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지 않음이 오히려 아름다움.
실험대 앞에 서 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맞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늘 ‘맞춰봄’에 가까웠다. 교과서 속 수치와 공식은 완벽하게 떨어지는 듯 보였지만, 실제 반응기는 언제나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같은 장치를 쓰고, 같은 농도의 용액을 넣고, 같은 온도를 맞췄는데도 결과 곡선은 매번 조금씩 달랐다. 그 작은 차이가 보고서에선 오차라 불렸고, 때로는 실패라 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야말로 현실이었고, 내가 감당해야 할 세계의 본모습이었다. 표준환원전위가 절대값처럼 적혀 있었지만 사실은 한 전극을 기준으로 삼아 상대적으로 매겨 둔 값이었고, 평형 상수 역시 “조건이 일정하다”는 전제가 깔릴 때만 의미가 있었다. 통계에서 흔히 쓰이는 0.05의 유의수준조차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편의상 합의한 경계에 불과했다.
이런 깨달음은 처음에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붙잡아 온 수학적 세계와 과학적 언어는 언제나 단단한 권위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세계는 그 권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드러냈다. 실험을 다시 반복할 때마다, 값은 조금씩 달라졌고, 오차의 원인은 늘 끝내 다 설명되지 않았다. 장비의 한계, 환경의 작은 차이, 연구자의 손길, 심지어는 나의 컨디션까지 결과에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묘하게 안도했다. 세상이 원래부터 불완전하다면, 나 역시 불완전해도 괜찮은 것 아닌가. 완벽을 꿈꾸다 번번이 무너지는 나의 삶이 오히려 더 진실한 현실과 닮아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위로했다.
강의실에서도 이 깨달음은 나를 따라왔다. 교수님은 칠판 가득 수식을 써 내려갔고, 우리는 그 공식이 마치 진리처럼 성립한다고 외워야 했다. 그러나 나는 자꾸 의심이 들었다. 이 공식은 어느 조건에서만 성립할 뿐, 그 조건이 무너지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험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나는 오차의 이유를 억지로 설명해야 했다. 교수님은 “결과가 이론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느냐”로 점수를 매겼고, 학생들은 이론에 맞게 숫자를 조정하거나 설명을 붙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학문이 단순히 ‘진리’가 아니라 ‘조건부 합의’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체감했다. 불완전성을 직면하기보다, 우리는 불완전성을 가리고 포장하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가림막 뒤를 보고 싶었다. 수치적 해석과 깔끔한 결론 뒤에 가려진 불안정함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삶도 언제나 불완전했다. 완벽한 성적을 꿈꾸었지만 늘 기복이 있었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지만 자주 어그러졌으며, 관계에서는 쉽게 상처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배운 불완전성의 법칙은 내 자책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애초에 삶도 불완전성을 전제로 서 있는 것이라면, 나의 실패는 결코 전부가 아니었다. 불완전하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진리에 가까운 모습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길이 명확히 보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성을 받아들였기에 선택은 더 복잡해졌다. 전공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복수전공을 해야 하는가, 학부연구생을 경험해야 하는가, 대학원은 가능할까. 선택지는 너무 많았고, 주변 사람들은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안 하는 것보단 낫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경험이 언제나 나를 넓혀주지는 않았다. 어떤 경험은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억지로 들어선 길은 상처로 남았다. 기질에 맞지 않는 길은 끝내 성취가 아니라 자책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사실을 늦게야 깨달았다. 연구실 사진을 SNS에 올리던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복수전공으로 성과를 내던 동기들의 모습은 나를 끝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보게 되었다. 그들의 선택은 그들의 환경과 기질에 맞았을 뿐이고, 나의 환경과 기질은 다른 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같은 시약을 같은 비커에 넣어도 온도와 용매가 다르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듯이, 같은 선택이라도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당연한 이치를 나는 뒤늦게야 삶을 통해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내 기준을 바꾸었다. 남들이 옳다고 하는 길이 곧 나의 길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맞게였다. 화학공학이라는 기반을 배우되, 사회복지를 복수전공하고, 나아가 상담심리 대학원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길이지만, 내게는 당연한 흐름이었다. 공학의 세계가 내게 가르쳐준 건 불완전성의 원리였고, 그 원리는 인간과 관계에서도 똑같이 작동했다. 실험실에서 배운 피드백의 감각은 내 마음을 점검하는 습관으로 옮겨졌다. 반응기 대신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변수를 인정하며, 언제든 조건을 바꾸어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 과정에서 글쓰기는 또 다른 실험노트가 되었다. 일기를 쓰며 나는 스스로를 관찰했다. 오늘의 기분, 무너진 순간, 작은 성취, 자책의 말, 주변의 반응. 매일의 기록은 패턴을 보여주었다. 언제 불안이 심해지고, 어떤 조건에서 마음이 열리고, 무엇이 나를 다시 일으키는지.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듯, 나는 나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블로그에 올렸을 때, 누군가가 “당신의 글을 읽고 책을 내보라”라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결국 중요한 건 대학의 이름이나 전공명이 아니라, 내가 품은 진심이라는 것을.
미래를 떠올리면 여전히 불안하다. 대학의 간판은 눈부시지 않고, 자격증 목록은 아직 빈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발을 빼지 않는다. 예비실험을 하듯, 준비를 천천히 이어간다. 복수전공의 과목을 수강하며 시선을 넓히고, 상담 관련 서적을 읽으며 언어를 익히고, 매일 글로 내 상태를 기록한다. 기록은 과장을 막아준다. 좋은 날을 지나치게 포장하지 않게, 나쁜 날을 통째로 실패라 부르지 않게. 작은 기록들이 모여 내일의 나에게 증거가 된다.
그리고 나는 상상한다. 언젠가 작은 상담실, 단정한 의자 두 개, 지나치게 밝지 않은 조명, 손이 잠시 머물 수 있는 따뜻한 차 한 잔. 그곳에 앉은 누군가가 “저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서둘러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용히 묻고 들을 것이다. 언제부터 그 말이 입술에 붙었는지, 그 문장이 몸 어디를 아프게 하는지.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나도 같은 문장을 오래 품었다. 그런데 그 빈칸이 내 길을 만들어 주었어.” 빈칸은 빠진 게 아니라 남겨 둔 자리일 수 있다. 남겨둔 자리에서 새로운 선이 뻗어 나온다.
행복의 모양도 바뀌었다. 예전엔 커다란 성취를 꿈꿨지만, 지금은 작은 일관성이 나를 지탱한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간신히 이어지는 것. 그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들. “지금은 충분해.” “여기서 멈추자.” “다시 해보자.” 이 말들이 나를 다시 앉게 하고, 다시 걷게 한다. 학문은 완전하지 않고, 삶은 더더욱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완전성 속에서 우리는 더 정확해진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자신을 다루는 손길이, 내일로 건너가는 태도가.
나는 여전히 실험 중이다. 다만 이제는 물질 대신 사람을, 방정식 대신 목소리를, 반응기 대신 만남을 빛나는 눈금 아래 올려두고 지켜본다. 실패라 불렀던 수많은 시도들이 사실은 기록이었음을, 기록이 쌓여 결국 길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 길 위에서 천천히 배우고 있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그 불완전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그 불완전 덕분에 서로에게 닿는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낼 힘과 내일을 청할 용기는 언제나 그 사이에서 생겨난다. 당신이 지금 어떤 조건 위에 서 있든—흔들리고 부족하고 미완인 채로—그대로 있어도 된다. 그 자리에서부터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언젠가 아주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도 말하듯이.
“살 만해졌어요, 고마워요, 또 봬요.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