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부가 거짓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소함은 언제나 가장 결정적인 것이 된다.
생일 파티
-생일 축하 노래 부르게 다들 회의실로 잠깐 모이세요.
팀방 단체톡에 채팅이 올라온다.
점심 먹은 지 두 시간. 식욕은 아직 없다.
팀원들의 반응도 굼뜨기 그지없다.
-아니, 누구 생일인데?
-실장님이요.
느릿느릿 엉덩이를 떼긴 뗀다.
그래도 빵 배는 따로 있으니까. 하고.
"어이, 역시 먹는 데는 고 과장이 빨라."
가장 먼저 회의실에 들어가는 나의 뒤를 쫓아 김과장이 얘기한다. 한 손엔 다이어리를 쥔 채.
"다이어리는 데코냐"
가볍게 대꾸한다.
일회용 접시와 포크를 들고 온 규현이 곧바로 세팅을 시작한다.
"최대리는 어디 갔어?"
"외근"
"아이, 씨 x"
걸쭉한 욕과 함께 들어선 태수가 의자를 신경질적으로 잡아 빼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선 가져온 서류를 탁 하고 책상에 던져놓는다.
"또 뭔데?"
김 과장이 묻지만, 태수는 대답도 없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서류만 바라본다.
문 밖에선 혜나가 점심시간에 사 온 케이크를 들고 실장 뒤를 쫄래쫄래 따라 걸어온다.
"아니, 뭘 또 이런 걸 다 준비하셨대, 나 이런 거 필요 없는데."
함박웃음 속에 실장이 말한다.
나오는 말과는 달리 얼굴은 이미 자비로운 부처님의 그것이다.
"헤헤, 실장님 생신 저희라도 챙겨야죠. 앉으세요."
혜나는 살갑게 말하며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급하게 뚜껑을 연다.
그런데,
멀쩡해야 할 사각케이크의 한 귀퉁이가 숟가락으로 한 움큼 떠낸 듯이 움푹 파여있다.
"응?"
"뭐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김 과장이 말하며 나와 눈이 마주치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고개를 급히 저어 본다.
규현은 케이크 쪽으로 몸을 옮겨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은 소란 속에도 태수는 다리를 꼬고 앉아 창문 쪽만 바라보며 인상을 구기고 있고,
케이크를 사 온 혜나는 아니 이게 왜 이래? 만 연발하고 서 있다.
그리고 자비로운 부처님 얼굴이던 실장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본연의 심술 가득한 가가멜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 누구야?
사소해 보이는 일
대충 노래가 끝나자 실장은 늬들끼리 먹으라며 자리를 뜨고 회의실엔 처음의 다섯 명만 남았다. 조금씩 잘라낸 케이크를 앞에 갖다 놓고 이제 막 맛을 보기 시작하지만, 케이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만 스푼을 들고 허공을 휘적휘적한다.
"이 집 초코는 격이 달라."
내가 먼저 분위기를 깼다, 말이 퍼지기도 전에 김 과장이 말을 보탠다.
"그런데, 진짜 누구냐? 실장님 케이크 먼저 입 댄 사람이"
"그니까요, 사온 지 두 시간도 안된 것 같은데. 누구예요 진짜"
혜나가 툴툴댄다. 본인이 생각해서 직접 사 온 케이크가 망가져버렸으니 기분이 상할 만도 하다.
규현은 아직 나서서 대화에 낄 짬밥이 아니고, 태수는 뭔가에 화가 난 상태 그대로 케이크만 퍼먹는다.
"왜, 너는 외근 갔다 온 게 뭐 잘 안 됐어?"
태수를 아끼는 김 과장이 묻는다.
과장의 질문 따위야 아랑곳없이 여전히 묵묵 부답인 태수.
"보통은 찔리는 사람이 제일 먼저 말 꺼내니까, 김 과장 네가 먹은 거 아니야?"
"맞아요, 김 과장님 밖에 없어요. 그런 짓 할 사람은."
