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와 자리할 때 잠깐 혹은 긴 시간 침묵이 힘들다. 가끔 보면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말과 행동으로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유능한 토크쇼MC가 된 것 처럼 말이다. 자발적으로 부여한 타이틀 때문에 대화를 하다가 공백이 생기면 ‘앞 사람이 나와의 시간을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을까?’ 라며 조바심이 마구 든다. 지나친 망상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거의 습관처럼 굳어 버려서 누구를 만나면 나는 모든걸 잊고 다시 광대가 되어 질문을 난사한다. 심할땐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 쉴새없이 머리를 굴린다. 이후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오면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 또한번 환멸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그질문은 너무 선 넘었나?, 그 질문은 하지말걸 등의 후회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물론 꼭 나쁜점만 있는건 아니다.
나와 시간 보내는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답을 하며 내가 보이는 리액션과 공감에 보다 큰 풍족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어느 공동체에 속해도 나를 찾는 자리가 많다. 사실 이러한 사실은 오랜시간 나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심심치않게 듣는 말들이 있다.
‘넌 어떻게 그렇게 궁금한게 많아?’
‘꼭 요즘 인기많은 유튜버 같아.’
‘너는 말을 조금만 덜하면 진짜 완벽할 것 같아.’
전부 다 나혼자 짊어진 강박으로 듣게 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바뀌고 싶어졌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밥을 먹든, 카페를 가든 그들이 시간을 나에게 할애하는 것은 내 강요가 아니다. 그들이 직접 선택한 것이며 내가 그 시간을 오롯이 책임질 의무는 전혀 없다. 설령 나와의 자리를 지루하다고 느낄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내 관할이 아니다. 나와의 시간을 재밌게 만들어주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건 그냥 광대다. 그들을 위한게 아니다. 웃음주는 광대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침묵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함께 자리하면서 생기는 공백이 따분, 심심, 무료, 권태로 치환 될 수 없다. 애초에 만나는 시간 내내 의미 없는 가벼운 말로 꽉꽉 메우는 것 만큼 숨막히는 것이 또 있을까? 알맹이 없는 대화는 내 흑역사에 추가되기만 할뿐 실상 관계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그 자유로운 시간동안 나눴던 대화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며 이해하고, 갑자기 떠오르는 궁금한 질문을 정리하기도 하고, 상대의 얼굴을 한번 더 쳐다보며 몰랐던 사실을 발견 하면 된다.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은 소중한 시간이다. 그 만남에서 꼭 어느 한쪽이 광대나 MC를 맡아야 윤택한 시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질문 없는 공백이 이어지더라도 그 자체를 즐기며 교감하는 것이 관계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침묵은 함께하는 이 자리의 퀄리티를 판단하는 척도가 아니다. 오히려 지속되는 대화의 피로함에 허용되는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