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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만 버텨

돌아온 탕아

by 아는개산책

그만두겠습니다.

입사 3년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 달만 쉬었다 다시와.

팀장은 짜증을 내며 배려했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베가스에서 엘에이


"과장님 몇 개월 만에 출근하시는 거예요?"


운전석의 준이가 백미러를 통해 내 눈을 흘끔 본다.


"몇 시간 더 가야돼지?"


"세 시간 반정도요."


엘에이 공항으로 돌아가는 베가스 사막길은 건물은커녕 큰 나무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일정한 속도로 황톳빛 고속도로를 운전해가다 보면 어느 순간엔 차가 움직이고 있는 건지 멈춰서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 된다.


"가야 하나"

나는 창 밖을 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새벽 세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엘에이에서 출발하는 아침 비행기에 맞추기 위해 겨우 두 시간이나 잤을까.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각에 방문 앞까지 찾아와 연달아 노크를 해대던 신입사원 준이 덕분이었다.


휴직을 마치고 아직 자리가 남아있다면 다시 출근하겠다고 회사에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공항까지 가서도 비행기 출발 직전 걸음을 되돌려 다시 베가스로 돌아왔었다. 그 짓도 세 번째가 되자 결국은 혼자 해도 되는 베가스 전시회에 굳이 신입을 한국에서부터 실어 보낸 팀장이었다. 내가 없어도 나를 찾는 업체전화가 종종 있었던 것이 내 목줄을 이어주고 있었다.


"이번에 같이 안 오면 팀장님이 저도 들어올 생각 말라했어요."


"안 가면 너도 좋지."


"네? 안 가면 여기서 뭐해요."


"바카라"


"하하. 전 계속 돈 벌어야 해요."


-누군 아니냐.


"어,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준은 얘기하며 창문을 내렸다.


"너 방귀 뀌었냐"


"전 아닌데요, 혹시 과장님...?"


"미쳤네. 너 몰라? 여자는 방귀 안 뀌잖아."


어디선가 구린 냄새가 스며들어 오는 것도 같다.


"네? 정말요? 아... 이거 밖에서 들어오는 냄새인가"


-정말은 무슨.


냄새가 날 만한 곳이 있는지 창 밖을 둘러보지만, 어둠이 짙게 깔려 가로등 밖으로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거의 없다.


조금 더 장난쳐줄까, 싶은데 갑자기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익숙한 신호가 느껴진다.


-뭐지. 안되는데.


호텔방에서 나오기 직전 어젯밤 마시다 만, 얼음도 다 녹아빠진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던 게 뇌리를 스친다.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왜 만들었겠니.

이럴 때 쓰라고.


"아..."



총공격


"준아, 휴게소 좀 찾아봐"


한두 번 오간 도로가 아니다.

휴게소 같은 걸 본 기억은 없다.

그래도 신입은 뭐든 찾아낼 수 있어서 신입이다.


"네? 여기서 휴게소요? 잠시만요, 차 좀 세우고 내비 좀 볼게요"


우리 외에는 달리는 차는커녕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급히 휴대폰으로 지도어플을 켜는 준.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까지 뛰어가야 여기서 안 보이고... 아, 아니야 안돼. 얘 앞에서 그런 짓은 절대 못해.


아직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이곳은 허리케인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풀더미 자체가 없다. 너무나 자비롭지 못한 사막이다.


"아, 있어요 십 분만 가면 빠지는 길이 있어요. 내려가면 아마 주유소 같은 게 있을 거예요. 갈까요?"


"어, 어..."


창문 위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움켜잡고 간신히 대답한다.

그렇게 오 분이 흘렀을까.

이제 곧 휴게소라는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불안정하던 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다.


-어때, 세 시간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길가의 아무 주유소나 들러 화장실에 갔었던 악몽이 떠오른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모기와 벌레들이 모여있다가 확 흩어져 버리던 그 순간이.


"준아, 그냥 빨리 공항으로 가자. 나 괜찮은 것 같아."

오른쪽으로 빠지는 이정표가 식별될 만큼의 거리까지 왔을 때 내가 말했다.


"아, 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정표를 지나치며 준이 되묻는다.


인간은 왜 신이 주는 마지막 기회를 기회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까.

아둔하고 아둔하다.


세 시간 참기는커녕 지나친 지 십 분도 흐르지 않은 것 같은데, 꾸르륵꾸르륵 소리와 함께 장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난 틀렸어, 틀렸다고, 더 못 버텨! 이제 나간다!)


"안돼!"


"네?"

소리에 놀란 준이 백미러를 통해 불안한 눈빛을 보낸다.


"준아. 생리현상은 너도 있고 나도 있고 엄마도 하고 아빠도 하고 세상사람 다 하는 거야. 알지?"

내가 생각해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말이다.


"네, 네..."


"너 입 무거워?"


"네?"


"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죽을 때까지 비밀 지킬 수 있어?"


삶과 죽음,

인간과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보다 세상에 죽을 때까지 지켜질 비밀이란 있는 것인가.


"네, 그럼요. 과장님, 심각하세요?"


"빨리 찾아, 빨리 다시 찾아!"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한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후- 내뱉고,

나마스테 호흡법이던가.,


"준아, 나 죽어."

애원하고 난리가 났다.


"네, 네 찾고 있어요 지금"

준은 속도를 줄이고 급하게 휴대폰을 다시 조작한다.


"그냥 아까 거기로 돌아갈까요?"


"넌 제발 질문 좀 그만해!!!"


"네, 네 아 삼십 분만 더 가면 또 빠지는 길 나와요. 제가 최대한 빨리 밟을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과장님"


급성이라고 해서 지속적으로 나락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잠깐의 쉬는 쉬간이 드문드문 찾아온다.


-하, 신입 앞에서... 체면...


상사고 뭐시고 사람 살려주세요!


공포의 이십 분을 뚫고 드디어 준이 주유소 앞에 주차를 한다.


"과장님, 도ㅊ.."


문이 열리고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너는.


보지 마! 보지 마!


그런 와중에도 화장실은 엄청 넓어 역시 미국스타일이야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의 뇌는 참 신기하다.


여자화장실 안에는 밑은 뚫려있고 키가 큰 파란색 문들이 칸칸이 늘어서 있다.

총잡이에게 쫓기는 사람이 숨어있곤 하는, 미국 영화에서 보던 것과 똑같다.


그중의 한 문을 쾅하고 열자마자 닫혀있는 변기뚜껑을 세차게 열고 바로 앉는 동작을 연결한다.

그런데. 너무 급히 열린 변기 뚜껑에 반동이 생겨 버렸다.

작용 반작용인가. 아님 뭐시긴가.


... 그것이 과학인가 보다...


분명 한참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이걸 뭐라고 할지 변명조차 준비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분의 옷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는 것.

그것만이 작고 하찮은 위로가 될 뿐이었다.


손을 마저 씻은 후, 터덜터덜 차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황급히 담배를 비벼 끄고 운전석에 올라타며 준이 묻는다.


나는 말없이 뒷좌석으로 올라가 앉았다.


신입의 해맑음은 신이 허락한 또 다른 심술이기도 한 걸까.

입사할 때 질문 버튼이라도 뇌에 장착하고 들어오는 걸까.


"어? 무슨 냄새지? 과장님 혹시 똥 밟았어요?"


나는 조용히 버튼을 누르고 내려가는 창문 너머 먼발치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 쌌ㅇ...)



6개월의 장기휴직 후 회사로 복귀하는 대망의 시작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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