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거리며 열불내던 내게 직장 동료가 해준 말이다.
좋은 상황이란 뭘까? 철저하게 나의 기준으로 좋은 상황이란 것을 구체화해보자.
‘안정적인 직장, 고정적 수입, 월100만원 정도는 저축할 수 있는 급여, 나를 괴롭히지 않는 사람들, 혹은 있더라도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 적당한 취미, 그리고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컨디션, 꽤 건강한 정신…’
생각 없이 떠오르는대로 나열했는데 먼저 튀어나온 것이 지금 내게서 가장 결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 물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다!)
현재 나는 여타 다른 게시물에도 언급했듯 비정규직으로 근무중이다. 비정규직 근무까진 좋은데 홀로 마음을 다스리고 심호흡 해야 하는 상황이 자꾸 만들어진다.
우선, 일이 없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부럽다고? 그럴 수 있다. 근데 겪어보면 안다. 진짜 바보 되는 기분이다. 특히 ‘내가 일을 하고 내가 도움이 됐다.’ 라는 효용안정형인 나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히 길고 힘들게 느껴진다. 사회 생활하며 기른건 윗사람 눈밖에 나지 않는 눈치뿐이니 임시직이란 타이틀을 갖고 필요 이상의 눈치만 보고 있다. 게다가 모든 업무에서 배제 되고 있어서 소속감을 느낄 틈이 없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겉도는 느낌을 떠나 내가 먼저 어울리고픈 마음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이들의 눈에 나는 지나치게 선을 넘지 않는 사람, 까칠한 사람 정도로 비춰지겠다.
내가 결정적으로 회사에 맘을 닫게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제조업 특성상 입사와 동시에 근무복이 초도 지급 된다. 이것마저도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아 큰 맘 먹고 요청했다. 그러나 근무복 담당자에게 보기좋게 무시당했고 나는 휴게실에서 주운 퇴사자 근무복을 지금까지 입고 있다. 여기까지도 나는 괜찮다. 회사방침이 그렇다면 얼마든지 따를 의향이 있다. 하지만 이후 직원들이 근무복 관련하여 하는말이 고깝게 들리기 시작하며 문제가 된다.
‘오~ 근무복 잘 어울리네요~’
따위의 말이 전혀 긍정의 뉘앙스로 해석되지 않는것이다. 그들의 눈에 근무복 입은 내가 끝장나게 멋졌을지라도 나는 도무지 기분좋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후 회사에서 진행하는 혹서기 직원 격려 행사를 도와줄 일이 생겼다. 할 일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행사 진행 사진을 많이 찍을것이니 회사 근무복을 챙겨 입고 나오라는거다. 이미 근무복 이슈로 어긋났기 때문에 그순간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근무복을 지급한적은 있는가? 한명이라도 내 근무복을 위해 힘써준 사람은? 또 만약에 내가 자력으로 근무복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결국 나는 '무더운 여름 직원을 챙기는 회사'라는 이미지 구축을 위한 언론플레이에 철저히 이용당했다. 그렇게 나의 얼굴은 무방비 상태로 촬영되어 사내홈페이지 메인화면에 대문짝만하게 개시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연히 퇴사자의 이름이 박힌 근무복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외에도 내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손가락 열개는 거뜬히 넘긴다. 그것들을 구질구질하게 다시 복기하며 적는 것도 내 정신이 힘들어져서 여기까지 하겠다.
어쨌든 나는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절실히 깨닫고 이 회사를 떠난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말, 행동, 상황도 희한하게 회사에서 겪으면 갑자기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된다.
어떤 칭찬도 칭찬으로 들리지 않고, 어떤 행동도 와해 않는 일이 없고, 어떤 사람과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게 됐다.
살아가면서 내가 놓이는 수많은 상황이 나를 만든다. 그런 상황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처연히 관망하는 심지 굳은 나를 발견하기까지 다수의 풍파가 따르겠지. 어쩌면 죽을때까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너무 몰아세우진 말자. 이건 내가 찌질해서도, 어린아이 같아서도 아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뿐다.
마지막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처한 상황을 핑계삼아 나의 분노를 아무렇게나 정당화 하지는 말자.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본질적 판단은 우선 감정에서 벗어나 객관적일 수 있을 때 그때 하자.
이후 부정적 상황이 참이라면 미련 없이 나를 그 상황에서 구제해야하지만, 단순히 마냥 싫은 내 감정 때문에 빚어진 오판이라면 상황을 삐뚤어지게 보던 마음을 먼저 다스리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