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두번째 밤을 10번도 넘는 횟수로 깨는 바람에 마지막날 아침을 더 일찍 맞이한 것 같았다. 예민해서 그런지 낯선곳에서 잘 자는건 언제나 어렵구나 싶었다.
그와중에 알람 시간을 잘못 맞추어 명상 프로그램을 쿨하게 포기했다.
7시 시작인데 7시에 알람을 맞춘 것이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대로 7시에 일어나 마지막 아침 나의 숙소를 찍어보았다.
마지막날은 전날보다 날씨가 훨씬 화창했다.
마지막날 조식도 꼭 챙겨 먹어주었다. 정말 맛있었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식사하면서 채용 공고를 슬쩍 찾아본다.
어김없이 식사 후 명상 마을 전체를 거닐어 본다.
자연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무렇게나 가져다대는 휴대폰에도 걸작의 작품이 남겨졌다.
넋놓고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것이 조금 슬퍼졌다.
단단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던, 그래서 내가 몇번이고 서성인 동림선원.
마지막날도 첫날도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했다. 산을 지키는 무림 고수가 살 것 같은 곳. 멋졌다.
떠나기 싫은 마음 때문인지 자꾸만 밍기적 거리는 나를 고양이 두마리가 재촉한다.
'빨리 양떼목장에 가라옹~'
사람에게 시달려 잔뜩 겁 먹은 얼굴로 피하는 도심 속 고양이들과 달리, 이곳의 고양이들은 친절하고 애교도 많았다. 도심의 고양이들에게 미안했다.
빨간색으로 물들고 있는 단풍나무와 햇빛을 받은 목조 주택(숙소)이 따뜻해 보인다. 이것이 가을의 정취다 생각했다. 넉넉한 체크아웃을 위해 가을의 정취는 잠깐 넣어두고 숙소로 복귀 했다.
짐을 빼니 첫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나만 사라지면 되는 상황은 참으로 어렵다 생각했는데, 너무나 간단했다. 내것을 모두 치우면 된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나면 된다. 이렇게 쉬운걸 매번 어렵다고 울고불고 했다니..
객실키 반납 후 대관령 목장을 향하기로 했다. 원래 바로 귀가하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바로 근처에 대관령 표지판을 보았던터라 마다할 수 없었다.
대관령으로 넘어오는 길 마저도 영상 기술로 구현한 세계처럼 장관을 자랑했다.
멀리 시야까지 뻗은 길, 하늘에 닿을듯한 높은 산, 마음에 드는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산, 허리춤에 운무를 두르고 있는 산, 깨끗한 도로까지.
영화 같은 삶은 사실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0분을 달렸을까?
양떼목장에 도착했다. 해발 고도가 높은 양떼목장은 생각보다 흐렸고, 양들이 없을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다행히도 풀을 뜯어 먹고 있다고 했다!
그것도 가장 정상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했고, 잘 조성된 길을 따라 걷다보니 금방 양떼를 마주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양떼는 저 높은 정상에 있었다. 간단히 인사만하고 얼른 올라가보기로 한다.
내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자연에 탄성을 질렀다.
'우와... 우와...'만 연신 내뱉으며 카메라에 담았다. 늘 머릿속으로 상상만했던 '푸른 동산에 낀 적당한 안개'를 30년만에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렇기에 내게 이곳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오늘의 양 방목지에 도착하자 정말 많은 양떼가 있었다. 느긋하게 풀을 뜯는 양들이 조금 부럽기까지 했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의 주인공은 오른쪽 양.
한컷을 요구하는 눈 같아서 얼른 남겨드렸다. 비록 확인시켜주진 못했지만.. 그에게도 베스트컷이길 바래본다.
더 많은 사진이 있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새기며 엄선한것들로만 기록을 남겨본다.
정상에서 내려오며 나의 유토피아를 한번 더 남겨본다.
'푸른 동산에 낀 적당한 안개'
성공적으로 강원도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총 2박 일정을 끝냈다. 초기 계획에서 이탈 없이 잘 마무리 되어 더욱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으로 얻은 것이 꽤 많았다.
나는 자연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내가 지향하는 공간과 상황이 만들어지니 잡생각은 자동으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싫은것에 대한 스위치는 내가 직접 꺼야한다는 것,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 여행은 꽤 괜찮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인생을 아름답고 뜻깊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
30년동안 희미하게 살았던 내가 조금이나마 선명해질 수 있었던 곳.
산세 좋은 강원도라서 가능했으며 나는 도심에 돌아와서도 그 선명해진 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