혜나가 바로 나의 말에 한 표를 던지며 김 과장의 눈치를 살핀다.
"미쳤냐"
김 과장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바로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런 식의 오버액션이 늘 나를 브레이크 모르는 장난의 끝으로 끌고 간다.
"네가 제일 눈치도 없고, 간도 크고. 배도 크고."
키득대며 말하는데,
"고 과장님이 먹은 거 아니에요? 아까 탕비실 들어갔다 나오는 거 봤는데."
가만있던 태수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다. 말에 위아래 가리지 않는 이 아이가 끼어들면 그 판은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는데.
어쨌거나. 왜 그 첫 화살이 나냐고.
"나 커피만 내려서 바로 왔어. 그것도 바로 쫌 전에. 케이크는 좋아하지도 않아."
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먹는 데에 집중한다.
"참, 아까 내가 규현 씨한테 초 제대로 들어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었잖아. 규현 씨가 그때 열어보고 먹은 거 아니야?"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혜나는 스푼으로 규현을 가리키며 말한다.
"네? 저요? 초는 보통 상자 겉에 붙여두잖아요. 그래서 개수만 확인하고 말았는데요?"
반면, 물을 줄 알았다는 듯이 침착하게 대답하는 규현이다. 언제나 차분한 성격이긴 하지만.
이쯤 간을 봤으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다.
(김)"와, 씨... 그럼 누구야? 우리 회사에 쥐가 있어?"
(나)"쥐가 그렇게 예쁘게 파먹고 가냐?"
(김)"그래, 그렇게 예쁘게 먹은 게 이상해, 이건 여자야."
(나)"글씨는 네가 우리 회사에서 제일 이쁘잖아. 파먹은 부분이 너 글씨 모양이던데?"
(김)"미쳤냐, 고 과장 크크크"
대화에 냅다 끼지 않으면 범인으로 몰릴 기세다.
(규)"맞아, 김 과장님 아까부터 계속 배고프다고 하셨잖아요. 밥이 적었다고"
(김)"내가 돼지냐. 그렇다고 밥 먹자마자 케이크가 먹고 싶게?"
(혜)"아니었어요?"
(김)"어? 갑자기 끼어드는 네가 오히려 수상한데?"
(혜)"저는 소심해서 죽었다 깨도 못해요."
제일 타격감 좋은 것도, 가장 뒤끝 없는 것도 김 과장이다 보니 공격이 마를 새가 없다.
"아니, 그런데 누가 먹긴 먹었으니까 저게 파여있는 걸 텐데 말이야..."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누구긴 누구야. 김 과장님이지. 아 그리고 좀 먼저 먹은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한참 듣고만 있던 태수가 갑자기 한 손으로 테이블을 탕 치며 말한다. 태수가 살아났다.
"뭐야, 넌 빠져"
김 과장은 물을 때마다 대답도 하지 않았던 태수에게 소심한 복수의 말을 던진다.
(나)"혹시. 태수?"
(태)"아, 뭐야. 몰라요? 난 외근 갔다 왔다고"
(나)"외근 갔다가 한시에 들어왔잖아. 그리고 바로 물 마시러 가고, 케이크 있는 거 봤을 거 아냐?"
나는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뜬다.
(태)"본다고 다 먹나? 내가 개예요?"
(나)"아닌데. 느낌이 오는데. 확신의 범죄자 상"
(태)"아 뭐래, 짜증 나게"
태수는 말을 마치더니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그 참에 기우뚱하던 의자가 뒤로 카캉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응?"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태수의 뒷모습을 바라만 본다.
"아 뭐야 태수, 다시 들어와"
김 과장이 불러보지만, 이미 태수는 담배하나를 입에 물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사실은.
나는 옥상 벤치에 누워 얽힌 등나무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본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눈을 떠본다.
들쭉날쭉한 태수의 감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촉매제가 되었을 나의 말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장난이었는데."
하지만 받는 사람이 장난이 아니라고 하면 장난이 아닌 게 되지.
"으. 불러서 얘기라도 할까."
