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두 가치가 동시에 공존하는 모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린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몸속 깊은 곳에 걸려 종일 내려앉고, 예상치 못한 상황 하나가 숨을 막고, 불공평한 장면이 눈앞을 스치면 억울함이 금세 분노로 치환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이 내 주인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이닥친 바람과 파도에 떠밀리는 작은 배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그런 순간은 사소한 데서 일어난다.
약속 장소에 갔는데 상대가 십오 분, 이십 분을 늦게 도착했을 때. 처음엔 ‘별일 아니지’라며 웃어넘기지만, 시간이 쌓이면 억울함이 목구멍 끝에 고인다. ‘나는 늘 시간을 지켰는데, 왜 나는 늘 당연하게 기다리는 쪽이어야 하지?’ 속에서 불이 타오르지만, 정작 겉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멀쩡한 척을 한다. 그때 몸이 기억하는 건, 억울함을 삼킬 때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건조감과, 손끝에 힘이 들어가며 차갑게 굳어버리는 감각이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세웠다. ‘나는 지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상대를 단속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내 안의 기준. 내가 지각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오늘 하루는 지켜졌다. 상대가 몇 번 늦든 싸우지 않는다.
대신 집에 돌아오는 길, 혼자 속삭인다. “그래도 나는 오늘 내 기준을 지켰어.” 그러면 억울함이 덜 무겁다. 이 기준은 나를 지키는 울타리였다. 그러나 그 울타리는 언제든 감옥이 될 수 있다. 몸이 아픈 날에도 억지로 약속을 지키려다 결국 무너지는 경우가 그랬다. 울타리가 나를 보호하려다 오히려 족쇄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기준 안에 반드시 예외를 허락하기로 했다. 오늘은 못 지켜도, 내일 반드시 돌아온다. 그 작은 유연함 덕분에 기준은 오래 살아남았다.
나는 점점 이해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힘든 건 나의 기준과 상대의 기준이 다를 때라는 걸.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차이는 더 크게 다가왔다. 친한 사이니까 내 시간을 당연히 빼앗아도 된다고 여기는 순간들, 가까운 사이라서 내 마음을 시험해도 괜찮다고 믿는 태도들. 나는 싸우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말은 삼켰지만, 몸은 경계했다. 그 선은 상대를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사람은 무엇을 필요로 하며 살아갈까. 누군가는 돈을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성공이나 명예를 꼽는다. 그러나 나는 오래 고민한 끝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정말 필요한 건 다섯 가지라는 걸 알았다. 안정, 애착, 의미, 자유, 그리고 창조.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현실 속에서 흔들리며 자란 나는 집이라는 공간이 언제나 안식처가 아니라 긴장의 장소였다. 벽 너머의 작은 말싸움, 덜컥거리는 방문 손잡이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어린 시절. 안정이 없는 자리에선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배웠다. 지금도 카페에 가야 집중이 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겨우 마음을 붙잡는다.
그럼에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관계 덕분이었다. 부모에게서 충분히 받지 못한 온기를 고모가 대신 지켜주었다. 가출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사람도, 무너져 울음을 삼킬 때 전화를 건 사람도 결국 고모였다. 그러나 부모와의 결핍은 내 인간관계에 그림자를 남겼다. 떠날까 두려워 쉽게 집착하고, 미움받을까 두려워 가면을 쓰는 습관이 반복되었다. 애착은 단순한 정서적 연결이 아니라, 인간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둥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안정과 애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의미가 없으면 삶은 공허했다. 한때 나는 스스로를 “그저 숨만 쉬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고, 하루를 버텨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붙잡은 것이 글쓰기였다. 처음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썼다. 오늘 하루를 정리하지 않으면, 곧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장으로 옮기자 감정은 구조가 되었고, 구조는 다시 내 존재를 확인시켰다. 시간이 흐르며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을 때, 나는 알았다. 인간은 무의미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존재라는 것을.
