를 향한 나의 감정은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이해와 원망이 뒤엉킨 회색의 결을 띤다. 그 결은 내 정체성의 일부로 새겨져 있고, 나는 그 회색을 지워내는 대신 붙잡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선명한 흑백의 판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리, 그것이 바로 내가 서 있는 세대 간의 경계선이다.
경계선 위에 서 있다는 건 늘 불안정한 일이었다. 발 한쪽은 부모 세대가 남겨준 질서에 닿아 있고, 다른 발은 그 질서를 거부하는 내 세대의 심연에 걸쳐 있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 수 없는 이 애매한 자리에서, 나는 자꾸만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그래서 글쓰기는 필연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취미나 자기 계발쯤으로 보겠지만,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침묵하면 무너지고, 참으면 병들었다. 내 안의 균열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언어였기에, 나는 문장을 꺼내놓으며 그 위태로운 발걸음을 지탱했다. 글은 내게 벼랑 끝의 난간 같은 것이었다. 한 손으로라도 붙잡고 있지 않으면 끝내 떨어질 것 같은 자리에서, 나는 언어라는 난간에 매달렸다.
더구나 글쓰기는 나를 세대의 언어와 분리시켜 주는 창구였다. 부모 세대가 물려준 세계의 문법은 버텨라, 참아라, 말하지 마라였다. 그러나 나는 그 문법을 거부하며 반대편 문법을 만들었다. 드러내라, 흔들려라, 기록하라. 그것은 부모 세대의 질서를 해체하는 동시에, 나 자신을 새로운 규칙 위에 세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부모 세대가 남긴 언어의 흔적은 여전히 내 글 곳곳에 배어 있었다. 때로는 그들의 말투를 흉내 내듯, 때로는 그들의 가치관에 반박하듯, 내 문장은 늘 과거와 현재의 힘겨루기였다. 글을 쓰며 나는 나 자신을 구하려 했지만, 동시에 그 구원조차 부모 세대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글은 적어도 하나의 증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침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증거.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문장을 읽고, 그 속에 스스로의 그림자를 발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회색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