쾅-
옥상 문이 번쩍 열리며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오는 게 누군지 알만 하다.
"너네 뭐야?"
김 과장을 필두로 혜나와 규현까지 각자의 담뱃갑을 들고 벤치로 다가온다.
"뭐긴 뭐야. 맨날 땡땡이치는 고 과장 잡으러 왔지."
능청스럽게 말하며 담배를 입에 무는 김 과장 옆으로 규현이 실실 웃으며 함께 선다.
혜나는 냉큼 내 두 다리 옆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고 과장님- 하며 애교를 부린다.
"야, 떨어진다."
"헤헤헤"
담배연기가 차례대로 피어오르고 순리대로 사라진다.
(김)"아깐 정말. 아무 일도 아닌데 말이야. 그렇지? 그거 좀 먹으면 어떻다고"
(혜)"그니까요, 다 장난처럼 얘기한 건데. 혼자 흥분해서."
김 과장은 내 마음을 토닥이고 싶은가 보다.
그렇다면 말이지.
"사실은. 내가 먹었어"
나는 냅다 고백을 던졌다. 남은 세명의 시선이 바로 나에게 꽂힌다.
"이거, 이거,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고 과장."
김 과장이 들고 있는 담배를 흔들거리며 손가락질한다. 나는 뻗어있는 그의 손가락을 지그시 아래로 눌러준다.
빈정거림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아니야.
있어.
"아니, 근데 내가 열어봤을 땐 이미 누가 손가락으로 훑고 지나간 자국이 있었어. 그래서 그거 예쁘게 정리해주려고 했는데, 초코가 엄청 진해 보이잖아... 난 케이크는 안 좋아해도 초코는 좋아한다고.."
그 숟가락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아이고, 고 과장"
담배를 툭툭 털며 한 번 뜸을 들이더니,
"사실은 그 손가락 나야. 하하하"
"뭐어?"
"누구껀지만 보려고 했는데, 이미 한쪽이 좀 부서져 있던데? 난 진짜 새끼손가락만치 맛만 봤다"
그래서. 당당하냐.
우린 눈을 마주치고 키득대며 웃었다.
다정하게 서로를 또라이라 입모양 지으며.
혜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비벼 끈다.
그리고 말한다.
"사실은..."
뭐야, 너까지?
"저는, 케이크 받을 때 모르고 떨어뜨렸는데, 열어보니까 옆이 조금 부서져 있더라고요. 사장님도 난감해하고 해서 괜찮다 하고 그냥 나왔거든요. 난 먹진 않았어요 그런데. 진짜로"
두 손을 들어 휘휘 젓는다.
저는 무죄입니다. 한다.
"대단하다들-. 야, 넌 뭐 없지?"
담배를 입에 문 채 턱 끝으로 규현을 가리킨다.
"사실은요."
"야!"
우리 셋은 동시에 외치고 김 과장은 물었던 담배를 놓칠 뻔한다.
뒤로 주춤하던 규현이 실실 거리며 얘기한다.
"전 아니구요. 아까 한시쯤에 태수대리가 저한테 이거 주더라고요"
나와 김 과장, 혜나는 규현 옆으로 다가가 손에 올려진 무언가를 쳐다봤다.
빨간 하트 표시에 실장의 이름이 적힌 장식용 초콜릿이다.
(김)"이 자식 이거, 이거"
(규)"아니, 제가 아니고요, 태수 대리님이, 케이크 열어보고서 이런 게 왜 필요하냐며 한입 먹고 저 다시 주더라고요. 맛없다고."
(나)"푸하, 그런데 너는 왜 그걸 가지고 있어? 버리지?"
(규)"혹시, 생일 하다가 찾으면 드리려고요. 어차피 범인은 태수 대리니까"
(혜)"미쳤네..."
(나) 이 정도면 '사실은'의 파티 아니냐고...
.
퇴근시간도 지났겠다.
오늘도 범인(凡人)들의 보람찬 하루가 저물어 간다.
(끝)