그러나 의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자유가 없을 때 나는 남이 써놓은 대본을 억지로 따라가는 배우 같았다. 전공을 선택할 때도, 진로를 고민할 때도, 내 목소리보다 남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이 앞섰다. 자유란 방황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방황하지만, 이제는 그 방황조차 자유의 과정임을 이해한다. 길을 잃은 듯 보여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스스로 길을 만드는 증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조가 있었다. 블로그에 쌓인 글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 상처를 다른 형태로 바꾸는 창조의 과정이었다. 어떤 날은 쓰다 멈추고 울었고, 어떤 날은 새벽까지 몰입해 스스로도 놀랄 만큼 깊은 문장이 쏟아졌다. 창조는 거창한 업적이 아니었다. 내 안의 파편을 모아 언어로 바꾸는 일, 그 언어가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힘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섯 가지 기둥은 결국 인간관계의 토대이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최소한의 조건이 되었다.
친구와 회전초밥집에서 마주 앉았을 때도, 나는 그 다섯 가지 기둥을 더듬듯 붙잡고 있었다. 벨트 위로 접시가 돌고, 간장 종지에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주제는 단순했다. 술이 과연 맛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말이 오갈수록 목소리는 높아졌고, 대화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삶과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층위로 흘러갔다. 나는 내 결핍을 숨기지 않았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건너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두세 배의 힘을 쏟아야 하는 나. 그래서 나는 나를 ‘비정상’이라 불렀다.
그 말을 꺼내자 공기가 달라졌다. 친구의 젓가락이 멈추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를 비정상이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나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섞여 있었다. 그는 덧붙였다. “너는 오히려 정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 그러나 내게 정상과 비정상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의 좌표였다. 우리는 같은 단어를 두고 전혀 다른 차원에서 대화하고 있었다.
대화는 술 이야기로 흘렀고, 이어서 루틴과 패러다임, 삶과 죽음으로 확장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볼 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그는 그것이 오만처럼 들린다 했다. 하지만 내 연민은 위계가 아니라 공명에 가까웠다. 나도 똑같이 부서져 있기에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고백이었다. 대화의 끝자락에서 나는 명분 있는 죽음에 대해 말했다.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도 곁을 지킨 그 멈칫. 나는 그것이 포기가 아니라, 더 오래 머물러주려는 신호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따뜻함만 주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의 빛을 볼 때마다 동시에 시샘에 잠겼다. 발표장에서 내 목소리가 작아지고, 바로 뒤 친구의 유려한 말솜씨에 박수가 터져 나올 때. 블로그에 공들여 쓴 글이 몇십 명에게 읽히는 사이, 누군가의 화려한 문장이 수십 개의 댓글을 얻을 때. 나는 존경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경옥부심, 옥처럼 빛나는 이를 보며 마음이 썩어 들어간다는 말. 그것은 내게 부끄럽지만 동시에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늘 물을 주지만, 그 잔디는 남의 땅 위에만 자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는 내 발밑의 메마른 땅을 보며 “너는 시저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Em Beihold의 노래 〈Brutus〉는 이렇게 묻는다. “솔직히 말하면, 난 네 삶을 갖고 싶어.”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그 대목에서 늘 걸음을 멈춘다. 나는 누구를 향해 이런 말을 속으로 되뇌고 있는 걸까. 존경과 질투, 부러움과 자기혐오가 뒤섞인 얼굴들이 떠오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시저처럼 보일 수 있을까.
여름이 와도 내 플레이리스트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았다. 밝은 곡과 어두운 발라드가 교차하는, 겉보기엔 모순 같은 음악들. 그러나 그 모순 속에 내 구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도, 노트를 정리할 때도, 글을 쓸 때조차 음악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방 안이 조용하면 오히려 집중이 무너졌다. 같은 곡을 수십 번 돌려 들으며, 나는 내 감정을 곡 속에서 비추곤 했다.
아이유의 〈안경〉은 세상의 시선과 내가 보는 내 모습 사이의 괴리를 비춰주었고, tripleS의 〈깨어〉는 활기찬 리듬 속에서 실존적 질문을 던졌다. JUNGWOO의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 때마다 내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신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절박한 고백이 담긴 곡, 이미 끝난 것을 집요하게 되새기는 노래. 나는 언제나 그런 모순에 끌렸다. 음악은 나의 민감함을 정당화해 주었고, 동시에 내 복합적인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결국 관계도, 감정도, 취향도 모순 속에서만 선명해졌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거리를 두고, 존경하면서도 시기하고,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하고, 안정과 자유를 동시에 갈망했다. 나는 이 모순을 부끄럽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자, 인간관계가 끝내 안고 가야 할 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