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퇴사 후, 잔여물로 남은 감정을 채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단편소설 퇴고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기대라는 것의 부피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생이 쪼그라드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기에, 매 순간 ‘내려놓기’를 잊지 않고 실천하려 하고 있다.
또, 생각한 대로 문장을 써 내려가는 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 같아서 글쓰기가 조금 편안도 해졌다.
‘직장 없는 30살’, ‘이룬 것 없는 30대’.
우리나라에서 나를 가두는 틀이다. 나는 이 정의에 속박되지 않기 위해 하루를 계획적으로 보내고 있다. 아마도 회사에서 10시간가량을 보내는 사람보다 더 밀도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나에게 가치 높은 일로 하루를 채우고 그 하루가 모이다 보니 자꾸만 기대가 생긴다. 그 가치는 오로지 나의 기준인 것을 알면서도.
전 세계 격언이 그러하듯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부터 내가 꼭 대단한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점점 뿌리 얕은 기대에 잠식되다 보니 어느날은 덜컥 무기력함에 빠진다.
나는 기대와 설렘의 순기능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기에 더욱 그렇다. 기대나 설렘은 항상 뜬금없는 말로로 한 사람의 생을 잿빛으로 물들인다.
그러던 중 어느 댓글 하나가 나를 붙들었다.
‘무언가에 집착할수록 그것이 멀어진다면, 그것과 나는 잘못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그럴 때는 나의 반쪽과 같던 그것과 손절하듯이, 우선 눈길을 거두어 다른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주 쉽고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 아주 작고 가볍고 별거 아닌 일을 해야 한다.
계속 반복하면, 사람은 그 작은 일들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된다. 놓아 보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게 되고 나서야, 무언가는 너의 것이 되고 너를 주인으로 삼는다. 가장 작은 일부터 해 나가세요.’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은 꼭 수반되어야 할 삶의 기본 태도 중 하나지만, 그렇게 열심히 ‘만’ 살다 보면 자꾸만 겁없는 낙관이 들어찬다.
여기서 마음의 여백을 되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내가 쫓던 것들에서 잠시 물러나, 아주 당연하고도 편린일지라도 그런 일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런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아침을 여는 양치질일 수도 있고, 하루를 지우는 세수일 수도 있으며, 넓게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모든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당연해서 어려운 일.
그것부터 차근차근 하도록 하자. 그 기간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면 결국 그 작은 것들이 생을 이룬다는 진리에 닿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거창한 뜻을 두고 행하는 것보다, 꾸준히 이뤄지는 것들의 귀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다시 찾자.
조금 지난한 시간이 흐르면 결국 최종적으로 내 옆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여백과 공백은 텅 비어서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다.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해, 또는 옳은 것으로 채워지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 비워내야 한다. 내 24시간을 꽉 붙들고 있는 목표와 계획을 조금 느슨하게 풀고, 쉽고 당연한 것들을 하자.
마음의 부풀림이 사라지고 차분해 졌을 때 다시 한번 내 옆을 살피면, 나도 모르게 다가온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