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기준은 저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내가 크게 부러워할 성공을 거머쥔 친구가 딱 두명있다.
어렸을때부터 옷을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지방 전문대에 진학하더니 재미삼아 의류 소매업을 시작했고 이후 자기 브랜드를 내며 결국 누구나 아는 브랜드 대표가 됐다.
자연스럽게 멀어져서 친구라는 타이틀도 성공한 친구에 편승하려는 것 같아 괜히 낯부끄럽지만, 어쨌든 분명히 친한 친구였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알만한 연예인 모두 친구 브랜드의 옷을 착용한다. 공항에서도, 공식 석상에서도, 개인SNS에서도 말이다. 이 친구에게 성공이란 궤도의 끝은 어디일까 싶을 정도로 탄탄대로의 커리어를 쌓고 있다. 게다가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 K-패션이 대호황기를 맞아 친구는 해외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나는 그 성공을 보며 어느새 친구의 인생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옆에서 본 친구가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과연 내가 계산했을 때 이 정도 대박을 누릴 인물이 되는지 자체적으로 평가해버리는 것이다. 무례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학창시절 이쁜 얼굴로 아무도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고 그때부터 이미 그 친구를 따라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냥저냥 갈만한 대학에 덜컥 붙었고, 이후 이쁜 얼굴과 색깔 있는 패션으로 대학교에서도 금방 유명해졌다. 취미로 옷을 떼서 몇 개씩 팔기 시작하며 흔히 말하는 팬이 더 늘어 지금까지 미친 가속도를 내며 질주중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친한 친구였단 이유로 어떻게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는 캔디의 성공 서사를 보기 좋게 깨부순 친구를 보니 내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참으로 오묘하다. 물론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몇번이나 벼랑끝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을수도 있다. 그건 친구가 말하지 않는한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성공의 이면만 바라보고 나와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는거다.
설사 그 친구가 고난과 역경이란 서사 없이 가공할만한 속도로 성공했다한들 그건 그 사람의 팔자다. 좀 웃긴 결론일지라도 이것말고는 설명할 것이 없다.
그 친구가 성공을 위해 건넜을 지난한 시간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쉬워보일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인생을 내 관점에서만 해석하려들지 말자. 역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마침내 성공했을때, 과연 내가 이만한 부와 명예를 누려도 되는 사람인지 각자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면? 그러면서 단순히 내 성공을 운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뛰어 넘는 인연으로 만나 좋은 추억을 공유한 친구이다. 그 친구의 성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자. 그 친구는 운이 좋았든, 뼈를 깎는 고통으로 노력을 했든 어쨌든 모두가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게 끝이다. 만약 이것 이상으로 평가를 한다면 나는 필요 이상으로 친구의 성공에 내 인생을 많이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