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을지라도,

by 김채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어디있을까]

아래는 내가 2025년 9월 11일 브런치에 게시한 글이다.


내가 상상한대로, 계획한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곧 마주하게 되는 삶은 이 기대를 보란듯이 비웃는다. 문제는 빗나가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에서 시작된다. 타인의 마음이 내 생각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백번이고 생각해도 옳은 이치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때 나는 상처 받되,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삶은 얘기가 달라진다.


어렸을적 나는 훗날 대단한 선생님이 되어 있을줄 알았다. 그러나 흔들리는 가정환경에 일찍이 공부에 흥미를 잃으며 그때부터 내 신세를 한탄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학창시절 이후 어찌저찌 내가 원했던 대학 진학까지는 성공했다. 예술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항상 듣고 자란탓에 이제는 큰 성공의 출발점에 섰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보기좋게 좌절되고 지금은 전혀 관련 없는 일개 사무직을 전전하고 있다. 그것도 계약직으로.

이정도까지도 ‘그래. 이게 바로 삶의 맛이지.’하고 털어낼 수 있다.(이렇게 인정하기까지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최근 저주에 걸린 것 처럼 내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첫째, 갑자기 사고가 났다. 주행중 사고를 겪은 것은 처음이었고, 아무리 봐도 사고날 상황이 아니었다. 사고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것이라 이런 결론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분명 그랬다. 심지어 꽤 큰 사고였다.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차주 덕분에 나는 소송을 시작했으며, 소송시 준비서면을 직접 작성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앞두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과실 미확정으로 렌트비용과 차수리비용을 모두 자비로 우선 부담했다. 소송 이후 돌려 받는 돈이라고 할지라도 비워진 통장을 보니 현금을 도둑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 완료되지 않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심적 부담이 꽤 크다.

둘째, 나는 계약직이다.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아는 큰기업에 입사했지만 경영악화를 이유로 퇴사당함에 가까웠다. 그리고 또다시 계약직으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제대로 일할 수 있을거란 기대가 무색하게 정직원이 하기 귀찮고도 단발적인 일만 도맡아서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직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모두 불발이다. 중소기업은 절대 가지 않겠다는 선언도 이제는 흔들리고 있다.

셋째, 나는 원래 영어를 좋아한다. 졸업이나 취업을 위한 도구가 아닌 정말 좋아하는 언어 그 자체이다. 적은 월급으로 큰 맘 먹고 회화 수업에 등록했는데 실망감이 너무 커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원어민과 나는 주파수가 잘 맞지 않으며, 수업을 늦게 시작하고 예상보다 빨리 끝내는 등 그는 내 생각보다 더 책임감이 없는 선생님이다.

넷째, 두달전 짧게 잘린 머리가 오늘까지도 맘에 들지 않는다. 조금 길면 괜찮아질거라 생각했으나, 여전히 내 신경을 긁는 포인트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외에도 몸에 이상이 와서 건강적인 문제가 생겼고, 주변에는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만 들끓는다.


자신의 인생은 오직 자신만이 통제할 수 있다는데, 나는 왜 온통 통제 불가능한 것들만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걸까. 이쯤되면 나는 벌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인생은 쉽지 않으며 때때로 시련이 닥친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만 유독 더 팍팍하다. 달리려고 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넘어진 자리에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렸다가 겨우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얼마 못 가 또 철푸덕 넘어진다. 이대로라면 넘어지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다.


도대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어딨을까? 퇴근 후 저녁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거? 퇴근 경로를 선택해 운전할 수 있다는거?

고난, 시련, 역경 따위를 회피하고 싶은게 아니다. 적어도 다섯가지의 고난이 왔다면 한가지 달달한 단비는 맛볼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걸 누가 해주는건지 모르지만, 신이 있다면 이 글을 꼭 보여주고 대화 나누고 싶다. 혹시 보고 계신가요?






그리고

2025년 10월 15일 바로 오늘 과거글을 다시 복기하며 정정한다.


첫째, 교통사고 소송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하늘도 땅도 모른다. 이건 완벽하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맞다. 다만 글을 썼던때 보다 지금은 차 사고에 대한 부정적 기분이 옅어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정말 만병통칭약이 맞다.

둘째, 10월 14일부로 나는 퇴직했다. 나의 행복을 위해 계약만료전에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가고 싶었던 외국계 기업 면접을 앞두고 있다. 비록 파견직일지라도 정규직의 기회가 충분하다는 얘기를 담당장에게 전해 들었다.

셋째, 한달정도 나와 맞지 않는 선생님과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날에는 수업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전달했다. 하지만 한국센터 담당자님과 면담이 남아있었다. 이미 결정이 확고한터라 담당자와의 면담도 취소할까 싶었는데 또 그간 나의 수업을 분석해준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수업에 대해 실망한 부분을 여과 없이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왜 자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냐며 되려 반문했다. 어리둥절 했지만 맞는말이기도 했다. 나는 현재 수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담당자에게 일절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자는 바로 해결책을 제시했고, 나는 한번만 더 믿어보겠다며 다른 선생님을 배정 받았다.

그런데 웬걸? 다시 배정받은 선생님은 말도 안되게 열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칼 같이 시작하고 어떤날은 너무 몰입한 나머지 몇분 더 진행해버리고 넉살좋게 웃어버린다.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된 기분을 대학 졸업 후 처음 느끼고 있다.

넷째, 희한하게 머리가 길어도 모양이 이상하다. 그러나 염색을 했다. 색깔이 너무 맘에 들어 탄성을 질렀다! 까다로운 엄마의 눈에도 예쁜 색깔이라니.. 돈 들인 보람이 있다.


나의 건강이 좋아졌다. 러닝과 필라테스를 꾸준히하며 몸이 튼튼해짐을 느끼고 있다. 더욱 기쁜것은 운동이 부르는 정신적 안정을 느껴버린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해서 회사와 작별했기에 수적으로 따져본다면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든 것이 맞겠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원래 없다. 그리고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나를 보며 인생의 불공평함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것이다. 그런데 중요한게 하나 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지나치게 몰입해선 안된다. 왜냐, 어차피 다 흘러가니까 말이다.


내가 열거한것들 중에 하늘이 감동한 성공 신화 따위는 없다. 단지 이전보다 상황만 조금 좋아졌으며 마음에 여유가 생긴게 전부다.


이렇게 아무리 좋지 않은 감정도, 상황도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흘러가는걸 관망해서만 되지 않고, 나를 우선으로 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고난, 시련, 역경이 새국면을 맞는다. 흔들리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며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내일 또 통제 불가능한 일이 나를 덮칠지라도, 나는 그냥 나를 위한 하루를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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