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래된 친구가 100억을 가진 현금 부자가 되었다. 유치원때부터 가족끼리 아는 사이었고 현재까지도 유지해오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는 학생때부터 어른들의 지도를 이견 없이 잘 따라가는 아이였다. 그 옆의 나는 정반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에게 열등감이나 부러움을 느낀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후 친구는 열심히 공부한 대가로 당연하게 인서울 대학에 진학했으며, 스타트업 회사로 취업했다.
지방 출신 아이가 서울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란 육체의 일부를 냅다 떼어갈 정도의 힘겨운 일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그 아이는 초창기 창업 멤버 3인 중 하나에서 글로벌 화장품 기업 팀장으로 우뚝 서기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었다.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할때마다 난 내가 더 나은 하루를 살고 있다며 안도했다. 남의 아픔과 불행이 내 위로의 도구가 되어선 안되지만 그땐 그랬다. 아무튼 나는 틈날때마다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며 수년을 함께 보냈다.
내 친구는 악착같이 버텼다. 그리고 K-뷰티의 전세계적 열풍에 회사가 경영 안팎으로 초대박의 중심에 섰다.
밖으로는 소비자가 대폭 늘어난 것은 물론, 안으로는 복지 차원으로 부여 받았던 주식이 상장하자마자 거의 20배 이상의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친구는 단숨에 현금 100억을 가진 졸부가 되었다. 자신이 이 회사에서 버티며 잃은것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다. 잃은것은 정신, 바로 정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돈이 이렇게 좋은건지 몰랐다는 솔직한 말도 남겼다.
분명 나는 서울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친구를 보며 내가 더 나은 삶을 산다며 어줍짢은 승리감에 취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몇 년전부터 상황이 완전 역전된 것이다. 지금 나는 계약직을 전전하며 월200만원으로 계산기 두드려가며 살고 있으니까.
단순히 그 친구와 나를 재산만으로 비교해서 부러운게 아니다. 자기 안의 확신을 의심하지 않고 죽을만큼 매달렸던 친구, 그런 친구에게 합당한 보상을 준 하늘까지.. 그 성공 서사가 부럽다.
나는 언제쯤일까? 내게도 그런날이 올까? 막연하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체력은 더 떨어지고 있는데 이뤄놓은 성과가 없다. 목표를 낮게 잡고 하루만 열심히 산다면 그 하루들이 엄청나게 쌓여 무시무시한 효과를 낸다는 말만 믿기엔 내가 너무 나약하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후회와 불신이 한가득이다.
이 친구의 성공일화는 1편의 친구와 다르게 상당한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진심어린 축하를 전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 성공 서사 앞에 내 인생은 더 갑갑하게만 느껴진다. 친구와 나를 비교해서 내가 더 작아보인다는 그런 일차원적 의미가 아니다. 이미 ‘친구의 성공’ 자체는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마무리가 되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내 인생이 유독 쉽지 않다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뭘 어떻게 더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전생에 지은 업이 많아 지금 이러고 있는건가. 자조적인 생각뿐이다. 오늘까지도 이 친구의 성공에서는 나의 통찰, 깨달음 등을 뽑아내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