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역이든 정해진 기점에 ‘안녕히 가세요’가 쓰인 돌이나 팻말이 있다. 보통 어떤 지역과 지역이 나뉘는 지점이나 그 지역 출구정도에 세워져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걸 보면 마음이 쓰리다. 별다른 추억이 없는 동네를 떠날때도 그 표시를 보면 없던 아쉬움이 생겨난다. 아마도 어렸을때 기억 때문인것 같은데, 이모집에서 신나게 놀고 돌아갈 때 깜깜한 밤의 느낌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아쉬움이 지금까지 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가며 ‘안녕히 가세요’라는 글자를 보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올 수 없다는 비약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에야 내 차를 가지고 언제든 방문할 수 있지만, 어렸을땐 지금 떠나는 이곳을 자발적으로 거의 오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 그시절이 아련함으로 남아있고, 나는 방문을 환영하거나 안녕을 기원하는 표지판만 봐도 쿵 하고 심장이 진동하는 것이다.
어릴적 감정과 기억은 절대 휘발되지 않는다. 당장 며칠전 즐거웠던 기억보다 과거 즐거웠던 기억이 더 울림이 크다. 당연하게도 감정 자체의 선명함은 물리적인 시간이 짧을수록 짙으나, 한 알의 알약처럼 혈액에 흘러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건 틀림없이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이것을 우리는 ‘추억’ 또는 ‘향수’라고 부른다.
가령 잠들어 있던 긍정적 추억을 다시 느끼고 싶어 뭔갈 한다해도 대부분은 실망하며 과거를 부르짖는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과거가 더 행복했다는 어줍잖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그다지 좋은 효과를 주지 않는다. 현실이 버거운 사람들은 이 결론에 닿게 되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 꾸역꾸역 일상을 영위하던 세계가 조금씩 물렁해진다. 왜냐, 무얼해도 추억과 향수만치의 느낌이 없으니까. 그렇게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 추억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그것들만 나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과거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을 때 얼른 스위치를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꼭 명심해야 한다. 그때를 그리워할 수 있으나 그리움은 그리 길지 않아야 하며 지금 할 수 있는것에 집중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오랫동안 동네를 지키는 ‘안녕히 가세요’가 적힌 돌덩이를 봤다. 이 지역에 산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말 그대로 내가 사는 동네이기에 딱히 아쉬울 일이 없다. 게다가 나는 자차도 있다. 언제든지, 어디든지 갈 수 있음에도 그 글자를 보니 떠나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의 감정이 피어오른 것이다. 그러면서 자동적으로 이모 집에서 신나게 놀던 좋은 기억이 연계되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게 완전한 거짓은 아니지만, 그때는 내 일부가 되었고 나는 더 나은 오늘을 만들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더욱 기뻐해야 한다. 또 다시 과거의 향수가 나를 슬프게 하면 나는 이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앞으로 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