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구마크림라떼로 긴 밤을 뒤척이며 둘째날 아침을 맞이했다.
월요일은 명상프로그램이 없어서 일어나자마자 샤워 후 글을 조금 써본다.
조식이 기대되어 글을 쓰는 손가락이 춤을 췄다.
2박동안 먹은 식사 네끼중 가장 내 취향이었다. 단호박구이가 정말 맛있었으며 반찬끼리도 조화로웠다.
'과연 이 아침부터 밥이 넘어갈까..?' 라는 생각은 역시 쓸데 없는 것이었다.
밥 한숟갈 떠서 그위에 땅콩조림 두알, 표고버섯 하나, 김치 하나, 나물 하나 올려서 한입 가득 넣는다.
오물오물 씹으며 된장국 한입 크게 뜨면
이 밥을 위해 30년을 고통속에 살았구나..! 싶다.
식사 후 조용히 걸었다.
붓다의 정원쪽에 사람이 많았다. 작은 굴삭기 몇대가 땅을 파고 있다. 아마도 나무들의 월동 준비를 돕고 다가올 봄을 위해 이것저것 다듬는 것 같았다.
동림교에서 보는 동림선원은 범접할 수 없는 고수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나는 동림선원이 왜 이렇게 좋은건지 슬쩍 사진 한컷 남겼다.
강원도는 산이 높다. 그 산 위에 낀 안개가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둘째날은 부슬부슬 비가 흩날렸다.
젖지 않을 정도의 비지만 우산 없이 걸어다니려니 여간 불안한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산 없이 11시쯤 둘레길을 따라 월정사로 올라가본다.
가는길에 내팽겨쳐진 우산이 눈에 띄었다.
첫날 명상 프로그램때 강원도는 20일 가량 비만 내렸다고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질어진 땅에 발목, 발가락에 힘을 꽉 쥐고 걸었다.
올라가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분무기처럼 뿌리는 비를 배경 삼아 이것저것 구경해본다.
월정사 가는길에는 '전나무 숲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이미 명소로 알려져 월요임에도 불구하고 산악회 회원들이 많았다. 지금부터 전나무 숲길을 함께 걸을 그들을 예쁜눈으로 바라보기로 마음 먹어본다.
나보다 훨씬 큰 나무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희한하게 그 광경은 위압감 보다는 마침내 나의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어 마냥 좋았다.
전나무 숲길에선 다람쥐를 최소 10마리 이상 볼 수 있다. 청정 구역이긴 한가보다.
나와 함께 걷는 다람쥐, 내 옆을 지나가는 다람쥐 등 사교성이 꽤 좋더랬다.
등산객중 한 아주머니가 가방을 급히 뒤진다.
입구가 마구 구겨진 꿀꽈배기를 꺼내들더니 그들에게 던져준다.
흐린 월요일에도 월정사는 전국의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소원이 바람에 펄럭인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어떤 건물 옆쪽 불을 밝히는 초였다. 개인의 이름과 소원을 적은 초를 보고 절 입구에 마련된 사무실(?)로 들어갔다. 기대와 달리 그곳의 보살님은 꾸만 나를 꾸짖었다.
좋은 마음으로 들어섰건만, 결국 마음이 상해버렸다.
그래도 가족의 이름이 적힌 초를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오늘의 일정이 남아 있는 관계로 월정사 투어는 이쯤하기로 했다.
강원도는 유명한 닭강정집이 많다.
특히 몇년전 먹었던 닭강정이 기억에 남아 30분 거리를 나섰다.
그런데 또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가는 길이 말도 안되게 좋았다.
6번국도 였는데, 달리는 차는 말랑이뿐으로 도로가 매끈했으며 눈을 두는 곳 마다 나도 모를 감정이 느껴졌다.
아무튼 사진 속 도로 덕분에 가슴을 막고 있는 답답한 기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듯 했다.
앞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6번국도라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봉평시장 안에 위치한 '월이 메밀 닭강정'에 방문했다. 7년전쯤보다 유명해져서 가게 외관이 깔끔하게 바뀌어 있었다. 또 내부 벽한쪽은 유명인들의 방문도장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보통 맛집은 유명해지면 맛을 잃기 마련인데, 여긴 달랐다. 여전히 끝내주게 맛잇었다.
맛만 봐야지 했던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했고 석식시간전까지 계속 주워 먹었더랜다. 그렇다고 맛있는 채식을 포기할 순 없지!
육식으로 기름칠한 위를 정화하기 위해 채식을 꾸역꾸역 집어 넣기로 한다!
'매실아, 나의 위장에 가득한 기름을 지워줘.', '건강한 밥상아, 방금전 먹은 닭강정을 책임져줘!'
계속 주워먹은 닭강정 탓에 금방 배가 불렀다. 그래도 디톡스 주문을 걸며 꾸역꾸역 집어 넣어 본다.
식사 후 샤워를 마치자 몸이 금방 노곤노곤 해졌다. 둘째날을 마무리하며 총 걸음수를 확인하자 무려 1만4천보로 집계 되어 있었다. 이제 글을 한번 써볼까, 싶었는데 갑자기 맥주 한캔이 그렇게 생각나는거다. 첫날에 보았던 건너편 편의점이 번뜩 생각나서 얼른 그곳으로 향했지만.. 맙소사 이미 마감후 였다.
하지만 괜찮다.
달마대사를 똑닮은 고양이를 만났다. 신장님 사이에 떡하니 앉아있는 고양이를 감히(?) 귀여워 할 수 없었다.
'혹시 진짜.. 달마대사세요..?'
아무튼 더 어두워지기전에 주변 편의점을 검색했다. 5km정도 떨어진 위치에 편의점이 두개가 있었다. 미리 챙겨온 차키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위풍당당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그날 먹은 크러시 맥주는 내 인생맥주가 되었다. 여행을 마친 지금도 심심치않게 나의 갈증을 책임지고 있는 효자 맥주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강원도에서 드디어 최애 맥주를 거머쥐며 두번째 밤을 마무리 했다.
감자크림라떼가 없는 잠자리는 어땠냐고?
3편에 공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