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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여행 일지 (1)

강원도

by 김채하

나. 30년동안 제대로된 여행 한번 간적 없는 자타공인 노잼인생의 최강자.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홀로 강원도행을 결정한다!

왜?

'잘 살아보고 싶어'서!




파워J인 나는 전날 18일 이미 짐을 모두 챙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 아침 몇번이고 누운 캐리어를 끌어 올려 자그마한 틈새로 쑤셔 넣은 물건이

수두룩 했다.


의류는 겨우 잠옷 한벌, 아우터 하나, 모자가 전부였는데 멀찍이 서서 바라보니 캐리어가 너무 작다 싶었다.

그리하여 다시 내가 좋아하는 18인치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데칼코마니 같이 펼쳐진 캐리어 한쪽은 의류만 싣고 반대쪽은 노트북과 키보드, 마우스 등 글쓰기에 필요한 장비를 챙겼다.

무게 대칭이 맞지 않는 캐리어를 잘 구슬려 지하 1층에 세운 후 사진을 남겼다.




말랑이도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전날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득 채워둔 연료가 그 어떤 간식보다 두둑하게 느껴졌다.


말랑이? 쉐보레에서 만든 말리부라는 차량으로 내가 존경하는 수석님이 차에 지어준 이름이다.

(이종혁 수석님 감사합니다!)


말랑이를 친오빠에게 처음 소개했을때, 친오빠가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너.. 혹시 또라이야..?'


누군가에겐 또라이 같겠지만, 생각보다 차에 애칭을 지어주는 낭만있는 차주도 많다.

아무튼 달려보자!




9시경 출발을 했는데 이른 아침 러닝을 완료한터라 졸음을 느끼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될 수준이 아니어서 앞만보고 내달렸다. 파워J에게 계획대로 맞아 떨어지는 일정이란 러닝10km 완주에 맞먹는 도파민이 마구 분출 되는 것이다.

'이대로면 12시 30분에 숙소에 도착할 것이고 나는 강원도에서 점심을 먹어야지' 라는 계획이 내 뇌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그런데 역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

7번 국도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동해바다를 보니 시원한 소변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다! 마침 가까운 곳에 휴게소까지 있다기에 얼른 말랑이를 마지막 차선위로 옮겼다.


해당 휴게소에서 화장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무명의 전망대였다.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멀리서부터 휘감는 물 소리는 정말 경이로웠다. AI도 감히 구현하지 못할 자연 그대로의 소리에 한참을 바라본다.




대단한 풍경을 자랑하더니, 역시 해맞이 명소 였구나 하며 기록을 남겨본다.


도착 시간이 약 30분 정도 미뤄졌다. 내가 그린 계획이 틀어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핸들은 내가 잡고 있으니까.


망양휴게소는 장엄한 자연 경관을 갖고있었지만, 휴게소 시설 자체는 노후되어 다음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계획은 조금 엇나갔어도 나의 첫여행에서 내가 중심이 된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 없었다.




단언컨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게소 간식은 알감자다. 또한번 단언하건대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집합에 속한 두가지 음식을 결합함으로써 점심 메뉴를 완성시켰다.

(사실 흔해빠진 메뉴 두가지를 먹었다.로 끝낼 수 있지만 꽤 특별하도록 꾸며보았다.)

특히 떡볶이는 넓적한 철판에서 일정 시간마다 뒤집어지는 떡볶이가 아닌, 저렇게 개별 포장되어 이미 온장고에 진열된 것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알아서일까? 떡볶이는 심히 실망스러웠으며 알감자는 내게 누구나 아는맛을 자랑하며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휴게소 뒤편으로는 전망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으나 나는 이미 망향휴게소의 거친 전망대에 매료 되었으므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대산 아래 월정사와 갖은 박물관과 인접한 나의 숙소, 옴뷔 명상 마을에 도착했다.

비가 오지 않는것 만으로도 좋았건만 거짓말처럼 맑아진 강원도의 날씨가 나의 방문을 두팔벌려 환영하는 것 같았다.



명상 마을을 관리하는 중앙 건물이 되겠다. 사진에 담을 수 없지만 건물 앞에 매달린 종 소리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다른 세계로의 입장을 알리는 신비로운 종소리였다. 아무튼 체크인까지 15분정도 여유 시간이 생겨 근처를 걸어보았다.



주차장 옆에 가느다랗게 솟은 나무였다. 꽤 일정한 거리마다 심겨 일정한 높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자체로 감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하여 건축상을 거머쥐었다는 대형카페를 처음 방문 했을때의 그 느낌이었다.



편백나무로 지어진 숙소가 보인다. '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지가 엄청 넓었다. 숙소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네동으로, 예약시 따로 선택은 불가했다. 그와중에 가을이 제일 좋다는 리뷰를 본 나는 슬쩍 가을동을 배정 받길 기대해본다.


명상마을 건너편은 월정사 먹거리마을(?) 쪽으로 건너가보았다.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산악회, 등산회 따위의 타이틀을 걸고 오대산으로 도착한다. 오색찬란한 등산복을 입은 어르신들이 불을 보고 달려든 한여름의 나방처럼 북적거렸다. 역시나 내가 싫어하는류의 인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길거리 흡연, 가래침, 스피커 통화, 사람이 붐벼도 비킬 생각을 안하는 나방들.

