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며

by 김채하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퇴사 후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왔다.


그날은 참 신기한 아침이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러고선 대뜸 ‘혼자 조용한 숙소’룰 검색한 것이다. 무슨 흐름인가 싶지만 정말이었다.

특히 온갖 광고성 멘트가 난무하는 글부터 내돈내산 후기라며 클릭을 유도하는 글 사이에서 딱 한 단어가 내 맘을 붙들었다.


‘명상마을’


그런곳이 있다고? 반신반의하며 게시물을 마주했다. 누군가 직접 숙박하며 적은 글은 정말이지 정갈했다. 시간별로 찍은듯한 사진, 그곳에서 제공하는 식사, 간단한 숙소 소개까지 군더더기 없었다. 감탄했으나 거기서 끝이었다. 나는 숙소를 예약하지도, 명상마을의 공식 명칭을 눈여겨보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다. 이후 틈틈이 그곳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이다. 자기장에 이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끌려 검색만 하기를 3일이 지났을까? 나는 비로소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전무후무한 여행경험으로 비교 데이터가 없어 꽤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고, 나는 결국 숙소를 예약했으며, 현재는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지막날인 오늘은 여행을 정리하고자 일찍이 하루를 시작했다. 여기서 제공되는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챙겨 먹고 넓은 부지를 하염없이 걸었다.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뭇잎들, 이제 점차 뼈대가 보이기 시작하는 나무들, 바닥에 흐트러져 튀김 같이 통통 튀는 소리로 바스러지는 낙엽들, 투둑투둑 떨어지는 쪼그라진 열매들, 푸르게 솟은 하늘까지.

이 모든 것을 눈으로, 코로, 입으로, 피부로 느끼며 걸었다.


허나 이때부터 다시 오만 생각이 발동했다. 잡생각 관성을 30년동안 완성시켰고 적용했을 내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란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행내내 나름 가벼운 머리로 살았다.(그래봤자 3일이지만) 그러나 속세로의 회귀 앞에 결국 맑아진 정신까지 함께 회귀 되려 했다.


분명 완벽한 여행이었는데 갑자기 그 ‘좋음’에 의문을 품는 것이 첫째였다.

이곳이 이토록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내가 일상을 떠나왔기 때문이겠지?

아마 다시 돌아간다면 이 고즈넉함을 더 느끼지 못하겠지?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도시는 이곳보다 팽창되어 있으니 당연히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이 3일도 ‘일상’이다. 이곳에 있는 3일은 누가 쥐어준 선물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한 나의 일상이다. 나는 얼마든지 이곳의 느낌을 회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나은 곳을 검색해서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몸이다. 전부 다 나의 일상이다. 출퇴근을 반복하는 하루라고 나의 일상이 아닌게 아니다. 그날도 이날도 내가 만들 수 있는 일상이다.


두번째는 속세에 두고온 고민거리였다.

당장 카드값 나가야 하는데, 다시 취업이 안되면 어떡하지?

취업하면 또 스트레스 받겠지?

급여는 잘 들어오겠지? 혹시 더 적게 주는건 아니겠지?

사실 고민이란 것은 참 독특한 매력이 있다. 조금 더 오래 가슴에 품고 열렬히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글쎄, 있었을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한의 동그라미를 도는것 처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면서 걱정1은 어느새 걱정2에 잡아먹히고 그둘마저도 걱정3 앞에서는 맥도 못 추고 사라진다. 그때는 고민 해결의 여부또한 중요치 않게 된다.

이 순환대로라면 괜한 걱정으로 지금을 소비하는 것만큼 무식한 일은 없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소중했다. 그것은 변함없다. 나의 소중한 일상이 되어 눈 감는 그날까지 마음껏 꺼내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첫째날 저녁 명상을 진행했던 스님이 해준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명상은 거창한게 아닙니다. 과거로, 미래로 가 있는 마음을 지금 이시간으로 옮겨두는 것이지요. 바로 지금을 느끼고 집중하면 됩니다. 좋다 싫다, 길고 짧다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눈앞에 보이는게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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