아, 더 있다간 첫날을 망칠 것 같아 얼른 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한 식당 앞의 고양이가 나를 붙든다.


저 고양이도 형광 나방들이 싫은건지 정확히 등을 돌려 해를 쬐고 있었다.


너... 나구나..?



감자가 유명한 강원도라 그런지 먹거리 마을에서 감자 관련 음식이 많았다.


목도 축일겸 한 카페에 들어가 보지만,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형광 나방들을 대적할 자신이 없어 얼른 주문을 해본다.


"어... 감자크림라떼 맛있나요?"

"네!"

"그럼 그거 한잔 주세요!"


커피를 먹지 못해서 쓴 맛이 가장 강하게 기억 남는다. 이후 올라오는 고소함은 감자샐러드 같은것이었다.

첫날밤 나를 올빼미로 만든 이 라떼. 잠이 와서 공부를 못하는 고3 수험생에게 추천한다.









어느덧 두시가 되어 다시 명상 마을로 돌아갔다.

중앙 건물로 가서 마을 약도와 숙소키와 같은 효력을 지닌 종이를 받았다.













가을동을 배정 받고 싶었던 나는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NO' 였다.

이렇게 인생은 언제나 나의 기대를 빗나간다.


나는 여름동에서 2박을 보내게 되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그나마 2층이라는 것에 만족해본다.


여름동 2층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아니면 어떡하지?)








이곳의 색다른점은 객실마다 명상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객실에 입장하자마자 바로 보이는 이 풍경에 나지막이 탄성을 터뜨렸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멋진데.

평년보다 늘 빨리 눈을 맞이하는 추운 강원도지만 채광 받은 명상존은 정말이지 따뜻했다.


그렇게 대충 짐을 풀고 안내 받은 약도를 따라 이곳에 한발 더 다가가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걸어간 곳은 프론트 직원이 추천한 '아리야 숲'이다. 조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숲이라고 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야를 오랜만에 경험 했다. 신선한 눈으로 새로 갈아끼운 그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리야 숲 옆으로 흐르는 물. 아마도 오대산 위에서부터 월정사를 타고 이곳까지 흐르는 물 같았다. 최후에 이 물은 어디로 가게 될까? 저 멀리 아래를 쳐다본다.








아리야숲 나무엔 이런 질문이 많이 걸려 있다.

하고 많은 질문중에 이것만 기록했다는 것은 아마 요즘의 나를 관통하는 질문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끝없이 탐구하고 있다.


걷다보니 저 멀리서 스님 한분이 걸어온다.

지은 죄는 없지만 괜히 스님과 멀어지는 동선을 택한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 오는 관계로 동림선원을 맛보기 탐험 해보았다.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리를 보고 똑바로선 동림선원은 정말이지 특별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새벽7시, 저녁7시 마다 스님들께서 명상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저녁 7시에 다시 찾기로 하고, 걸음을 돌린다.







이곳은 식당마저 말도 안되게 아름다웠다. 높은 층고는 아무리 많은 사람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내게 주었다.

숙박하는 사람이라면 조식과 석식은 무료로 제공이 된다. 리뷰마다 밥이 엄청 맛있다는 얘기가 꼭 포함되어 있어 의심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와..! 정말 맛있었다. 이런 맛과 메뉴라면 나 평생 채식주의자가 가능할지도..?

먼 미래의 나에겐 묻지도 않고 현재의 내가 슬쩍 채식을 다짐해본다.



투숙객들의 공통점이 있다. 식사를 하고나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을 전체를 조용히 걷는다. 나또한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 이후 한번 더 주변을 살펴본다. 어딜봐도 내 마음에 쏙 드는 풍경뿐이었다.



깊은 산속은 저녁 여섯시만 되어도 암흑 천지가 된다. 그러나 두렵지 않은 적막강산이었다.

명상 수업 참석을 위해 동림선원으로 가는 길. 띄엄띄엄 선 가로등은 자연에게도 쉼을 허락하는 것 같았다. 선원 내부의 불빛만으로 형체를 가늠케하는 동림선원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다리를 건너 저곳에 들어가면 난 정말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설레게만 느껴졌다.


예정된 스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다른 스님이 한시간동안 명상을 진행해주셨다. 좋은 스님이셨다.

온 몸의 긴장을 이완하는 움직이는 명상을 하며 나는 생각보다 산만했음을 깨닫고 간다.


'그 당시 좋다 싫다, 착하다 나쁘다 같은것들은 모두 그때 그 인연, 상황이 만들어낸 것임에 불과합니다.'

스님의 이 말씀 덕분에 오랜시간 나를 괴롭히는 아픈 기억을 그곳에 1톤 정도 내려놓고 명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것들아. 절대로 나를 쫓아오지 말려무나.






명상 후 돌아온 내 숙소.

따끈하게 올려둔 보일러 덕택에 내 집 같은 온기가 맴돌았다.


이곳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간다.

구상했던 시나리오를 구체화 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놀랍도록 술술 적혔다.


잠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감자크림라떼를 다시한번 수험생에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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